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배구 '최장신 센터 듀오' 손주형(205cm)-엄윤식(197cm·오른쪽)

대학배구 '최장신 센터 듀오' 손주형(205cm)-엄윤식(197cm·오른쪽) ⓒ 박진철


대한민국 남자배구는 언제쯤 205cm대 국가대표 주전 센터를 볼 수 있을까.

2017 월드리그 2그룹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1그룹 팀들과의 격차는 여전하다. 일본이 2그룹 결선 라운드에 진출하고, 중국이 핵심 주전들이 빠진 가운데 선전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한국 배구의 지상 과제인 2020년 도쿄 올림픽 '남·녀 동반 출전'을 위해서는 남자배구도 하루 빨리 세계적 수준에 접근해 가야 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도 재확인했다.

현재 남자배구 세계 강팀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스피드 배구, 장신화, 강서브'다. 이는 한국 남자배구가 올림픽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세 요소 중 가장 크게 뒤처진 부분은 '장신화'다.

스피드 배구는 남미·유럽에 비해 10년 이상 늦었고 완성도도 부족하지만, 최근 국가대표와 프로·대학에서 스피드 배구를 팀의 색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본 개념과 틀은 어느 정도 잡혀가고 있다. 서브는 연구하고 노력하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러나 장신화는 세계 수준과 더 크게 벌어져 있다. 여기서 장신화란 단순히 신장만 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럽·남미의 배구 강호들은 장신이면서 스피드·파워·테크닉도 뛰어나다.

주전 센터진 205cm, 세계 강팀의 '필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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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세계 배구의 장신화 수준을 살펴보기 위해 2016년 리우 올림픽과 2017년 월드리그에 출전한 국가들의 선수 전원을 조사해 봤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장신화가 반드시 필요한 센터 포지션에서 한국 남자배구는 세계 수준과 심각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아시아 국가에서도 최하위권으로 밀려나 있었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12개국 센터 전원(36명)의 평균신장은 204.1cm로 계산됐다. 200cm 이하의 선수는 아르헨티나 라모스(197cm)와 이란 골라미(195cm)로 단 2명밖에 없었다.

2017 월드리그 1그룹에 속한 12개국 주전 센터 36명(팀당 3명)의 평균신장은 205.5cm가 나왔다. 최장신 센터진을 보유한 팀은 폴란드다. 비니에크와 레만스키가 각각 210cm와 217cm다. 러시아 쿠르바에프(207cm)-블라소프(212cm)-리코쉐르스토프(215cm), 벨기에 보르데(208cm)-벨데(210cm), 브라질 루카스(209cm)-마우리시우(209cm) 등도 대단한 높이를 자랑한다.

세계 배구 강팀들에게 주전 센터진 205cm는 이제 '필수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초장신임에도 한국 센터진보다 블로킹·속공·몸놀림에서 훨씬 앞서 있다.

반면, 대한민국 월드리그 국가대표 주전 센터 3명의 평균신장은 198cm였다. 세계 강팀들 센터진에 비해 7cm가 작다. 배구에서 평균신장 7cm는 엄청난 차이다. 심지어 월드리그 대표팀 전체 14명에도 200cm가 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장신화를 논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조건에서 너무 뒤처져 있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남자배구의 센터진은 사실상 '최단신'이었다. 2017 월드리그와 2016년 AVC컵에 출전한 아시아 주요 9개국의 주전 센터(팀당 3명) 평균신장을 조사해 본 결과, 한국은 8위에 그쳤다.

1위는 카타르였다. 주전 센터 3명의 평균신장이 206.6cm에 달했다. 이어 카자흐스탄(206.3cm), 호주(205.6cm), 중국(204.3cm), 이란(200.6cm), 일본(199.3cm), 태국(198.0cm), 대한민국(198.0cm), 대만(194.0cm) 순이었다.

카타르는 아프리카·유럽·남미 선수를 대거 귀화시키면서 장신화도 이루어졌다. 일본은 월드리그에서 204cm의 야마우치(25세)가 주전으로 활약하며 데키타(27세·200cm)와 함께 장신화 가능성을 보였다. 태국은 주전 센터 평균신장은 한국과 동일하지만, 202cm 이상의 선수가 2명이 포함됐다.

장신 선수 육성, '체계적 관리와 인내' 필요

남자배구의 장신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필수 과제가 됐다. 세계 강팀들은 이미 스피드, 장신화, 강서브라는 3개의 무기를 다 갖추고 경기에 나서는데, 한국 배구만 어정쩡한 무기 하나 들고 싸우겠다고 하면 결과는 자명하다.

그러나 장신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때문에 지도자의 소신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절실히 요청된다.

또한, 대한민국배구협회 차원에서도 장신의 유망주들을 조기에 국가대표 체제에 끌어들여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열악한 학교 시스템에만 맡겨 놓으면, 프로 갈 때쯤엔 기량이 퇴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장신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체력과 부상 관리, 영양 보충 등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파워와 스피드를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국제대회 경험을 통해 스피드, 파워, 테크닉을 쌓아가야 한다.

아쉽게도 한국 배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도자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신 선수의 발굴과 육성보다 당장 주전 투입이 가능한 선수 위주로 팀을 운영하는 게 대부분이다.

학교 배구와 국가대표팀을 관리하는 배구협회와 프로 팀을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도 장신화 부분에서는 문제 의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만년 중하위' 경희대, 2위 돌풍 이유

 '205cm 위엄' 손주형(오른쪽)과 엄윤식

'205cm 위엄' 손주형(오른쪽)과 엄윤식 ⓒ 박진철


그런 가운데, 대학 배구 '최장신 센터 듀오'가 활약하는 경희대의 돌풍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희대는 현재 2017 전국대학배구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경희대는 오랫동안 중하위권을 맴돌던 팀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전국대학배구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처음으로 상위권에 진입했다.

올해는 조재성, 박종필 등 주전급 선수들이 빠져 나가면서 다시 고전이 예상됐었다. 그럼에도 지난해보다 순위와 내용 면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 중심에는 팀의 공격을 책임지는 진 알렉스지위(25세·198cm·3학년)와 김정호(21세·188cm·2학년)가 있다. 라이트인 진 알렉스지위는 현재 득점 랭킹 전체 7위와 블로킹 1위를 달리고 있다. 김정호도 득점 랭킹 9위를 기록하는 등 공격과 수비에서 든든한 지원을 했다.

그러나 경희대가 돌풍을 이어가는 데는 손주형과 엄윤식의 센터진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손주형(24세·4학년)은 현재 205cm다. 대학 배구에선 최장신이다. 프로와 대학을 통틀어서도 205cm 이상인 선수는 단 3명밖에 없다. 우리카드 김은섭(211cm·센터), 삼성화재 정준혁(208cm·센터), 그리고 손주형이다.

손주형은 현재 대학배구 리그에서 홍익대 전진선(22세·199cm)과 함께 블로킹 부문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세트당 블로킹 수는 전체 3위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눈부신 성적이다.

지난해까지는 주로 교체 멤버로 출전했다. 그러나 올해는 주전 센터로 활약하며, 몸놀림이 빠르고 상대 팀 세터와 공격진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시야가 상당히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주형은 19일 기자와 인터뷰에서 "겨울에 훈련 강도를 높이면서 몸 상태가 가볍고 빨라졌다"며 "특히 상대 팀 세터와 공격진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부분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2위' 장신 센터진, 손주형-엄윤식 듀오

엄윤식(24세·4학년)도 올해 들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7cm인 그도 지난해까지 비주전이었다. 올해는 손주형과 함께 든든한 블로킹 벽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엄윤식은 런닝 점프 높이가 90cm에 달한다. 장신임에도 몸놀림과 속공 스피드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손주형-엄윤식 콤비를 주목하는 이유는 장신 센터진이라는 점과 경기를 거듭할수록 실력이 쑥쑥 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주전 센터의 평균신장은 201cm다. 국내 프로배구와 대학배구를 통틀어 우리카드 김은섭(211cm)-김시훈(200cm) 조합에 이어 2번째에 해당하는 장신 센터진이다.

그러나 두 선수가 좋은 활약을 보이기까지 결코 단기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경희대 김찬호 감독의 소신과 인내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감독은 평소에도 한국 배구가 살아남을 길은 세계 배구 흐름인 스피드 배구, 장신화밖에 없다는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을 역임하던 시절인 2016년 1월, 사상 최초로 고교·대학 장신 유망주들을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하고 진천선수촌에서 '스피드 배구 특별훈련'을 실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도자의 신념과 스피드-장신화 노력

김찬호 감독은 "장신 선수들은 단신 선수들에 비해 배구 실력이 느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대부분 중도에 포기하고 키가 작아도 빠르고 당장 쓸 수 있는 선수 위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cm가 넘는 선수 한 명을 육성하려면 장기간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고 꾸준한 실전 투입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손주형과 엄윤식도 처음에는 과연 배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 부호였다"며 "지난 4년 동안 단계적으로 관리해 온 결과 이제는 잠재됐던 기량을 꽃피우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남자배구가 세계 강팀들과 격차를 줄이고 올림픽 무대에 나가기 위해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가 스피드와 장신화다. 

그리고 두 필수 과제는 학교 배구에서 프로 배구까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경희대의 스피드, 장신화를 향한 끈기 있는 시도와 돌풍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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