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록 난항을 겪고 있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의 인사를 보고 있으면 정말 정권이 바뀌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박근혜 정부처럼 비상식적인 흠결이 있는 인물들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는 오랜 시간 UN에서 활약을 펼친 국제기구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 인권에 큰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활동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 역시 '동성애 처벌법'으로 악명이 높은 군형법 92조의6 합헌 결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또 인사청문회에서는 인간존엄의 가치는 외국인에게도 인정할 수 있으니 헌법의 '국민'을 '인간'으로 바꾸자는 발언을 해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보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지난 10년, 정부의 인사를 보며 이렇게 사회적 소수자와 인권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이쯤 되면 정부의 공직자 선정 기준에 '인권' 또한 포함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놀라움을 주는 인사도 있는 반면에 큰 실망을 안겨준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청와대 행사담당 기획 행정관으로 발탁된 탁현민 전 교수의 경우다. 그는 2010년 발간한 자신의 책 <남자 마음 설명서: 남자가 대놓고 하는 말>에서 여성 혐오적인 서술이 발견돼 지탄을 받았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펴낸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문제다. 이 책은 여성혐오적 행동을 남성의 생물학적 특성인 것처럼 서술한 부분이 논란이다(안 후보는 결국 16일 오후 사퇴의 뜻을 밝혔다). 또한 노조파괴 기업인 갑을오토텍의 대리인을 맡았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도 또 하나의 인사 오점이라 할 만하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 인사의 '오점'?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김진표 위원장이 5월 22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회자문위원회 첫 번째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김진표 위원장이 5월 22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회자문위원회 첫 번째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렇듯 떠들썩한 논란을 부른 문제적 인사가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조용히 무난하게 넘어간 사례도 있다. 바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의 이야기다. 이번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이 확대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언을 생각한다면 김 위원장의 존재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는 지금까지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반하는 말과 행태를 보여온 대표적인 반(反)인권적 인사이기 때문이다.

가령 김 위원장은 지난 대선 기간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에 참여해 "동성애자들에 대한 불합리한 사회적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나가"겠다면서도 '동성애·동성혼의 법제화에 반대'하는 주장에 공감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동성애 동성혼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률 조례 규칙이 제정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 심지어 그는 동성애·동성혼이 허용되지 않음을 교과서에까지 넣겠다고 했다.

사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보수 개신교계의 성소수자 혐오 주장에 적극 호응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종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도 동성애, 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13년에는 차별금지법 입법이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에 부딪히자 발의를 철회한 후, 법 제정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보수 교계 단체의 보고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철영 목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통합당 김진표 전 원내대표가 '이번에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민주당의 당론에 위반한다'고 해명하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반인권적 태도를 보인 사람이 국정을 기획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우려할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 보고를 부활시키고 권고의 수용률의 높이는 등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제고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인권위는 이번 정부의 10대 인권 과제 중 하나로 '인권선진국 도약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뽑고 구체적인 과제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을 제시했다. 즉 이 사안에 대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이 대치되는 셈이다. 또한 인권위는 성소수자 차별금지 규정을 이유로 충남 인권조례를 폐지해선 안된다는 의견을 표명한 적도 있다.

물론 인권위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이며 10대 인권 과제가 수행되는 데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애초에 인수위의 보완책으로 만들어졌으며 구성 기간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국정 초반에 정부 추진 정책과 대치되는 발언을 한다면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그랬다. 그는 이미 2년이나 유예된 종교인 과세를 또다시 늦추는 입법안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과세는 예정대로 2018년에 꼭 시행할 것이란 의사를 밝히자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약속한 것이 있어서 발의한 것일 뿐 경제부총리와 입장은 같다는 다소 의뭉스러운 발언을 내놓았다.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지시로 논란에 휩싸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동성애자 색출 지시한 것 맞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손목을 힘으로 제압하고 있다. 이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은 장 총장에게 “어떤 이유로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냐”며 “차별주의자 장준규는 물러나라”고 항의했다.
▲ 취재기자 손목 힘으로 제압하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지시로 논란에 휩싸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동성애자 색출 지시한 것 맞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손목을 힘으로 제압하고 있다. 이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은 장 총장에게 “어떤 이유로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냐”며 “차별주의자 장준규는 물러나라”고 항의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성소수자 인권이 기로에 선 시기, 걱정이 기우로 그치길

사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2005년 그는 사학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한동안 열렬한 법안의 지지자로 남아 있었으나 개정안이 보수 개신교계의 큰 반발에 부딪힌 후 재개정 쪽으로 입장을 180도 선회한 바 있다.(관련 링크) 또 2007년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에는 FTA 발효 후에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대한 협상을 하기로 한 합의문에 서명했으며, 이 때문에 날치기 비준이 이루어진 후에는 또 다시 독단적으로 국회 정상회에 합의해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심지어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는 당 대표였던 손학규 전 의원조차도 모르는 일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이미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하여 퇴보한 입장을 보인 적이 있다. 그는 공중파 TV 토론회에서 '동성애 반대'를 언급했으며 이어 나온 해명도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군 수사대가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고 심지어 대위 한 사람을 구속한 와중에도 그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잘 해낼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솔직히 성소수자 인권에 있어서는 염려가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국정 기획 기구에 김진표와 같은 인물이 존재하는 것은 꽤나 불안한 일이다. 이미 문 대통령이 한 번 흔들린 이슈에 그가 반인권적인 입장을 들이민다면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이제는 입장이 아니라 국정의 문제다. 파급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태로 유죄 판결을 받은 대위 외에도 20명의 군인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범죄자가 될 위기에 놓여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하지만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법안은 여전히 없다. 이 문제는 매우 시급하며 이번 정부에서 성소수자 인권은 진보와 퇴보의 기로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디 첫발을 제대로 떼 주기를 요구한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에 대한 걱정이 기우로 그치길 바랄 뿐이다.


태그:#김진표, #문재인, #성소수자, #인권, #차별금지법
댓글1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