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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본격 고양이 문예지 <젤리와 만년필> 출판을 알게 됐습니다. 고양이 문예지에 도전한 이유를 한번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고양이 유음.
 고양이 유음.
ⓒ 정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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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 식구가 생겼다. 소위 '고등어'라 불리는, 등 푸른 고양이다. 이름은 유음이. 출판사 이름을 딴 것도 있지만, 굳이 "야옹" 소리를 내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라 그리 지었다.

유음이의 이름은 원래 녹두였다.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라고 부르는 상태인 고등어자반을 먹다 발견되었다. 길고양이 급식소까지 따라온 유음이는 줄곧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구조자가 될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길 어느 날 집 앞까지 따라와 구조된 고양이가 녹두였다.

우리 집으로 오기까지 한 집을 거쳤다. 입양된 지 일주일 만에 파양되었다. 몸무게도 300g이나 줄어서 돌아왔다고 했다. 새로운 집에서 늘어지게 잠을 청하는 유음이를 보면 고양이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고양이 문예지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음은 문학 중심의 창작 집단이자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난해 가을, 건물주로부터 쫓겨날 위기의 공씨책방에서 만난 네 사람이 만들었다. 유음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표되는 비자발적 이주, 전월세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는 1년 이상 한 동네에 머문 적이 없었다. 2년도 채 못 되어 이사하고, 높은 임대료 때문에 쩔쩔매도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당연하게 여겨졌다. 동네 친구를 만들고 싶어도 한 동네에 오래 살아본 경험이 없었다. 어느 개인을 탓할 수 없는 순간, 이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도시 문제, 하면 아직까지 낯선 반응이 많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고양이였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고양이의 시선으로 도시를 이야기하면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고양이에게 포용적인 도시는 인간에게도 포용적인 도시'라는 문장이 탄생했다.

반대로 말해 고양이에게 포용적이지 못한 도시는 인간에게도 포용적이지 못하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인간과 고양이가 모두 터전을 잃는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가 젠트리피케이션도 마찬가지다. 쫓겨나는 임차상인이 있듯이 사람이 붐벼 동네가 시끄러워지면 작은 동물이 떠나고 고양이가 떠난다.

길고양이는 도시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되며, 끝없이 도시에서 밀려난다. 나아가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혹은 누구도 듣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고양이(편집인 김보민)"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귀엽다고 치부해버리는 고양이도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여기서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했다. 고양이 문예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제목은 <젤리와 만년필>, 고양이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겠다는 뜻이다.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
ⓒ 정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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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네 사람은 창간사 대신 각자 고양이의 입장에서 엽편 소설을 집필했다. 미아, 황도, 머루, 시니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페르소나 삼아 학대, 내몰림, 혐오, 유기 등의 문제를 풀어냈다. 이어 고양이 좌담회를 진행했다. 소설을 합평하는 것처럼 시작해 문예지를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눴다. 자연스레 문학과 문단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원고가 청탁으로 이루어지는 문예지를 만들며 원고료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인의 상징 권력이 비대해진 건 정당한 노동의 대가, 즉 원고료가 아닌 '명예'를 지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확한 청탁서를 쓰려 노력했다.

청탁서에 원고료를 기재하고, 원고를 받은 뒤 보름 안에 원고료를 입금하려 노력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스럽다는 평을 받는다. 원고료도 대형 출판사가 만드는 문예지 수준으로 책정했다. 처음 출판사치고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금액이지만, 2호 청탁서에서도 원고료를 내리지 않았다.

유음은 <젤리와 만년필>을 펴내며 '새로운 문학 공동체'를 꿈꾼다. 글을 쓰기 위해서 눈에 띄려 애쓸 필요 없는 공동체를 꿈꾼다. 고양이처럼 더 낮고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하면서, 그동안 소외되어 온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를 바란다.

<젤리와 만년필>은 7월 말 발간되며, 텀블벅 후원자 여러분이 제일 먼저 받아보실 수 있다. 8월 초부터 서점 등으로 유통할 예정이다.

☞ 참여를 원하시면, '본격 고양이 문예지 <젤리와 만년필> 출판 펀딩을 위한 프로젝트' 가기


젤리와 만년필 3호 - Cats can do anything

유음 편집부 지음, 유음(2018)


태그:#젤리와 만년필, #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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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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