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이라기엔 너무 재밌고, 예능이라기엔 그 내용이 범상치 않다. 바로 <알쓸신잡>, <어쩌다 어른>, <수업을 바꿔라> 등 tvN의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아직은 어른이고 싶지 않은 '어른이'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인문학자나 여러 저명인사들이 등장하는 <어쩌다 어른>은 대놓고 강연하는 프로다. 강연이라는 포맷은 KBS1의 <명견만리> 등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럼에도 <어쩌다 어른>을 보고 있노라면 예능을 보듯 부담스럽지 않게 강연 내용에 빠져든다. 아마도 설민석, 최진기, 심용환, 이동진, 김태훈, 허진석, 유수진, 윤홍균, 서천석 등 당대 명강사와 유명 작가, 인문학자들이 총망라된 이른바, '네임드'한 강연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쌍방향 인문학이 자아내는 재미
다이어트 비법에서부터, 역사, 독서, 교육, 경제, 심리까지 이 시대의 사람들이 교양으로 목말라 하는 내용을 <어쩌다 어른>은 정확히 짚어 강연으로 만들어 낸다. 구시대의 적폐로 고민할 때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세상 살아가는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자존감 수업을, 그리고 새 정부에 즈음하여 헌법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정체성 공부 등. 시의적절한 주제들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또한 마냥 인문학적 내용을 보다 시의성을 살리기 위해 '화병 치유 요법으로서의 글쓰기'라거나, 역사 한 끼로서의 '식문화사'와 같은 식으로 보다 경량화 된 인문학으로 접근성을 높인다. 거기에 MC 김상중과 연예인, 혹은 준 연예인 패널들의 공감어린 방청 관행도 빠질 수 없다. 강연이 지닌 일방향성의 단점을 나름 보완한 장치다.
새로운 대세 예능의 등장물론 tvN이 인문학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건 <어쩌다 어른>이 처음은 아니다. 매주 수요일 <곽승준의 쿨까당>과 <콜라보 토크쇼 빨간 의자>를 빼놓으면 서운하다. 이런 예능 인문학 프로 중 정점을 찍고 있는 건 아마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아래 '알쓸신잡')이 아닐까. 나영석의 또다른 실험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미 2권 세트로 나온 <정재승 진중권의 크로스>란 책을 예로 든다.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 로또, 심지어 배우 고현정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인문학자 진중권과 과학자 정재승이 각자의 시각에서 접근해 들어가는 이 책의 확장판이 바로 <알쓸신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이 트렌디한 주제를 넘어, 우리나라 방방곡곡으로 '지리적' 확장성을 가지고, 거기에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유희열, 정재승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다 비슷한 모임을 이어간다는 게 차이다.
<어쩌다 어른>에 이어 <알쓸신잡> 역시 관건은 나영석 예능의 전매특허인 편안함과 쉬운 접근성이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통영이니, 강릉이니 우리나라의 지역을 유람하듯 둘러보고, 거기서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수다를 떠는 이 시간은 보고 있으면 편안한데 유익한 예능의 기가 막힌 정점을 보여준다.
열풍의 정체 그리고 신계몽주의
결국 <어쩌다 어른>이나, <알쓸신잡> 등의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는 '가르치는 것'이다. 이른바 인문학 열풍에 대한 TV 콘텐츠의 적극적 수용인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거기엔 새 정부, 혹은 그 새 정부를 잉태한 촛불 시민들이 있다. 시민들의 촛불로 전 정권의 수뇌부가 구속되었을 때, 그걸 '유신 시대'의 종말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유신 시대는 그저 정치체제의 문제였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생각과 구시대적 사고의 충돌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현대 정치 체제로서의 유신 시대를 제거했지만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구악들과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산업 사회를 거쳐 정보 산업 혁명 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주도적 의식은 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개념'에 대한 갈망을 끓어오르게 한다. 또한 산업 사회의 경제적 인간으로 개별화된 인간 소외에 대한 고민 역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복합적 필요가 우리 사회에 '인문학적 열풍'을 끓어오르게 했다. 대학교의 인문학과는 비록 취업 전쟁에서 무기력하지만, 인문학은 구시대를 정리하고 새 시대를 준비할, 혹은 현재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어쩌다 어른>과 <알쓸신잡>을 통해 등장하는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의 각 담론은 유신 시대 혹은 구시대 강단에서 다루어지던 그 담론이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한 계도로서의 인문학적 지식들인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계몽주의적' 입장에 서있기에, 새 시대의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 자처한 유시민을 필두로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강사와 각 분야의 인문학자들이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tvN 예능은 그런 그들을 보다 유화적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수업을 바꿔라> 역시 큰 궤도에서는 다르지 않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북유럽 교육'에 대한 호기심에 이민 바람까지 불듯, 더 이상 현재 대한민국 교육 체제가 경쟁력이 없다는 점을 이 프로가 간파하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할 새 교육에 대한 모색으로 <수업을 바꿔라>는 충실히 기능한다. 이 프로 역시 예능화 된 교육 계몽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