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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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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새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가구와 가전을 모두 장만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가구 매장과 가전 매장을 돌아다니며 소위 말하는대로 '신 나게' 돈을 쓰고 물건을 구입했다. 돈을 신 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건네진 금액만큼의 물품에 추가로 기분 좋게, 신 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매장 직원들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어(그들이 표현하는 대로) 끊어지지 않는 환한 미소를 시종일관 유지하였고, 고객이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보폭과 몸짓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물며 계약서를 쓸 때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파에 앉아 있는 내 눈높이에 맞추어 응대하고 있었다. 갑이 되는 순간이었다!

가히 그들은 내가 신 나게 돈을 쓸 수 있도록 매우 열심히 물품판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나는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감수성의 문제였을까? 물건을 고르고 선택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싶었다. 그들의 친절함이 진심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인 상품판매 활동의 부가활동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매장에 머무르고 고민하는 시간이 그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본의 아닌 갑의 위치에서 벗어나서 지인과 식사를 하면서 이 불편함에 대해 털어놓았다. 프랑스에서 잠시 유학하고 돌아온 그(그녀)는 프랑스의 사례와 너무 대비되는 상황이라며 사례를 늘어놓았다.

"우선 거기는 갑을 관계 개념이 없어. 택배를 지들이 잘못 보내놓고 2주나 지나도록 택배가 도착하지 않아 항의전화를 했더니 급한 것이면 와서 찾아가래. 돈은 내가 내는데."
"미안하다는 말 자체가 없어. 자기는 문제를 회사에 전달만 하겠대. 처리는 회사에서 연락이 따로 갈 거래. 아니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서비스를 못 받는 건 무슨 경우니?"
"우선 그 사람들은 이건 구매자와 회사의 문제이지, 구매자와 내 문제가 아니라는 거라는거야. 그러니 불만이 있으면 니가 이 서비스나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되잖니? 그런 식인 것 같아."

그(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나라는 참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그래 맞아. 직원이 사장도 아니고 자기 물건도 아닌데 왜 그렇게 친절한 거지?", "과연 그들의 진심에서 오는 친절함은 이제 없는 것일까?", "가면을 쓰고 친절함까지 판매해야 할 의무가 직원에게 있는 것일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여기서 문제는, 감정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는 노동의 영역은 물론이거니와, 감정노동을 할 필요 없는 상품판매직도 감정노동을 강요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판매원의 역할은 매장내 물건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구매자에게 정보를 잘 전달하고, 구매과정을 착오 없이 진행하면 될 뿐이다. 우리나라 매장에는 그 업무프로세스에 친절함이라는 목록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것이다. 분명한 '감정노동'이 '판매노동' 위에 추가되어져 있는 상황이다.

우린 주변에서 매장 직원이 친절하지 않아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았다거나, 직원의 불친절함으로 본사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물품을 구매하러 간 것 뿐이었는데 판매직원의 '떠받듬'까지 당연히 요구하고, 제공되지 않으면 모욕을 당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변 사례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언론에서 매일 다양한 영역과 버전의 '갑질'뉴스들이 생산되고 있다. 대부분 그러한 갑질의 발단은 본인이 원하는 친절함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때 시작된다.

물건은 집으로 쏙쏙 도착했고, 가전제품과 가구에 잔짐들을 거의 챙겨 넣을 때쯤 전화 한 통이 왔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고객님 물건은 잘 받아보셨는지요?(…)당시 고객님의 서비스를 담당했던 직원에 대한 평가를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할 때(…)"

그들에게 강요된 감정노동의 대가는 이러한 평가 전화로 마무리 된다. 평가의 대상은 가구를 설치하러 온 설치기사였다. 가구를 잘 설치하였는지, 이상이 없었는지에 대한 비중보다는 그들이 웃는 얼굴로 고객을 만났는지, 인사를 잘 했는지, 친절하였는지에 대한 평가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건에 대한 평가점수를 받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점수로 평가한다는 것은 좀 불편합니다. 점수를 굳이 받아 가셔야 한다면 10점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평가 답변을 받아 취합하는 것이 업무이시니 말씀은 드리겠지만, 꼭 기타항목에 제 의견을 반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평가 항목을 설정할 때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닌, 제가 구입 한 것은 물품이니 당사에서 생산한 물품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를 중심으로 물어봐 주시기를 바라고, 친절하였는지가 아닌 직원이 상품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잘 설명을 전달했는지를 물어봐 주시는 게 더 적절해보입니다."

그리고도 이런 전화를 두어 통 더 받았고, 두어 번 같은 대답을 했다. 갑으로서의 불편함은 매장을 나와서도 이렇게 이어졌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는 온전한 3차 산업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산업 구조 하에서 서비스라는 개념은 향유해야하고 제공받아야하는 온전한 경제 가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서비스라는 경제 가치가 우리사회에는 너무나 과도하게 요구되어지고 만연해져 있다. 우리가 물품을 구매하고 받아야 하는 서비스란, 물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수반되는 사용설명, AS에 관한 내용이다. 무릎 꿇고 눈높이를 맞춰주는 대우를 받고 향후 전화로 그 친절함의 정도를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 중 과도한 친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제공받지 않을 경우 오히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한 사고가 '갑질사회'를 탄생시킨 원인이지 않을까 우리는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감정노동의 영역이 제대로 분류되고 온전한 가치로 환산 받을 수 있을 때 '갑질'이라는 단어도 같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민경 시민기자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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