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사역사' 논란이 뜨겁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 지명을 계기로 '유사역사' 논란을 다룬 기사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 발행된 <한겨레21>의 커버스토리 '사이비 역사의 역습'에 대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양쪽 주장을 다 듣는 차원에서 이덕일 소장의 글을 싣습니다. 논란이 뜨거운 문제인 만큼 이 글에 대한 반박글 또한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드디어 나왔군요, 역시….'

<한겨레21>에서 특집 형태로 보도한 "권력과 사이비 역사가 쓴 '고대사 침탈사'"라는 보도를 보고 한 지인이 한 말이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되었을 때 그간 식민사학을 비판해왔던 사람들의 예상대로 일부 언론이 움직였다.

6월 1일 <조선일보>, 6월 5일 <한국일보>, 6월 6일 <경향신문>…. 그 다음은 이들 3개 신문에 뒤질 수 없다는 보도 태도를 견지했던 <한겨레>가 나올 차례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한겨레>가 6월 7일 도종환 후보자 인터뷰를 보도했다. 도종환 후보자와 이른바 강단사학계를 싸움 붙이는 인터뷰였는데, 나중 알고 보니 한참 전에 인터뷰한 것을 이때 보도한 것이란다(관련기사: 도종환의 역사관 논란, 학계에 무슨 일 있었길래).

그래도 이 보도는 그간 했던 것과는 조금 달리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보도는 아니었기에 <한겨레>가 한 발 뺐나 했는데, <한겨레21> 보도를 보니 '역시나'였다.

<한겨레21> 특집 기사 중 '진료는 의사에게 역사는 역사학자에게'라고 제목을 단 기사가 재미있다. 이런 논리면 '진료의 의사에게 국회는 국회의원에게', '행정은 공무원에게', '원전은 원전전문가에게' '건설은 건설회사에게', '군대일은 군인에게', '수사·기소는 검찰에게' 등 이런 구호가 수천 개는 가능할 것이다. 그럼 '신문은 필요 없다, 전문가들이 다 하면 된다'? 더구나 한겨레가 말하는 '역사학자'는 누구인가?

<한겨레21> 제1167호 표지.
 <한겨레21> 제1167호 표지.
ⓒ 한겨레21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낙랑=지금의 평양'을 말하는 옛 사서는 전무하다

길윤형 편집장은 편집장의 편지에 해당하는 '만리재에서'라는 꼭지에서 '국뽕 3각연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그 만리재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어 고통받던 곳인지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 이것이 '일군의 학자'들 눈에는 견디기 힘든 '식민사학'의 잔재로 비친 것이지요."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낙랑=하북성설'을 말하는 '옛 사서의 기록'은 많아도 '낙랑=지금의 평양'을 말하는 '옛 사서'는 전무하다. 게다가 마치 북한에서 2600여 기의 '낙랑군 고분'을 발굴해서 북한도 '평양=낙랑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썼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의 주장은 2600여 기의 고분을 조사했지만 그 중에 낙랑군 고분은 한 기도 없었다는 것인데, 마치 북한에서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을 발굴한 것처럼 뒤집어씌운 것이다.

식민사학에 빠지면 학자고 언론인이고 사실이 아닌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북한은 한사군 낙랑'군(郡)' 무덤이 아니라 최리가 국왕으로 있던 낙랑'국(國)'의 무덤이라고 말하고 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그 낙랑국인데, 독립왕국의 국(國)자를 낙랑'군(郡)'이란 식민지로 둔갑시켜놓고 독자들을 속이는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조에 따르면, 최씨 낙랑국은 서기 32년에 망했는데, 국내 식민사학계는 서기 313년까지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완전히 다른 내용을 같은 것처럼 덮어씌운 것이다.

북한의 역사학자 안병찬은 '평양일대 락랑유적의 발굴정형에 대하여'(<조선고고연구>,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1995년 제4호[루계 97호])에서 이렇게 썼다.

"이 기간에 평양시 락랑구역 안에서만 하여도 2,600여 기에 달하는 무덤과 수백 평방 미터의 건축지가 발굴되었으며 15,000여 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찾아냈다. 이것은 일제가 '락랑군 재평양설'을 조작하는 데 자료적 기초로 이용하기 위해서 조선 강점 전 기간에 도굴한 무덤 수에 비하면 무려 26배에 달한다."

북한의 안병찬은 일제보다 26배나 많은 2600여 기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일제가 조작한 '락랑군 재평양설'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는 것인데, 길윤형 편집장은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라고 180도 거꾸로 보도했다. 

이덕일 소장은 <동북아역사지도>자체에 문제가 많아 지도가 폐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덕일 소장은 <동북아역사지도>자체에 문제가 많아 지도가 폐기되었다고 주장한다.
ⓒ 이덕일 소장

관련사진보기


왜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을 말하지 않나?

게다가 이들 카르텔 언론은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이 정치권력에 의해서 중단되었다고만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 이 지도가 가진 문제점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역시 여러 번 말한 내용이지만 동북아역사지도는 북한 강역을 모두 중국에 넘겼고,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서 신라, 백제, 가야는 삭제했다. 반면 이보다 이른 3세기에 일본 열도에는 열도의 반 가까이를 통일한 야마토정권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 놨다. 그래야 임나일본부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를 일관되게 삭제했다. 특히 독도는 5개월 간의 수정기한을 주면서 다시 그려오라고 했는데도 그려오지 않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최고위층은 나에게 그 5개월 간의 수정기한 동안 지도 책임자들을 불러서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만드는 지도니 독도는 꼭 그려 와라. 점이라도 찍어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는 그려오지 않았다. 독도는 일본 강역이라는 것이다.

길윤형 편집장은 "정치인과 유사역사학의 결합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탠 것은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면서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대종교 같은 항일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매도했던 것이나 독립운동가 후손을 매도하는 것과 어쩜 그렇게 빼다 닮았는지.

그러면서 길윤형 편집장은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신성불가침의 '국뽕 3각연대'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2008년부터 진행되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폐기했습니다. 이 사업에 참여한 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라고 끝을 맺었다. 내가 묻고 싶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태그:#이덕일, #한겨레21, #유사역사, #길윤형, #낙랑군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이 정도면 마약, 한국은 잠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