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설치는 것이 일상인 시간이 돌아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가 여름잠에서 깨어났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기를 선보이며.

아스널이 12일 새벽 3시 45분(한국시각)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시즌 EPL 개막전 레스터 시티와 맞대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수비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며 충격적인 패배가 눈앞에 다가온 듯 보였지만, 아스널은 홈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양 팀 모두 가동할 수 있는 최상의 전력을 내세웠다. 아스널은 3-4-3 포메이션을 선택했고, '이적생' 알렉산드르 라카제트와 세아드 콜라시나츠, 부상으로 인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메수트 외질까지 선발 출격시키며, 승리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레스터는 4-4-2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제이미 바디와 오카자키 신지가 전방에서 호흡을 맞췄고, 리야드 마레즈와 마크 알브라이튼, 해리 맥과이어 등 최정예 전력을 투입해 동화 같은 원정 승리를 노렸다.

전반 1분 30초 만에 득점이 터졌다. 5,200만 파운드(한화 약 733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아스널에 합류한 라카제트가 주인공이었다. 라카제트는 골문 앞에서 절묘한 위치를 선점하며, 모하메드 엘네니의 빠른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라카제트의 환상적인 데뷔전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정확히 2분 30초 뒤, 레스터가 달아오른 아스널의 홈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알브라이튼이 반대편 포스트를 향해 크로스를 연결했고, 공격에 가담한 맥과이어가 머리로 살짝 내준 것을 오카자키가 헤더로 연결해 동점골을 뽑아냈다. 

초반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스널은 알렉스 옥슬레이드 챔벌레인의 엄청난 스피드와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역전을 노렸다. 수비부터 짧은 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했고,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창의적인 침투 패스로 득점을 기대케 했다. '에이스' 알렉시스 산체스가 빠졌지만, 라카제트가 그의 공백을 잘 메워나갔다.

레스터는 뒷공간을 노렸다. 바디의 빠른 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공격에 가담한 아스널 양 측면 윙백의 빈자리를 끊임없이 공략했다. 전반 29분, 역전골이 터졌다. 아스널 중앙 수비수 롭 홀딩이 빌드업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고, 알브라이튼의 빠른 드리블에 이은 크로스가 바디의 헤더로 이어지며 골망이 출렁였다. 전반 32분에도 홀딩의 실수에 이은 레스터의 빠른 역습이 오카자키의 헤더로 이어지며 추가골까지 기대케 했다.

아스널에게 행운이 따랐다. 레스터의 역전골 이후 답답한 흐름을 이어갔지만, 전반 추가 시간 막판 동점을 만들었다. 외질이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수비를 등지고 있던 라카제트를 향해 패스를 연결했고, 라카제트는 터닝슛을 시도했다. 이것이 맥과이어를 맞으며 뒤로 빠졌고, 콜라시나츠의 침착한 패스를 대니 웰벡이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후반전은 더 뜨거웠다. 후반 3분, 외질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 레스터의 골문을 위협하자, 바디의 빠른 침투가 아스널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균형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반 9분, 아스널은 자신들 진영에서 또다시 실수를 범하며 역습을 허용했고, 마레즈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이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마레즈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아스널의 골문 쪽을 향해 날아들어 왔고, 나초 몬레알을 따돌린 바디의 높은 헤더가 골망을 갈랐다.

아스널은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후반 21분, 아론 램지와 올리비에 지루를 투입했고,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측면으로 자리를 옮긴 라카제트의 스피드가 돋보이기 시작했고, 지루가 공중볼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후반 29분에는 시오 월컷까지 투입하며, 공격에만 집중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의 전략이 통했다. 후반 37분,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볼을 그라니트 샤카가 침투 패스로 연결했고, 안정적인 퍼스트 터치를 선보인 램지의 슈팅이 골망을 갈랐다. 기세가 오른 아스널은 극적인 역전골까지 터뜨렸다. 후반 39분, 라카제트의 슈팅이 만들어낸 코너킥 기회에서 상대 수비의 거친 몸싸움을 이겨낸 지루의 헤더가 극장골로 이어졌다.

지난 시즌 '라이벌' 리버풀에게 3-4로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던 악몽이 떠오른 개막전. 아스널은 패배 직전까지 몰린 상황을 뒤집으며, 커뮤니티 실드 우승에 이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스널과 레스터가 웃지 못하는 이유

EPL 개막전다운 명승부였다. 경기 시작부터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고, 역전을 거듭하며 축구에 굶주린 팬들을 열광케 했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 모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경기였다. 아스널은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기는 했지만, 수비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스리백으로 변화를 주며 수비진의 안정을 더 하려 했지만, 완벽하게 실패했다.

자신들 진영에서 불안정한 볼 처리로 위기를 자초했고, 바디의 빠른 발에 여러 차례 흔들렸다. 아스널이 실점한 3실점 모두 헤더였다는 점은 공중볼 경합에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홀딩은 너무나도 쉽게 뒷공간을 내줬고, 부정확한 패스로 실점을 내주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홀딩이 빠지고,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된 뒤에야 수비가 안정을 찾았다. 공격에서도 라카제트가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지루와 연계 플레이가 나쁘지 않았다. 아스널은 스리백 카드가 수비의 안정을 더 할 수 없다면, 기존의 포백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중원도 변화가 필요하다. 샤카가 공수 양면에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준 것과 달리, 엘네니는 아쉬운 모습이 많았다. 외질도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닌 탓인지 날카로운 패스나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스널은 램지의 투입 이후에야 패스가 안정되고, 역전골이 터졌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레스터도 마찬가지다. 두 차례나 역전에 성공하며 아스널 원정 승리를 눈앞에 둔 듯 보였지만, 불안한 수비가 발목을 잡았다. 중앙 수비수로 호흡을 맞춘 웨스 모건과 맥과이어는 아스널의 침투 패스와 공격수를 여러 차례 놓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수비형 미드필더 윌프레드 은디디와 매튜 제임스도 오랜 시간 중원 싸움에서 밀렸고, 수비진에 안정감을 더하지 못하면서 숙제를 남겼다.

바디를 활용할 방법에도 다양성을 더할 필요가 있다. 높은 타점과 감각을 이용해 멀티골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바디의 강점에는 빠른 발도 있다. 그의 스피드를 활용할 수 있는 날카로운 침투 패스가 더해져야 레스터의 공격력은 지금보다 빛을 발할 수 있다.

바디와 전방에서 호흡을 맞춘 오카자키는 득점을 제외하면,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올 시즌 오카자키가 확고한 주전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시절 못지않은 활동량과 침투, 득점력을 보여줘야 한다.

팬들에게는 최고의 개막전이었지만, 팀에게는 큰 과제를 남긴 경기. 승자와 패자 모두 이날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며, 드라마 같은 시즌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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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VS 레스터 시티 EPL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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