민병훈 감독은 얼마 전 <군함도> 스크린 독과점 논란과 관련하여 SNS를 통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민병훈 감독은 얼마 전 <군함도> 스크린 독과점 논란과 관련하여 SNS를 통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 성하훈


지난 18일 막을 올린 서울 뉴미디어페스티벌의 개막작은 민병훈 감독의 단편영화 <설계자>다. 영화는 어떤 감독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술가로서 창작의 고통 그리고 영화에 대한 생각을 격언처럼 정리한 작품이다.

<설계자>는 영화를 설계하는 창작자가 지닌 무게에 대한 회고이자, 영화가 가진 철학적 사유의 무게를 다룬다. 한국에서 입양돼 프랑스인이 된 감독의 고민을 통해 창작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고찰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 감독의 철학이 강조돼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영화산업에 대한 비판도 들어있다. 대표적으로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지적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민병훈 감독이 잇달아 쏟아낸 발언과도 궤를 같이한다. 민 감독은 최근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군함도>가 2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장악하자 직격탄을 퍼붓듯 강한 수위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미쳤다. 독과점을 넘어 이건 광기다. 신기록을 넘어 기네스에 올라야 한다. 상생은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부끄러운 줄 알라."

단편영화 <설계자>에는 이런 감독의 생각이 투영돼 있다. 한국말도 못 하고 한국인임을 거부하지만, 어릴 적 한국에 대한 기억이 또렷한 입양아 감독. 그는 예술가로서의, 창작자로서의 고통을 토로한다. 그 와중에 극장에서 대화를 나눈 한국인 여성 관객을 우연히 자주 마주치면서 사랑을 통해 아픔과 고통을 위로받는 모습이다.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민 감독이 영화 속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감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민병훈 감독을 19일 충무로에서 만났다. 그의 영화와 매번 앞장서 날 서게 비판하고 있는 한국영화산업,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 감독은 <군함도> 비판 발언에 많은 매체가 관심을 보이며 취재요청을 했으나, 내내 사양했었다고 말했다.

영화로 말하니 굳이 머리띠 두르지 않아도 된다

 민병훈 감독의 단편 <설계자>의 한 장면.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민병훈 감독의 단편 <설계자>의 한 장면.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 민병훈 필름


- 단편이지만 영화에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하려면 상업적 형태로 하지 않으면 투자가 안 되고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단편영화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생각들, 사회현상 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다. 내 생각을 목소리를 바꾸거나 머리띠를 두르지 않아도 된다. 투쟁의 형태를 영화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고. 오로지 자연과 이미지 풍경을 통해서 사람의 내면과 나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질 수 있는 훈련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일기를 쓰듯이 카메라로 즐기며 하는 게 어렵지 않다."

- 연출뿐만 아니라 촬영까지 같이하신 것 같다.
"내가 찍을 수 있으니까. 촬영까지 다 했다. 영화를 만드는데 환경을 이야기하면 못 만들 이유가 99개는 될 거다. 그런데 영화는 99개가 아니라 한 개의 가능성 때문에 만드는 거다. 그게 감독이다. 사회 목소리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담아내는 게 중요하고, 작품을 통해 내 생각을 드러나는 게 비겁하지 않고 적합하다. 그게 나의 길이고 영화감독의 자세다."

- 영화계 현안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들어있는데, 어떻게 구상하면서 만들게 됐나?
"구상하기보다는 일상이 영화가 돼야 한다. 일상으로 영화를 찍지 않으면, 그게 생활화되지 않으면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다. 2016년에 한불수교 120주년을 맞이해 특별 상영에 초청받았고 배우들을 데리고 가서 만들었다."

- 일부러 프랑스까지 가서 단편을 찍은 줄 알았다.
"제가 돈이 없다(웃음). 초청을 받은 거고, 보통 감독들은 여행하면서 보낼 수 있지만 저는 사비를 들여서 거기서 영화를 단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영화를 회고하고 관객과 대화를 하는 것은 관성이 돼서 안 좋은 것 같다. 지난 영화에 대해 자화자찬하면 뭐할 것인지. 과거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금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는 영화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비행기 안에서 고민을 했고 여전히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에 대해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주인공의 마음이고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여러 대사가 인상적이다. "영화는 공동체의 의미를 잃은 듯하다." "영화는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한다." "영화는 사회변화를 간과했다." "영화는 신뢰를 다뤄야 한다." "영화는 관객수익을 위함이 아니라 생각을 담아내는 상자가 돼야 한다." 마치 격언처럼 들린다.
"내레이션 하는 프랑스 사람이 물었다. '감독님 한국은 이래요?' 당연한 이야기를 하니까 이상하게 보인 거다.

오래된 단관극장을 보면 옛 추억이 떠오르는데 지금 멀티플렉스 극장을 보면 답답하다. 음악이나 미술도 그렇지 않다. 스크린 독과점 규제법을 만들게 되면 투자와 영화계가 위축될 것이라고 하는 데, 박근혜식 논법을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다. 멀티플렉스 극장마다 다 다양한 영화가 들어가자는 게 아니다.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게 자본주의지만 이건 아니라는 거다. 내 양심이 가만있지 못하게 한다.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관객들께 미안하다. 이걸 막지 못해서."

영화인들이 자기 일에는 눈을 감는다

 19일 오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설계자> 상영 후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민병훈 감독.

19일 오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설계자> 상영 후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민병훈 감독. ⓒ NEMAF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나오자 민 감독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민 감독은 2012년 유준상·김지영 주연 <터치>를 개봉 1주일 만에 스스로 상영 중단을 요청했던 아픔이 있다. 대기업극장들의 퐁당퐁당(교차상영)으로 상영관을 배정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영화인들이 SNS 등을 통해 이명박과 박근혜를 비판했으면서 자기 일에는 눈을 감는다. 이게 이명박이나 박근혜만큼 심한 문제다. 그런데 왜 눈을 감느냐. 이렇게 나오는 게 자본주의 논리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나?

핵심은 영화인과 경제 논리가 그 선을 넘어갔다는 것이다. 고급 외제 차가 광속을 하는데 신호등이 없으니 국가에 신호등과 건널목을 만들어 달라는 거다. 영화의 길은 고속도로가 아니다. 제대로 된 경쟁을 못 하게 한다. 북한의 극장도 이렇게 안 한다. 전 세계 어느 극장이 이렇게 하냐? 이게 대한민국밖에 없다."

민 감독은 단순히 기업의 문제라기보다는 심각한 사안을 방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류승완 감독과 잘 안다. 이건 류 감독의 문제가 아니다. 이 화살은 대기업보다는 국가의 책임 문제로 가야 한다. 기업은 브레이크가 없다. 국가가 나서줘야 한다. 애들이 피 터지게 싸우면 말려야 하는데, 그렇게 싸우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애들 패는 데, 그걸 놔두고 상업 논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

- 생각하는 구체적 방법이나 방향이 있나?
"스크린 독과점은 대안법이 아닌 규제법이다. 하루 한 극장 전체 상영에서 특정 영화가 총 상영의 20%를 못 넘게 해야 한다. 모든 영화의 온관 상영과 1주일 상영을 보장해 줘야 한다. 그래놓고 안 된다고 하면 인정한다. 하루에 한 번 조조나 심야에 배정해 놓고 관객들이 안 찾는다고 하는데 프라임 시간대 영화를 걸어준 게 있나? 대작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의 마케팅비도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경쟁이 안 된다."

- <군함도>에 대한 스크린 독과점 비판 때문에 상당히 화제가 됐다.
"전화가 엄청 왔다, 인터뷰 요청이 많았다. 난리가 난 건가 싶었다. 문자가 오던데, 실시간 검색어 오른 것도 몰랐다. 내가 한 영화를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다 국가가 빨리 해결해 달라고 한 거다. 국가가 해결하지 않으면 세월호처럼 침몰한다. 사이렌 울리고 호루라기 불어야 하는데. 그런데 안 한다. 그래서 나라도 분 거다."

독립예술영화는 양식을 채우기 위해 보는 것

제19회 BIFF 개막 민병훈 감독, '세월호를 기억하세요!'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민병훈 감독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4월16일을 적은 손바닥을 펼쳐보이고 있다.  민병훈 감독이 .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2일부터 11일까지 7개 극장 33개 상영관에서 79개국 314편의 작품이 상영되며 해운대 비프빌리지와 남포동 비프광장에서 야외무대인사와 오픈토크, 영화의전당 두레라움광장에서 아주담담 등이 진행된다.

▲ 제19회 BIFF 개막 민병훈 감독, '세월호를 기억하세요!' 지난 2014년 10월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민병훈 감독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4월 16일을 적은 손바닥을 펼쳐보이고 있다. ⓒ 이정민


민 감독이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다른 영화인들보다 적극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한국 영화계에서 얽혀 있는 관계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줄이 없다." 민 감독은 러시아국립영화학교에서 촬영을 공부했다. 세계적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전담 촬영했던 바딤 유소프가 주임 교수였다.

"충무로 연출부 아니었고 국내 대학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다 보니 인맥이 없다. 그렇다고 외톨이처럼 혼자 살 수는 없지 않나. 돈이 없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내 말과 행동을 표현할 뿐이다. 내게 영화 만드는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다. 지금까지 영진위 각종 지원 사업에서 한 번도 뽑힌 적이 없다."

- 신작을 완성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영화인가?
"<황제>라는 영화다. 피아니스트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금껏 만든 15편 영화의 결정판이다. 대출받아서 만들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편안해졌다. 화가 많이 났었다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베토벤 음악을 통해서 가라앉았다. 음악만 14곡이 나온다. 추후 국내 영화제 등을 통해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다.

독립예술영화는 맛이 없다고 하던데, 그건 영화를 장애인으로 보는 것 같다. <황제>는 클래식 영화다. 재미로 보는 게 아닌, 양식을 채우기 위해 보러 가는 거다."

민병훈 감독 스크린독과점 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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