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7월 17일 오후 3시30분]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영화 <박열>의 한 장면. 실제 사진을 모사한 장면으로 이제훈과 최희서의 연기가 돋보인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블록버스터 대작 틈에서 영화 <박열>이 홀로 흥행 중이다. 영화는 기존의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와 달리 우리 민족의 설움이나 분노에 그치지 않고, 제국주의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인물들을 내세웠다. 천황제를 부정하며 22년 간 일본에서 옥살이를 한 후 윤봉길 등 독립투사들의 시신을 수습해 고국으로 돌아온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아나카스트로 함께 활동한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다.

물론 영화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주요 사건을 배치했다. 관객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이 숨겨놓은 몇 가지 코드가 있다는 사실. "일본 제국주의엔 반감이 있지만 일본 민중들에겐 오히려 친밀감이 있지"라는 극중 박열의 대사를 반대로 생각해보자. 제국주의에 영합한 조선의 친일파나 개인의 호의호식을 위해 사명을 저버린 일부 우파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깔렸다고 보는 게 가능하다.

장덕수 구타 사건  

영화 초반 박열이 속한 '불령사' 단원들에게 한 남성이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불령사는 일본 권력자들이 '못되다, 불쾌한 놈'이라며 조선인들을 조롱하며 쓰던 단어로 박열 등 아나키스트들은 오히려 이걸 자신들을 대표하는 단체 이름으로 내걸었다.

<한국의 명가> <박열의사록> 등에 따르면 1923년 4월 불령사를 설립한 박열은 같은 해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잠시 도쿄에 머물던 <동아일보> 주필 장덕수를 동료 5명과 함께 간다(神田)의 보정(寶亭)에서 구타한다. 구타 이유는 장덕수가 러시아, 정확히는 레닌으로부터 나온 지원금 을 유용했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이들은 구류를 살고 당시 교도소에서 간수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영화엔 <동북아일보>의 김성철(문정수) 주필로 묘사된다. 동북아의 '북'자만 빼면 <동아일보>로 이준익 감독의 의도가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장덕수는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초대 주필로 발탁돼 조선노동공제회와 서울청년회를 조직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군축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초기엔 항일운동가로 이름을 날렸으나 점차 우익인사로 활동하며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게 됐다. 광복 후 그는 한국민주당(민족주의 보수세력이 집결하여 창당한 우익정당) 창당에 참여했고, 외무부장을 역임했다. 남한단독정부의 불가피함을 역설하다 1947년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괴한에게 암살당했다.

 <동아일보> 기사 일부 캡쳐

<동아일보> 기사 일부 캡쳐. 우측 상단 장덕수의 모습이 보인다. ⓒ 동아일보


한편, 장덕수의 자금 유용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1920년대 초반 상해파라는 공산주의그룹 책임자였는데 그 상해파가 모스크바 자금을 유용했고, 그래서 장덕수가 비난을 받았다"며 "다만 장덕수의 자금 유용에 대해 상충하는 자료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 김학준의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에는 실제로 자금을 국내로 가지고 들어온 김철수가 '장덕수가 아닌 최팔용에게 전달했다'고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몇몇 논문은 이를 청년·사회주의 운동권의 세력 다툼에서 나온 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지 어떤 답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자료에 나온 대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즉답은 아니었지만 모든 등장인물이 그의 큰 그림 하에 배치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성철과 달리 영화 중후반부 박열과 후미코의 옥중 분투를 조선에 널리 알린 기자는 <조선일보>의 이석(권율) 기자다. 당시 <조선일보>는 지금과 달리 민족지로 이름을 날렸던 언론이었다.

감독과 배우의 친필이 영화에?

 영화 <박열>에 등장하는 시 '개새끼'. 이준익 감독이 직접 필사한 걸로 알려졌다.

영화 <박열>에 등장하는 시 '개새끼'. 이준익 감독이 직접 필사한 걸로 알려졌다. ⓒ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에 감독과 배우의 친필이 등장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개봉 직전 공개된 박열의 시 '개새끼' 포스터 글씨는 이준익 감독이 직접 필사한 걸로 화제가 됐다. 또 가네코 후미코 역의 최희서의 친필은 본편에 등장한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 원고지엔 촬영을 쉴 때마다 가네코 후미코 평전을 필사하던 최희서의 글씨가 담겨있는 것.

이에 대해 최희서는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서 살짝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가네코 후미코처럼 평소 글 쓰는 걸 저도 좋아한다"며 "일본어 원문 그대로 그의 자서전을 필사하곤 했다. 그게 스크린에 비칠 거라 생각하니 한편으론 재밌었다"고 말했다. 최희서는 "연기하다가 피로감이 몰려올 때면 자서전을 필사하곤 했다"며 "후미코의 글씨체가 독특해서 그걸 따라하려다 내 글씨체가 섞인 중간 글씨체가 나온 것"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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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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