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는 대축제다. 우리가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무려 8회 연속으로 축제에 참가했으니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K리그의 인기나 유소년 시스템의 정착과 같은 한국 축구의 근본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FC 코리아'의 월드컵 참가와 성적만이 중요할 뿐이다.

한국 축구는 대단하다. 2002 한-일 월드컵이야 말할 것도 없고, 2010년 남아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의 역사도 써냈다. 2006 독일 월드컵 역시 1승 1무 1패를 기록, 운만 조금 따랐다면,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도하 참사'에도 여전히 조 2위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도 충분히 가능하다.

K리그는 위대하다. 이전에는 일본의 자본, 불과 얼마 전에는 오일머니, 최근에는 중국의 축구 굴기와 맞서 싸우면서도 아시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다. 올 시즌에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성적이 좋지 않지만, 최근 10년간 아시아 최고의 팀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K리그다.

포항 스틸러스와 성남 일화(현 성남 FC), 울산 현대, 전북 현대 등 무려 4팀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우리 다음으로는 일본과 중국이 각각 2차례의 우승을 차지했다. ACL이 탄생하기 전인 2003년 이전의 역사를 봐도, K리그는 무려 11번이나 우승팀을 배출했다. 아시아 무대에서만큼은 압도적이다. 무지막지한 투자와 관심이 없어도 '기적' 같은 성적을 거두어왔다.

그래서 '당연함'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고, 수많은 방패막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는지, 이제라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대한축구협회의 방패막, 이번에는 이용수 위원장입니까

'명공격수' 세바스티안 소리아가 빠진 카타르에게 2-3으로 무너지는 한국 축구를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차라리 잘됐다. 어쩌면 월드컵에 나가지 않는 것만이 한국 축구의 진짜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못지않게 축구팬들의 비판을 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다. 그는 슈틸리케에게 한국 축구의 미래를 맡겼고,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보내며, '도하 참사'의 비극을 불러왔다. 비판에 대한 근거는 충분하고, 합리적이다. 다만, 이용수 위원장이 한국 축구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용수 위원장은 대한축구협회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확신한다. 슈틸리케는 실패했지만, 이용수 위원장은 2002 한-일 월드컵 성공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거스 히딩크 사단의 연이은 0-5 참패에도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신화'를 이뤄내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는 학연과 지연이 얽혀 무능한 축구인 선후배가 이끄는 대한축구협회 구조를 탈피해낸 유일한 사람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전의 한국 축구를 생각해보자. 원칙과 원팀을 들먹이며, 자신들만의 길을 갔지만,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자신들은 '아시아 호랑이'를 자부했지만, 한국이 아시안컵 우승을 들어 올린 것은 1960년이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속담만큼, 한국 축구 내부에 어울리는 말은 없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2002 한-일 월드컵을 끝으로 물러난 이후에는 어떠했나. 또다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행정'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7년 여름이 대표적이다. 대한축구협회는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선임된 지 17일뿐이 되지 않았던 박성화를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앉혔다. K리그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임에도 어처구니없는 인사를 강행했고, 결과도 참담했다.

움베르투 코엘류와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와 핌 베어벡 등 수많은 히딩크의 후계자가 한국을 찾았다. 이전과 같은 막대한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훈련 시간 확보까지 어려웠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책임'은 이방인 지도자만의 것이었다.

지도자 자격증이 없었던 유명한 축구 선수가 은퇴 이후 곧바로 국가대표팀 코치가 돼 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했다.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고, 감독으로 또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우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시한부 감독'이란 새로운 유형까지 경험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이용수 위원장이 슈틸리케에게 오랜 시간 '신뢰'를 보냈던 것이 말이다. 그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신뢰와 함께 성공을 거두고, 꾸준함을 전제로 하는 장기 플랜만이 답이란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국가대표팀을 지휘한 감독을 만들어냈을 뿐, 결과는 참담했지만 말이다.

이용수 위원장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역시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실망감을 안겼다. 자격은 물론 경험도 부족한 이들을 국가대표팀 코치진에 선임했고, '슈틸리케의 친구' 이상의 느낌을 주지 못했던 카를로스 아르무아 수석코치의 존재를 지켜보기만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공과 달리 이번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히딩크와 슈틸리케 사이에는 8명의 지도자가 있었다. 허정무 전 감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모두가 책임을 져야 했고, 원치 않게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한국 축구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지도자보다 더 큰 책임이 필요했던 이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매번 눈에 보이는 '사퇴'만 존재했을 뿐이다. 직책만 바뀌었을 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지는 자리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다는 핑계로 정치권을 기웃거리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이용수와 슈틸리케가 물러난다고 해서,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들이 떠나면, 신태용이란 새로운 방패막을 앞세워 진짜 문제를 숨기려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제대로 봐야 한다. 문제의 핵심부를 건드리지 못한다면, 악순환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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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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