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홀랜드와 인터뷰 중인 에릭 남.

톰 홀랜드와 인터뷰 중인 에릭 남. ⓒ 네이버


"영어 잘하네요. 어떻게 영어를 배웠어요?(How did you learn English?)"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톰 홀랜드는 인터뷰어로 나선 가수 에릭남(남도윤)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난 2일 홍보 차 한국을 찾아 네이버 V앱을 통해 제이콘 배덜런과 함께 진행한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에릭남은 톰 홀랜드의 이러한 칭찬(?)에 "난 미국인이다. 깜짝 놀랐나?"라고 답했다. 이에 제이콥 배덜런이 "그럼 한국어는 어디서 배웠어요?"라고 다시 물었고, 에릭남은 "한국어는 여기(한국)에서 배웠다"고 답했다. 최근 소셜미디어 상에서 뒤늦게 이 영상 속 톰 홀랜드의 언행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스파이더 맨 : 홈커밍>의 기록적인 흥행에 힘(?)입어, 톰 홀랜드의 이러한 에릭남에 대한 칭찬과 의문 자체가 동양인을 향한 1세계 백인 남성의 인종차별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비판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반면 할리우드 배우의 악의 없는 인터뷰 내용을 과하게 해석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출생인 에릭남은 지금도 미 국적을 유지 중이다. 흥미롭게도 에릭남은 1988년생이고, 톰 홀랜드는 1996년 영국 출생이다. 일각에선,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영국 출신 톰 홀랜드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에릭남에게 단지 동양인이란 이유만으로 언어에 대한 칭찬과 함께 "어디서 영어를 배웠느냐"도 아닌 "어떻게 영어를 배웠느냐"란 질문을 한 것 자체가 우월적이고 차별적인 언사란 지적이 일고 있다.

"'당신 참 몸매 좋다'고 말하기 적절한 때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리복'이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이 포함된 이미지를 자사 트위터 공식 계정에 게재했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리복'이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이 포함된 이미지를 자사 트위터 공식 계정에 게재했다. ⓒ 리복 트위터 갈무리


"'당신 참 몸매가 좋다... 아름답다'는 말을 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 ("When is it appropriate to say, "You're in such good shape... beautiful")

지난 13일, 프랑스 국빈방문 중이던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아내인 브리짓 여사의 몸을 훑어보며 한 말이다. 스포츠 브랜드 '리복'의 공식 트위터 계정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이 트럼프 미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이 담긴 이미지를 게재했다. 성희롱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서 적절한 때의 오답 5개와 정답 1개를 위트 있게 소개한 것이다.

리복이 제시한 오답은 이렇다. 당연히 "당신이 한 나라 정상의 배우자와 인사를 나누는 세계의 리더일 때"가 포함됐고, "당신이 한 여성과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을 때", "당신의 미래의 장모에게 당신 자신을 소개할 때", "체육관에서 당신이 한 여성 옆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이 모닝커피를 주문하려고 줄을 섰는데 여성이 그 옆에 있을 때" 등이다.

그럼, 리복이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코자 내놓은 정답은? "당신이 부모님(집의) 지하실에서 어릴 적 갖고 놀았지만 잊고 있던 액션 피겨를 수십 년 만에 찾았을 때"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창의적인 퀴즈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각종 인종차별적인 언사와 정책, 미국(백인) 우선주의 정책으로 미국 자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이 트럼프가 "영어 잘하네요. 어떻게 영어를 배웠어요?"라고 동양인에게 묻는다면. 톰 홀랜드와 트럼프 대통령은 다르다고? 그럴 리가.

전세계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트럼프 시대'의 가치관과 철학이 어디서 비롯됐는가.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제1세계 백인 남성중심주의와 이와 연결된 자국 중심주의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영국/영국인이라고 크게 다른가. 트럼프 당선에 앞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브렉시트'의 연원도 복잡한 정치사회적 요인과 함께 이러한 자국 중심주의가 바탕에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평등을 향한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맷 데이먼의 얼굴을 존조로 대체해서 합성한 영화 <마션> 포스터.

맷 데이먼의 얼굴을 존조로 대체해서 합성한 영화 <마션> 포스터. ⓒ 존조 트위터 갈무리


끊이지 않는 할리우드의 '화이트 워싱' 논란에 이어 최근 한국계 미국 배우 그레이스 박과 대니얼 대 킴이 미 CBS의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 오>에서 하차를 선언한 사건 역시 이러한 영미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단면을 증명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주요 미 매체들은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킴과 그레이스 박이 출연료 차별 문제로 <하와이 파이브 오>에서 하차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2010년 시즌1 방송 때부터 공동주연으로 출연해 왔다.

이 두 한국계 배우는 최근 8번째 시즌 촬영을 앞두고 출연료 협상을 진행했고, 백인인 주연 스콧 칸과 앨릭스 오로플린보다 10~15% 적은 수준의 출연료를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거절당한 뒤 출연을 포기한 것이다.

"평등을 향한 길은 결코 쉽지 않다."

CBS와의 협상 결렬 직후, 대니얼 대 킴이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러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또 "변화를 겪은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지금의 실망스러운 순간을 넘어 더 큰 그림을 보기를 모두에게 독려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렇다. 평등을 향한 길이 이렇게 어렵다. 쉽지만 보편적이고, 그만큼 울림이 큰 문장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 내 백인우월주의와 타인종을 향한 불평등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미국 내에서 한층 더 힘이 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이러한 인종적 차별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더욱 큰 반발의 목소리를 불러오는 중이다. 그중 역시 한국계인 <스타트랙> 시리즈의 배우 존 조는 소셜미디어상에서 백인 배우가 주인공인 여러 영화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물을 게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색 인종 배우에 대한 차별에 항의하는 이 위트 넘치는 무브먼트는 소셜미디어상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다. 독이 올라서일까. 앞서 존 조는 지난 4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승객 폭행과 인종차별 사태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가 만든 상황과 이번 일에 분명한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글을 게재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악플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트럼프 시대가 이렇게 무섭다.

다시 톰 홀랜드의 발언으로 돌아와 보자. '유색인종'으로서, 우리는 톰 홀랜드의 발언을 불편해할 자격이 있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이콧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오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백인을 포함한) 기득권자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주고 잘못된 인식을 지적해 주는 일은 여전히 '우리'를 포함한 차별받는 자들의 몫이다. 안타깝게도 그건, 인종차별이든 남녀차별이든 세상의 모든 차별에 문제에서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역지사지가 이럴 때 필요하다.

톰홀랜드 트럼프 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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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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