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는 기억에 새겨지고, 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며, 신념을 강화한다.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되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잊힌다. 우리는 이런 왜곡을 '확증 편향'이라 부른다. 다소 생소한 개념인 데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은 '확증 편향'이 일부 문제가 있는 사람의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확증 편향'은 우리의 삶에 뿌리 깊게 내려 앉아있다. 선거 기간에 유권자의 모습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부동층을 제외하면, 대다수 유권자는 각자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성향은 특정 후보 지지로 이어져, 최종 투표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확증 편향'은 그 과정에서 작동한다. 지지 후보를 정한 유권자는 웬만하면 선택을 바꾸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후보자의 정보만 받아들이고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한다. 그 결과 선거 과정에서 제기되는 각종 의혹과 TV 토론 등은 유권자의 최종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지지 후보와 관련된 의혹은 무시하고, 상대 후보의 의혹에는 비판을 가하며 선택에 대한 믿음을 강화한다. TV 토론을 통해 새로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막연하게 선호하거나 관심을 가졌던 후보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물론 '확증 편향'은 선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일상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빨간 팬티를 입으면 일이 잘 풀린다' 등의 징크스, 고정된 성 관념 등의 선입견 및 편견, 유명인을 둘러싼 각종 루머와 괴담은 모두 '확증 편향'에 속한다. 우리는 이러한 '확증 편향'에 둘러싸여 있으며, 오랜 역사를 되돌아볼 때 헤어나오는 것 또한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확증 편향'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인정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여기 '확증 편향'에 대해 경고하는 한 영화가 있다. 영화 <곡성>은 우리에게 '확증 편향'이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경고한다. 미끼를 덥석 물지 말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라고.

<곡성>, '확증 편향'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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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곡성의 한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는다. 경찰과 언론에서는 야생 버섯 중독으로 인한 환각 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인 종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의 원인이 일본에서 온 낯선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종구도 이를 의심하게 된다.

종구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무명을 만나며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간다. 어느새 종구는 '확증 편향'에 갇히게 된다. 일본인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모든 말이 사실이라고 여긴다. 반면 무명에 대해서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무시한다. 그 과정에서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야생 버섯 중독' 이야기는 조용히 묻혀 간다.

'확증 편향'에 둘러싸인 건 종구만이 아니다. 가톨릭 성직자인 이삼 역시 그렇다. 일본인의 집을 방문한 이후, 이삼은 일본인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의심은 곧이어 확신이 선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인에 대한 소문을 믿든 안 믿든, 그들은 각자의 믿음을 바탕으로 사건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영화 속 '확증 편향'의 결과는 어떻게 묘사되는가? 종구는 끝내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가족이 모두 죽는다'라고 말하는 무명을 무시한다. 그리고 달려간 집에서 목격한 건 끔찍한 결말이었다. 이삼은 어떨까? 동굴 속에서 이삼은 악마의 모습을 한 일본인을 목도한다. 기어이 믿는 대로, 즉 '확증 편향'에 따라 일본인을 바라본 결과, 종구, 이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우리 더 이상은 미끼를 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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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최근 경제 위기(*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규제 완화 정책이 실시된 이후의 시장 상황은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의 해석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우파는 외견상으로 드러난 시장 실패를 정부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은 하위 계층의 주택 소유를 장려했던 정부의 노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은 보수권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 근거를 평가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런 관점은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시장이 결코 나쁜 일을 할 수 없고 정부는 결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미미한 타당성을 근거로 자신의 관점이 타당하다는 확신을 굳힌다. 이것 역시 '확증 편향'의 한 가지 사례다."

2008년, 미국은 세계 경제 위기를 맞았다. <불평등의 대가>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대표되는 금융권의 약탈적 대출 남발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더 나아가 본질적 문제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한 재분배를 지목한다. 그러나 그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위에서 언급한 '확증 편향'에 갇혀 같은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를 부른 은행들은 관대히 구제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자력구제를 외치며 문제를 방치했다. 경기 침체는 계속됐고, 소득 불평등은 2014년 기준으로 미국의 최상위 10%가 하위 10%보다 5.01배 많은 소득을 벌어들여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했다. 심각해진 소득 불평등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까지 이어졌다.

2017년 현재의 한국 또한 '확증 편향'의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2007년과 2012년, 우리는 '낙수효과', '그래도 경제는 보수'라는 '확증 편향'에 갇혀, 경기 침체를 해결할 적임자로 보수 정당의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난 9년 동안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심화했고, 성장률은 지속해서 하락했다. 또한, 청년 실업률은 지난 4월 역대 최고치인 11.2%를 기록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우리는 <곡성>의 인물들처럼 '확증 편향'에 갇혀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하지만 더는 안 된다. 영화 속에서 종종 무속인 일광은 낚시와 미끼라는 말로 종구의 상황을 묘사한다.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그리고 종구의 딸인 효진은 종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뭣이 중헌디?' 이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전달된다. 우리는 미끼를 덥석 물어 무엇이 중요한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증 편향'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촛불로 정권교체를 이룬 지금이, <곡성>의 메시지를 다시 곱씹어볼 적기이다.

곡성 확증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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