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리그에서 뛰면서 이름을 남겼던 베테랑 선수도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여러 팀을 오갔던 베테랑 오른손 투수 송신영이 결국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2016년부터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송신영은 6월 23일 웨이버 공시되었던 상태다. 다른 구단이 29일 자정까지 계약 양도 신청을 할 경우 송신영은 다른 팀에서 뛸 수 있었다. 그러나 송신영은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 당초 올해까지만 뛰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다만 은퇴 시점이 몇 달 앞당겨졌을 뿐이다.

송신영은 스스로 조용한 현역이었음을 털어놓았지만,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선발투수와 중간계투 그리고 마무리투수까지 모두 경험한 전천후 투수이고, 무려 709경기 등판으로 이 부문 KBO리그 역대 7위에 올라있다. 통산 성적은 1132이닝 60승 51패 77홀드 47세이브 평균 자책점 4.25이다.

현대 프랜차이즈 시절의 불펜 마당쇠 송신영

송신영은 고려대학교 시절 드래프트 지명 당시 순위가 2차 11라운드(전체 88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됐다. 당시에는 1차 지명(연고지)과 고졸선수 우선지명까지 있었던 시대였다. 당시 고려대 선배에는 김동주(전 두산 베어스) 등이 있었으며, 후배로는 김선우(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등이 있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홍성흔(전 두산 베어스)과 함께 중앙고등학교 시절 함께 활약하는 등 당초 고졸 지명으로 프로 생활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송신영은 고졸 직후 프로 팀에 입단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팔꿈치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것이 발견되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팔꿈치 뼛조각은 경우에 따라 수술을 해야하지만, 재활을 선택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 박찬호도 한양대학교 시절 이러한 사실이 발견되었지만, 은퇴할 때까지 정형외과와 관련된 수술을 받은 이력이 없었다(장 출혈로 인한 수술 1회).

송신영의 경우도 재활을 선택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을 때와 달리 성장기에 뼛조각이 발견될 경우 뼈가 기형적으로 자랄 위험이 있었다. 결국 송신영은 이후 제대로 피칭을 하기도 어려웠으며 이 때문에 드래프트 순번이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현대 1군에 데뷔한 시점은 2001년이었다. 송신영은 2001년에 115.1이닝을 던진 것을 시작으로 2003년 68이닝을 제외하면 2011년까지 매년 70이닝 이상을 던진 불펜의 마당쇠였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7년에는 팀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송신영은 히어로즈가 팀을 재창단한 이후에도 불펜의 중심에 있었다. 2010년 손승락(현 롯데 자이언츠)이 마무리투수로 성장할 때까지 팀의 중요한 상황에는 그가 있었다. 꾸준하게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 2011년 송신영은 통산 5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파란만장한 저니맨, 선수 생활 2기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 종료일에 송신영은 김성현과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때 송신영, 김성현과 교환했던 LG 선수가 박병호(현 미네소타 트윈스)와 심수창(현 한화 이글스)이었다. 히어로즈와 LG에서 거둔 2011년 도합 성적은 72.1이닝 3승 3패 7홀드 19세이브 평균 자책점 2.24였다.

시즌이 끝난 뒤에 FA 자격을 얻은 송신영은 한화 이글스와 3년 13억원에 계약했다(옵션 비공개). 이 때 타구단 협상 시간이 열리자마자 송신영에게 전화를 걸어 새벽에 달려가 계약을 체결한 인물이 당시 한화의 운영팀장이었던 이상군 현 감독대행이었다.

한화에 이적한 첫 해 송신영은 24경기 등판에 23.2이닝 1승 3패 2홀드 평균 자책점 4.94를 기록했다. 당시 한화는 박찬호의 은퇴 시즌이었는데, 박찬호의 시즌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승계 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등 승계 주자 실점이 다소 많았다.

게다가 송신영은 한화 시절 거주지 문제로 인하여 이사를 3번이나 하는 등 생활 문제로 인하여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기도 했다. 이후 시즌이 끝난 뒤 보호선수 20인에서 제외되면서 당시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로부터 지명을 받아 이적하게 됐다.

주로 젊은 선수들이 많았던 NC에서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주었던 송신영은 4월 18일 넥센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 팀에 돌아왔다. 이 때 신재영과 함께 넥센에 왔는데, 이후 신재영은 2016년 신인상을 수상했다. 송신영이 넥센에 돌아오면서 넥센은 당시 19번을 쓰던 한현희의 등번호를 63번으로 바꾸고 송신영에게 19번을 돌려줬다.

넥센에서 송신영은 전천후 불펜으로 활약하면서 팀에 힘을 보탰다. 다만 2014년에는 41경기 42.2이닝 2승 1패 2홀드 평균 자책점 6.59에 그치면서 한국 시리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당시 넥센은 히어로즈 사상 첫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여 2승 4패를 기록했다. 송신영은 2015년에는 선발투수로 전환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 송신영은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어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역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활약한 송신영은 나이 때문에 고질적으로 잔부상을 겪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2016년 11경기, 2017년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여러 감독 만나며 꿈 키운 송신영, 지도자 과정 시작

2017년에 한화 김성근 감독이 물러났다. 이후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에서 박종훈 단장은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예고했다. 그리고 6월 23일 조인성, 이종환과 함께 웨이버 공시됐다. 이동걸, 강승현 등이 불펜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육성하고 있는 선수들 역시 성장 중이라서 송신영에게는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시절 이후 송신영은 수많은 팀을 오갔다. 그러면서 수많은 감독들을 만났는데, 현대 시절에는 KBO리그 역대 다승 4위인 김재박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에는 명투수 출신 김시진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팀을 옮기면서 한대화(전 한화 이글스 감독), 김경문(NC 다이노스 감독), 염경엽(전 넥센 감독, 현 SK 와이번스 단장), 김성근(전 한화 감독) 등 다양한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송신영은 자신도 호서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게 됐다.

일단 송신영은 호서대학교 야구학과 석사 과정을 마칠 예정이다. 그러면서 아마추어 야구 인스트럭터 등으로 경험을 쌓다가 학업이 끝나는대로 본격적인 지도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할 것임을 밝혔다. 그래서였는지 송신영은 김재박, 김시진, 김경문, 김성근 등 여러 감독들을 언급하며 그들 덕분에 709경기에 등판할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송신영은 다음 생에서는 시속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마무리투수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비록 현역 시절에는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지지 못했지만, 지도자 인생을 통하여 자신의 다음 생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있는 투수를 양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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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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