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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작품만 전시되던 스크린도어에 일반 시민들의 시도 걸리고 있다. 동시에 여러가지 문제점도 불거지고 있다.
 시인들의 작품만 전시되던 스크린도어에 일반 시민들의 시도 걸리고 있다. 동시에 여러가지 문제점도 불거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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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지하철 스크린에 부착된 시 한 편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서울시가 매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공모전에서 채택된 시 <줌인>이다. 집에서 독립한 딸이 보내준 사진을 보고 그리움을 느끼는 아버지의 심정을 표현했다는 이 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난다.

'미로와 같은 폰 속을 헤집고/ 그 애를 당겨본다/ 엄지와 검지 사이/ 쭈욱 찢어지도록 가랑이를 벌린다'

이 시는 '근친 성추행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엄연한 성범죄를 부성애로 은유했다'는 항의에 직면했다. 그리고 결국 해당 시는 스크린 도어에서 철거되었다.

서울시가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시를 전시한 이래로 앞선 언급한 것과 같은 사태는 종종 반복됐다. 가령, 시민공모작은 아니지만 2012년에는 <목련꽃 브라자>라는 작품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시는 건조 중인 누군가의 속옷을 보며 그 여성의 가슴을 상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를 일부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이 시 역시 항의 끝에 결국 스크린 도어에서 내려졌다. 이 외에도 시민들의 반발로 몇몇 시들이 철거되는 일이 이어졌다.

항의 받고 내려진 시들, 무엇이 문제일까?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논란에 대해 몇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다. 하지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건 도마 위에 오른 시들이 과문한 내가 알아차릴 정도로 좋은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서울시의 시 공모전은 시민들의 참여에 더 큰 의의를 둔 행사고, 특정 시가 좋냐 나쁘냐는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이며 그것 자체만으로 철거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작품의 내재적 결함이 시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 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소 동떨어진 예시겠지만 보들레르의 시 <살인자의 술>을 떠올려 보자. 이 시의 화자는 다름 아닌 술독에 빠져 아내를 살해한 남자이며 그는 자신의 부인을 작품 내내 '년'이라고 부른다. 비윤리성이나 선정성으로 치자면 앞서 언급한 두 시보다 훨씬 더 나아간 시인 셈이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시는 광란에 빠진 사랑의 정동을 적나라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불편한 표현들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이 금기를 건드리고 폭력성을 드러낼 때는 그 이면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반면 문제가 된 시들에선 그런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딸이 보낸 사진에서 가랑이를 쭉 벌리는 남성과 속옷을 보며 가슴을 상상까지 하는 남자의 이야기 외에는 정말 아무 내용이 없다. 이러니 그 시를 마주쳤을 때, 그런 욕망 자체를 대면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쾌감 말이다.

공공장소에 그 시가 있어선 안 되는 이유

물론 공공 장소에 비치되는 모든 문학/예술 작품들이 꼭 아름답기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중요하거나 혹은 너무도 사회적으로 억압된 이야기를 다룬 나머지 공적인 공간에서 전시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를 가진다면, 보는 사람에게 다소 불편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해도 비치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줌인>과 <목련꽃 브라자>가 준 불쾌함도 그런 종류의 것들로 볼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라.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보다 어린 여성을 그 사람이 모르게 성적 대상화하는 것, 원치 않게 자신의 신체가 드러나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을 농담처럼 표현하는 것, 당사자의 속옷을 보며 그 사람의 신체를 기어이 상상하는 내용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무슨 공유될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오히려 두 시에 등장하는 행위와 욕망은 굳이 글로 써서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 여기저기서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남자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다른 여성들을 놓고 품평과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 대중 교통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몸을 훑고 대놓고 성추행까지 저지르는 일, 심지어 사인회장에서까지 어린 여성 연예인을 몰래카메라로 찍으려는 행위 등.

말하자면 문제가 된 시들이 드러낸 정서는 이미 사회에 지나치게 만연하며 직접적인 가해로까지 이어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게 아니라 비판을 받고 지양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저 시들을 보았을 때, 나는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중년 남성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해롭다는 뜻이다.

SNS 이용자들이 스크린도어 시 공모를 비판하기 위해 올린 풍자 시들.
 SNS 이용자들이 스크린도어 시 공모를 비판하기 위해 올린 풍자 시들.
ⓒ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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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의 음담패설'만큼 해로운 시, 이제 그만

어쩌면 문제가 된 시들이 채택이 되고 심지어 전시까지 되었던 것은 비슷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만연하고 누구나 하기 때문에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단톡방 언어 성폭력이나 대중교통에서 남의 몸을 훑는 일, 여성에 대한 지나친 성적 대상화는 문제제기가 빗발쳤던 최근에 와서야 해결해야 할 사건으로 인식되었지 그 전에는 그냥 남자들의 문화 정도로만 여겨졌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이런 일들이 성적 폭력이며 그 사건들이 기반한 비뚤어진 젠더 관념이 얼마나 유해한가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매우 많다. '#문학계_내_성폭력' 운동으로도 드러났지만 문학계도 그런 환경에서 딱히 자유로운 곳은 아니다. 심사를 맡은 이들의 감식안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줌인>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서울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여성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여성단체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관련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방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심사위원 구성에도 변화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서울시는 지하철에 올해 전시할 새로운 시 공모를 열었다. 이전의 사건들 때문인지 공지에는 '게시된 후라도 선정성, 성폄하 등 부정적 내용으로 민원 발생시 게시 취소 및 삭제'를 하겠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과연 올해 공모전은 얼마나 다를까. <줌인>이나 <목련꽃 브라자>와 같은 작품을 다시 지하철에서 마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울시의 적극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태그:#지하철, #시, #젠더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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