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우도 악한 것.'

'절대 악'을 설명하는 말이다. 나치 파시즘의 유대인 학살 등이 사례로 얘기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치 독일이 자행한 잔악한 행위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나치 옹호자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절대 악은 영화, 특히 액션 영화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영화 속 절대 악은 누가 보더라도 악하게 느껴지도록 묘사된다. 그 결과 관객들은 절대 악에 맞서는 주인공에 감정 이입하며, 주인공이 절대 악을 무찌를 때 희열을 느낀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서 서도철 형사가 재벌 3세 조태오를 제압하는 명동 격투 장면은 이러한 쾌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과연 절대 악은 현실에 존재할까?

도덕 상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도덕의 기준은 특정한 문화나 사회에 상호 환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대적이다. 즉,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관해 서로 다른 문화마다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그런 경우가 흔하다는 것은 꽤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어느 시대, 모든 인간)서도 악한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단순히 선과 악, 둘 중 하나로 나뉘는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진다. 영화 <베테랑>은 악인 조태오를 만든 '특권을 용인하는 가족과 사회 시스템 전체'를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조태오는 어떤 상황에서도 악한 '절대 악'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양면성을 획득한다.

이처럼 현실 속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악한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절대 악이 없다고 해서 객관적 악, 상대적 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도덕 가치들은 문화마다 달라질 수 있으나 모든 문화가 공통으로 가진 도덕 가치들이 있다. 그것이 없다면 사회가 존립할 수 없는 객관적 가치들 말이다. '살인'에 대한 인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살인은 악한 행위로 규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은 사회 구성원들의 치열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위치를 획득한다. 그 결과 아무리 어떤 사건이나 사람이 양면성을 지닌다 해도, 살인, 소수자 혐오 등의 사회 존립에 필수적이라고 합의된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는 객관적 악 혹은 상대적 악으로 규정된다. 영화 <베테랑>은 조태오가 객관적 악, 상대적 악임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소수자 보호라는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는 그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로 인해 조태오는 '피해자'라는 양면성을 가짐에도, 결과적으로 영화 속에서 악인으로 비치게 된다.

 영화 <군함도>

영화 <군함도>를 통해 류승완 감독은 '일본은 절대 악'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려고 시도한다.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 CJ 엔터테인먼트


<베테랑>에서 조태오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류승완 감독의 절대 악에 대한 고민은 그의 최근작인 <군함도>에 까지 이어진다. 그는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군함도 관련 자료를 조사했더니 그곳엔 나쁜 일본인, 착한 조선인만 존재했던 게 아니더라."

"이런 소재를 다룰 때 너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면 왜곡하기 좋은 모양새."

그의 말처럼 <군함도>는 '일본인은 절대 악'이라는 오류에 매몰되지 않는다. 하지만 <베테랑>과 달리 <군함도>는 객관적 악, 상대적 악을 설정하는 데에 관객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일본인은 절대 악이 아니다, 그렇지만... <군함도>가 비판 받는 이유

 영화 <군함도>

분명 당시에는 착한 조선인만 있던 것도 아니고, 나쁜 일본인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 선악 구분마저 사라지는 건아니다. ⓒ CJ 엔터테인먼트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섬의 모양이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로 불린다. 그러나 1940년대 조선인들에게 군함도의 다른 이름은 '지옥 섬' 또는 '감옥 섬'이었다. 군함도가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 징용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은 언제나 가스 폭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좁고 위험한 곳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채굴 작업에 동원됐다. 당시 1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질병, 영양실조, 익사 등의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영화 <군함도>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조선인 노동자 400명의 집단 탈출이라는 허구의 스토리를 그려낸다.

물론 실화에 허구의 해피엔딩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영화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구축한 캐릭터에 있다. 영화는 '일본인은 절대 악, 조선인은 절대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난다. 대신 '그곳에는 나쁜 조선인도 있었다'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 과정에서 하시마 광업소 노무계원 송중구, 시마자키 소장, 일본군 야마다 그리고 독립운동 핵심인사 윤학철, 총 2명의 조선인과 2명의 일본인을 객관적, 상대적 악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영화는 두 조선인, 송중구와 윤학철의 악행을 묘사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영화 <군함도>

<군함도>의 역사관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표하는 관객들에게는 나름의 분명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 CJ 엔터테인먼트


개개인의 성정이 어떻든 군함도를 둘러싼 비극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가려진다. 일본인은 가해자이며 조선인은 피해자이다. 물론 윤학철, 송중구 그리고 현실의 친일파 등의 나쁜 조선인도 존재하며, 조선인을 돕고 일제를 비판하던 착한 일본인 또한 있었다. 그렇기에 '일본인은 절대 악, 조선인은 절대 선'이라는 개념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조선인들을 향해 벌인 악행들은 일본인을 객관적, 상대적 악으로 자리매김한다.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현재의 관객들 또한 이 관점의 연장 선상에서 사고한다. 사회적 합의는 궁극적으로 객관적 가치들을 훼손한 행위의 주체자로 일본과 일본인을 지목한다.

하지만 영화는 조선인들을 객관적, 상대적 악으로 규정한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시마자키 소장과 일본군 야마다 또한 일본인으로서 객관적, 상대적 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시마자키 소장은 윤학철과 함께 악행을 벌이지만, 영화 속 그 비중은 윤학철에 비해 현저히 적다. 반면 야마다는 영화 후반 악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광기에 휩싸인 그의 모습은 악인이라기보다는 병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 결과 영화 속에 객관적, 상대적 악으로 윤학철과 송중구만이 남게 된다. 기억에 남는 건 동료를 총으로 쏘는 윤학철과 조선인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일본인 소녀를 죽인 송중구의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와 관객들이 충돌하게 된다. <군함도>가 훌륭한 탈출극의 스펙터클을 보여줬음에도 많은 관객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객관적, 상대적 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영화는 따르지 않는다.

<박열>과 <군함도>에 보내는 관객들의 상반된 반응

 영화 <박열> 역시 <군함도>처럼 이분법적으로 당시를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박열>에는 관객의 찬사가 쏟아졌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영화 <박열> 역시 <군함도>처럼 이분법적으로 당시를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박열>에는 관객의 찬사가 쏟아졌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박열>과 <군함도>는 공통점을 가진다. 둘 다 일본강점기를 바탕으로 했고, 절대 악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박열>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박열의 연인이자 동료인 가네코 후미코의 말이다.

"그(박열)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녀의 말마따나, 영화 속에서 박열은 절대 선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동료들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같은 조선인들은 그의 독립운동 방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일본인들은 모두 악하지 않다. 일단 가네코 후미코 자체가 일본인이며, 박열을 취조한 다테마스 판사와 후지시타 간수 역시 알게 모르게 박열을 돕는다.

하지만 <박열>은 <군함도>와 달리 조선인을 객관적, 상대적 악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박열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한다는 가네코 후미코의 말처럼, 영화는 조선인을 객관적, 상대적 선으로 규정하고 일본인을 정반대에 놓는다.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살은 일본인들을 객관적, 상대적 악으로 규정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군함도>와 달리 관객은 <박열>과는 합일을 이룬다. <박열>은 사회적 합의를 따른다. 또한, 영화는 조선인 학살에 대한 상세한 재현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영화의 선악 구도는 설득력을 얻게 된다.

사람 사는 곳에는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다. 하지만 객관적, 상대적 악은 분명 존재한다. 일본 강점기, 특히 군함도를 둘러싼 비극은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인 조선이 엄연히 가려지는 역사다. 그런데도 이 시기를 묘사하며 조선인을 객관적, 상대적 악으로 규정하고 선과 악을 모호하게 그리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어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군함도>는 영화이지 역사서가 아니라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군함도를 둘러싼 진실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 또한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함도>는 그 가족들이나 이에 분노하는 관객들에게 위로는커녕, 분노만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군함도>를 향한 관객들의 비판은 이러한 연유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가 문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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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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