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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론에는 소위 '중앙'이라는 '서울발' 기사만 차고 넘칠 뿐 내가 사는 곳을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역이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지역 시민기자를 만나러 가면서 해당 지역 뉴스를 다룹니다. 첫 행선지는 대구입니다. [편집자말]
구미참여연대 페이스북에 올라온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설계안. 구미시가 공모한 설계안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구미참여연대 페이스북에 올라온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설계안. 구미시가 공모한 설계안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 출처:구미참여연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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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4일 오전 9시 38분]

지난 24일 구미참여연대(아래 참여연대)는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 계획을 취소하고 경상북도가 '박정희 100년 사업 계획'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민심을 거스를 수는 없다. 박정희 100년 사업 취소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박정희 유물전시관 건립 계획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경상북도는 "박 전 대통령이 지역 출신이긴 하지만 미화하거나 우상화 등 오해를 살 수 있는 행사를 하지 않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라면서 박정희 100년 사업 계획 일부를 취소했다. 취소된 사업은 경북도와 구미시가 공동 추진하는 '박 전 대통령 생애를 다룬 전기와 다큐멘터리 제작·방송'(예산 6억 원)과 '기념음악회'(각 1억 원), '탄신제'(각 5000만 원) 등이다(이상 7월 21일 <경향신문> 보도).

참여연대는 경상북도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남유진 구미시장의 결단, 특히 무엇보다 먼저 '박정희 유물전시관'(아래 '유물전시관')의 건립 계획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유물전시관은 남유진 시장이 수년간 설립을 추진해 온 역점사업으로 올 10월 착공을 목표로 하는 200억 원(국비 80억 원, 도비 15억 원, 시비 105억 원)짜리 대형 건축 사업이다.

구미시는 선산출장소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서 위탁 받은 5670점의 박정희 유물과 기증받은 유물들을 보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유물전시관에 보관할 자료조차 제대로 완비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유물전시관이 완공되면 12만 평에 이르는 이른바 '박정희 타운'이 완성되는 셈인데, 전체 건축비(1200억 원)는 차치하더라도 75억 원에 이르는 연간 운영비 부담도 구미시로선 버거운 상황임을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미 박정희 대통령을 기념하고 추모할 장소가 차고 넘치는 구미에 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유물전시관을 건립할 것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유물과 자료는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기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지난 18일에 이어 페이스북에 '200억짜리 박정희 유물 전시관' 설계 공모작 사진을 추가 공개하면서 이 게시물에 누리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미시의 '분홍빛' 계획, 어긋나다

모르긴 해도 남 시장과 구미시의 계획은 분홍빛이었을 것이다. 9월에 기념우표가 나오고, 10월에 새마을 테마공원이 완공된 뒤 탄신제(!)를 치른다. 내년에 생가 인근 터 3만 5000여㎡에 상설·기획 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등을 갖춘 연면적 4000㎡의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착공하면 '박정희 타운'의 그림은 완성되니 말이다(관련 기사 : 박정희 재떨이 모시는 200억짜리 자료관이라니...).

잘 나가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어쨌든 탄핵에 이은 대선으로 교체된 정권 탓이라고 강변하고 싶을 것이다. '따님이 잘 해보려다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애먼 그 부친이 뜻하지 않은 구정물을 덮어썼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백보 양보한다고 해도 박정희 기념사업과 관련된 일련의 변화는 전 대통령이 즐겨썼던 '비정상의 정상화'에 가깝다. 기념우표는 말할 것도 없고, 10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쏟아붓고 있는 기념사업들은 민생과는 무관한 과도한 '박정희 마케팅'일 뿐이다.

구미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박정희 생가를 찾은 방문객들은 2013년의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구미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박정희 생가를 찾은 방문객들은 2013년의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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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구미시의 발표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객 수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미시 상모동 생가에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매년 50만 명 정도가 방문하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한 2012년 12월부터 크게 늘기 시작했다.

2013년에 78만 26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방문객 수는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해 2014년과 2015년에는 각각 69만 600명과 51만 9211명을 기록했고, 탄핵이 이뤄진 지난해에는 38만 279명이 찾아 처음으로 4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1~6월) 방문객 수는 12만 2024명으로 공식 집계됐는데, 이는 2013년에 비해 1/3로 줄어든 것이다. 구미시는 올해가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인 만큼 하반기에 방문객들의 발길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히고 있다.

몇 차례 들른 생가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방문객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단체관광을 온 고령자란 사실이다. 대체로 60대 이상의 이들 방문객들은 박정희 치세를 겪은 시골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들은 '보릿고개'를 극복하게 해 준 위대한 근대화의 지도자로서 박정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구미시의 브랜드 상징을 묻는 설문에 34.6%의 시민들이 '금오산'을 꼽았다. '새마을운동'이나 '박정희'는 후순위였다.
 구미시의 브랜드 상징을 묻는 설문에 34.6%의 시민들이 '금오산'을 꼽았다. '새마을운동'이나 '박정희'는 후순위였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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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고향인 구미는 2016년 12월 말 기준으로 평균연령이 36.5세인 젊은 도시다. 이는 구미의 정서가 박정희 생가를 찾아 1960, 1970년대를 회고하는 방문객들과는 얼마간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나이로 65세의 시장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박정희 관련 사업에 골몰하고 있다.

2016년 구미YMCA 여론조사가 말해주는 것들

지난해 5월 구미YMCA가 여론조사 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구미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이 사업이 여론을 반영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구미의 상징 브랜드'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시민들은 34.6%가 '금오산'을 꼽았다. 그 다음이 '전자산업도시'(28.7%)였고, '새마을운동'(14.5%)과 '박정희'(6.4%)는 후순위였다. 구미시와 남 시장은 박정희를 구미시를 대표하는 상징 이미지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정작 시민들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미시민들은 70.9%가 긍정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구미시민들은 70.9%가 긍정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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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단 구미시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평가에 있어서는 긍정적이었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응답한 비율(70.9%)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비율(16.1%)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브랜드 사업의 필요성'이나 '박정희 브랜드 역사관광 상품화 사업 찬반'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200억 원)과 '새마을 테마파크'(860억 원)을 포함하는 '박정희 브랜드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 '필요(48.8%)'와 '불필요(46.7%)'가 오차 범위 안이었다. 적어도 시민의 반수는 이 사업의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박정희 브랜드 역사관광 상품화 사업 찬반'에 대한 의견은 '찬성(51.2%)'이 '반대(41.4%)'를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브랜드 사업의 필요성’이나 ‘박정희 브랜드 역사관광 상품화 사업 찬반’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브랜드 사업의 필요성’이나 ‘박정희 브랜드 역사관광 상품화 사업 찬반’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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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박정희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구미시민들은 이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박정희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구미시민들은 이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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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탄신제'라는 명칭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행사는 구미시가 맡되 검소하게 진행하여야 한다고 답변했다.
 시민들은 '탄신제'라는 명칭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행사는 구미시가 맡되 검소하게 진행하여야 한다고 답변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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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정희 탄생 100주년 사업에 대한 인지'는 62.4%가 '잘 모른다'고 응답한 반면, '잘 알고 있다'거나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들어본 적 있다'는 37.6%에 그쳤다. 정작 시민들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구미시는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치러질 '박정희 탄신제' 명칭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부적절(59.3%)'하다는 의견이 '적절(34.2%)'하다는 의견보다 훨씬 높았다. '탄신제 진행 주체'에 대해서도 과반수(52.4%)가  '시가 운영하되 검소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시민들은 '탄신제'처럼 '우상화'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보였으나 일단 시가 운영주체로 나서는 데 대해서는 수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운영이 '검소'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서 이 사업에 예산을 마구 투입하는 데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사업 예산 평가'에서 시민들은 압도적으로 이 사업의 예산 규모가 '과하다'(76.8%)는 데 손을 들었다. '부족하다'는 의견은 6.4%에 그쳤다. 지난해 당시 제시된 예산은 40억 원이었다. 구미YMCA는 이를 근거로 '사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박정희 뮤지컬'(28억 원)은 취소됐다.

구미시에서 시행하는 박정희 100주년 사업 예산(당시 40억)에 대한 평가에서 시민들은 압도적 비율로 '과하다'고 응답했다.
 구미시에서 시행하는 박정희 100주년 사업 예산(당시 40억)에 대한 평가에서 시민들은 압도적 비율로 '과하다'고 응답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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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묵은 여론조사를 굳이 돌아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박정희 관련 사업은 1000억 원을 상회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 진행되고 있지만, 마땅히 구미시민들의 여론을 확인할 방법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조사 결과로 현재 구미시민들의 의견으로 갈음하는 것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2016년 5월에 시행된 이 여론조사에는 지난해 하반기에 온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과 탄핵 시기의 지역여론이 따로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억 유물관으로 '박정희'가 상징이 될 순 없다

경북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앞에 세워진 높이 5미터짜리 박정희 동상.
 경북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앞에 세워진 높이 5미터짜리 박정희 동상.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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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는 부녀지간 권력을 계승한 것 같다는 대중의 착시를 깨뜨렸다. 마치 새로운 권력으로 부활한 듯한 현직 권력이 무참한 국정 농단의 결과로 대중으로부터 버려지면서 저 견고했던 신화의 일부분도 깨져나갔다(관련 기사 : 박정희 신화의 종말, 새로운 시민의 탄생).

신화가 막을 내리는 자리에 귀환하는 것은 시민이다. 권력이란 자신들의 위임에 의해 탄생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인식을 이제야 환기하게 된 시민들은 어느 날, 이 젊은 도시가 '과거'와 '죽은 자의 이름을 뒤집어 쓴 퇴행적인 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도시'라는 걸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200억 원 박정희 유물 전시관이 건립돼 박정희 생가, 민족중흥관, 새마을 테마 공원을 잇는 10만 평에 이르는 '박정희 타운'이 완성된다고 해서 갑자기 구미시의 상징 브랜드가 '박정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설비만 1200억 원, 한 해 운영비만 75억 원에 이르는 거대한 '우상화'의 상징이야말로 시민들이 원하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일 뿐이기 때문이다.

구미참여연대 페이스북에 붙은 다음 댓글이 가리키는 부분도 바로 그 점일 것이다.

"구미에 태양궁이네. 구미 시민 여러분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연OO)

참여연대는 '박정희 유물 전시관' 건립 취소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한다. '죽은 자의 제사상을 차리는 일보다는 산 자들의 삶을 보살피는 것'이 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구미가 '젊은 도시'로 거듭 나는 일은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24일 구미참여연대가 낸 성명의 마지막 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낳은 도시 구미가 과거 지도자의 후광에 기대지 말고 새로운 활력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박정희 100년'을 계기로 구미시가 개발독재시대의 상징인 박정희와 결별을 선언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죽은 자의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쓴 도시가 아니라 젊은 도시, 새로운 활력이 생성되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시민들과 함께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고향 도시인 구미가 박정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길이며 박정희를 재평가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 구미참여연대, '민심을 거스를 수는 없다. 박정희 100년 사업 취소하라!'(2017. 7. 24.) 중에서

'박정희 타운' 예산 투입 관련 현황표.
 '박정희 타운' 예산 투입 관련 현황표.
ⓒ 구미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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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정희 타운, #박정희 유물관, #구미, #박정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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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7 오마이뉴스 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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