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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고위간부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예정된 26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달 시작한 심의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여 윤리위가 조만간 내놓을 결론은 사법부에 파문을 몰고 온 이번 사태의 전개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원 고위간부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예정된 26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달 시작한 심의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여 윤리위가 조만간 내놓을 결론은 사법부에 파문을 몰고 온 이번 사태의 전개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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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번에도 무사했다.

27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전효숙, 아래 공직자윤리위)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학술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판단했다. 또 여기에 관여한 이규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와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책임을 물어 양 대법원장에게 각각 징계 청구와 주의 촉구를 권고했다. 하지만 사법행정권의 최종결정권자, 대법원장을 두고는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처음부터 양 대법원장의 개입 여부가 논란거리였다. 지난 3월 언론보도로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저지하려 했다는 의혹이 보도되자 법원 안팎에선 사법부 스스로 법관의 독립을 저버렸다는 비판이 커졌다. 수장인 양 대법원장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이인복 전 대법관에게 진상조사위원회(아래 조사위)를 맡겼지만, '부실 조사' 논란에도 한 달간 침묵하다 이 문제를 공직자윤리위로 넘겼다(관련 기사 : '법원발 블랙리스트 사건' 마침내 입 연 대법원장).

공직자윤리위, 두 달 동안 논의했지만...

이후 공직자윤리위는 네 차례나 회의를 열었다. 큰 변화는 없었다. 두 달 전 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면서도 그 책임을 이규진 부장판사 한 사람에게 지웠다. 27일 공직자윤리위는 고영한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언급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잘못한 사람은 이 부장판사였다. 이들과 함께 연구회 대응방안을 논의한 이민걸 기획조정실장, 홍승면 사법지원실장, 심준보 사법정책실장의 경우 전체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 추궁에서 벗어났다.

'블랙리스트'란 단어는 심의 결과에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번 사태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조사위가 관련자들 컴퓨터도 확인 못한 채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판사들은 부실조사라고 비판하며 6월 19일 법관대표회의를 열어 직접 추가조사를 하겠다고 의결했다(관련 기사 : 8년 만에 열린 법관회의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그런데 공직자윤리위는 진상조사 결과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사위 결론을 수용했다.

제도 개선 의견 역시 원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공직자윤리위는 "법원행정처 각 실․국 분장사무나 지휘계통에 따라 업무가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않는 점 등에 개선을 촉구한다"고 했다. 또 "사법행정의 주된 기능은 재판을 원활히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절차와 내용이 문제였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하진 않았다.

다만 사법행정권의 한계를 두고는 좀 더 명확한 의견을 드러냈다. 공직자윤리위는 "사법행정권은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관의 학술활동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나아가 "특별한 사정이 있더라도 학술활동을 부당하게 견제하고 압박하기 위한 조치는 사법행정권 행사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부장판사는 "원래부터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며 "이번 일이 공직자윤리위에 올라간 것 자체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조사권한이 없어 진상조사 결과를 기정사실화할 수밖에 없는 기구에 논의를 맡긴 것부터가 "(양 대법원장이) 시간을 끌기 위한 일"이란 얘기였다.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장은?"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각급 법원 대표판사 100명이 참석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한 강의실에 모인 법관대표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각급 법원 대표판사 100명이 참석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한 강의실에 모인 법관대표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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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장들에게 면죄부를 준 게 가장 실망스럽다"고 했다. 공직자윤리위가 '회의 참석한 죄'밖에 없다고 한 사람들은 법관대표회의가 또 다른 책임자라며 '더 이상 사법행정 업무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의결했던 인물들이다. 이 부장판사는 "공직자윤리위가 '대법원장이 너무 힘이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현재 법원행정처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보호하려 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판사 출신 윤나리 변호사 역시 "심의 결과는 예상에서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다"고 평했다. 그는 "진상조사에서 더 나아간 것이라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던 부분을 행정처 누구누구로 세분화한 정도"라고 했다. 또 "표현의 자유는 학술활동에 그치지 않는다"며 "공직자윤리위가 사법행정권의 한계를 법관의 학술활동에 한해 지적한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윤 변호사는 "그리고 대법원장은?"이라 반문했다. "진상조사 결과에는 이번 일이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다는 부분도 있는데 공직자윤리위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법원장이 어떻게 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양 대법원장은 계속 침묵해왔는데, 공직자윤리위 심의 결과까지 나왔으니 곧 입장을 낼 것"이라며 "자꾸 원론 수준으로 대응하면 (사태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했다.


태그:#양승태, #사법개혁, #판사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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