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못 갈 거예요. 저는 서울대 못 갈 거예요."

수능 점수는 400점 만점에 396점. 학력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 학사. 지금은 사회적 기업 '공신닷컴'의 대표. 그의 이름은 강성태. 요즘의 전형으로 서울대에 다시 갈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는 왜 위와 같이 말했을까? EBS 다큐프라임의 6부작 다큐멘터리 <대학 입시의 진실>에는 그 이유가 담겨있다.

2015학년도를 기점으로 급격히 늘어난 학생부종합전형은,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잡고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경험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속 학생부종합전형은 그 취지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부 1등급 몰아주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교사로부터 학생부 관리를 받지 못한 학생들은 컨설팅업체를 찾았고,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돈으로 스펙이 채워지고 있었다. 컨설팅업체에 접근하기 힘든 지방 지역 학생들이나 재력이 든든한 부모가 없는 평범한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서 설 자리는 매우 좁아 보였다.

다큐멘터리는 문제 제기에만 머물지 않고, 해결의 방향도 제시한다. 1~5부에서 대학 입시의 불편한 진실을 밝힌 다큐멘터리는, 6부에서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대책을 내놓았다. 본고사 부활, 수능 중심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큰 틀에서는 유사점을 보였다. 대학 입시 과정을 단순하게 해야 하며, 돈과 정보가 아닌 노력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대학입시는?'이라는 질문에 교사의 45.6%, 학부모의 34.5%가 정시라고 답한 설문조사도 제시된다.

일견 수긍이 가는 결말이다. 확실히 학생, 학부모 그리고 선생 모두 고통받는 현재의 입시제도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학 입시의 단순화 혹은 정시 비중 확대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불거진 대학 입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대학 입시 경험을 되돌아 봤을 때, 답은 '아니다'이다.

22명의 학생들, 차별은 동일했다

ⓒ EBS


2011학년도와 2012학년도, 총 두 번의 대학 입시를 경험했다. 2011학년도에는 처음으로 수시 비율이 60%대를 돌파했고, 2012학년도에도 그 기조가 유지됐다. 그러나 많은 대학이 수능시험의 최저학력기준을 강화한 수시 우선선발과 수시 2차 모집의 선발 비중을 높여, 수시모집에서도 수능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또한, 일부 특기자 및 입학사정관 유형을 제외하면 수시 전형은 크게 내신 성적과 논술, 두 개로 나뉘어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었다.

자연히 학교는 정시, 정확히는 수능 중심으로 운영됐다. 논술은 '우선은 수능 최저학력기준 충족!'의 미명 하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내신은 '수능 공부가 곧 내신 공부'라는 말 아래 수능 공부에 편입됐다. 따라서 특별한 재능이 없는 대다수 학생들은 수능을 준비했고, 2011학년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경기도 일반고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학교의 수능 준비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모의고사 성적 상위 22명에게는 다른 환경이 제공됐다. 물론 정규 수업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그 외 모든 시간은 불평등했다. 우선 22명의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달리 특별히 지정된 곳에서 자율학습시간을 가졌다. 또한, 보충학습 시간은 다른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도 달랐고, 학생부장 선생의 특별 관리하에 입시 준비를 했다. 때때로 대학생 선배들과 만남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했다. 중점이 된 전형이 다를 뿐 '학생부 1등급 몰아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남은 달랐다

ⓒ EBS


기대에 미치지 못한 수능 성적을 받고 재수를 결심했다. 별생각 없이 친구를 따라 강남의 재수 종합학원을 등록했다. 2012학년도 대학 입시는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경기도와 강남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강남의 수업은 경기도 지역 학교와 학원 수업, 심지어 유명 인터넷 강의와도 차원이 달랐다. 오프라인에서만 강의한다던 강사들의 수업 내용은 확실히 어디서도 접해보지 못한 유형의 것이었다. 수능의 모든 문제에는 고정된 접근법이 존재했고, 이해의 영역이라 여겼던 국어와 영어 과목마저도 특정한 문제 풀이 방식이 적용될 수 있었다. 수업 내용의 범위도 더 넓었다. 수월하게 미적분 문제를 풀기 위해 요점 정리된 대학 수학 내용을 배웠고, 역사 과목 문제를 위해서 교과서 범위 밖 정보를 습득했다. 그 결과 수능 성적은 향상됐고, 만족할만한 대학 입시 결과를 얻었다.

문제는 이러한 수업을 누구나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남의 강사들은 주로 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따라서 지방의 학생들은 물리적 환경의 제약으로 사실상 수강이 불가능하다. 접근성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바로 돈이다. 당시 재수 종합학원의 한 달 수강료는 80만 원에 육박했다. 거기에 교재비와 보충 수업료까지 추가하면 대략 100만 원에 달하는 교육비가 한 달마다 소요됐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액수다. 재수라는 특수한 상황과 경기도라는 비교적 나쁘지 않았던 접근성이 없었다면 선택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참고로 '강남구 사회조사'에 따르면 2011년 강남 지역의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14만1300원이었다. 반면 2014년 전국의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종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53만4000원으로 2011년보다 6만5000원 늘었다.

물론 강남 학원의 도움 없이도,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스스로 체득하는 학생들도 있다. 또한, 아무리 수업 내용이 좋더라도, 본인이 직접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성적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깨닫는 건 일부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의 이야기다. 평범한 학생들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파악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따라서 강남 수업 내용은 큰 차이를 낳는다. 그리고 그 차이는 지역 그리고 특히 돈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돈이 스펙, 즉 학생부를 채웠다면, 수능에서 돈은 학생들의 출발점을 다르게 만들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를 다시 생각해 볼 때

하지만 학력고사와 수능으로 대표되는 정시가 대학 입시 제도 역사상 계층 이동이 가장 활발했던 건 사실로 보인다. 다큐멘터리에서 제시한 서울대 사회과학대 신입생 출신 지역 분석을 보면, 학력고사와 수능 시절 지역별 격차가 가장 적었다. 반면 2016학년도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 입학생의 출신 지역 비율은 서울이 무려 28%로 부산과 대전 등 대도시를 포함한 9개 지역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 심지어 강남 3구는 부산 지역보다 비율이 높았다. 또한, 다큐멘터리에서 사례로 제시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삶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김동연 경제부총리같이 서울대 등의 명문 대학을 가는 '개천에서 난 용'은 극히 소수의 성공 사례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실패한 다수의 학생이 소외되는 건 같다. 그리고 그 실패한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은 지역, 그리고 특히 돈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위에서 언급한 서울대 사회과학대 신입생 출신 지역 분석에서 학력고사와 수능 시절에도 서울의 독주는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한국교육학연구 최신호에 실린 '대학입학전형 선발 결정요인 분석' 논문에 따르면,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이 많은 집단에서 수시나 학생부종합전형보다는 정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즉,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표되는 현 입시제도와 학력고사, 수능 중심의 입시제도는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현 입시제도에서 그 문제점이 더 심화했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은 학생부종합전형이 급격히 늘어난 배경, 즉 정시의 비중이 줄어든 취지를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글의 초반에서도 언급했듯이,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는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잡고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경험을 평가한다는 데에 있다. 정시로 단순화되어 있던 입시제도에서 학생들의 수능 성적 이외의 재능과 경험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수능 성적 또한 부모의 재력, 즉 돈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물론 학생부종합전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같은 문제를 되풀이했고 오히려 더 심화한 모습을 보였다.

ⓒ EBS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단순화된, 특히 정시 위주의 입시 제도로 돌아가는 것은 같은 문제를 되풀이할 뿐이다. 조대원 미추홀외고 교사의 말처럼 학생부종합전형은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대한민국의 입시제도 중에서 유일하게 교실의 수업 장면을 긍정적으로 바꾼 입시제도이기도 하다. 즉, 지금 해야 할 건 학생들이 다양한 재능과 경험을 펼칠 수 있고, 부모의 재력으로 대표되는 사교육을 줄일 수 있도록 입시 제도를 수정하는 일이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물론 이는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단일한 잣대로 재단되지 않고, 각자의 특성을 살려 평가받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막중한 책임을 맡은 문재인 정부는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대학 입시의 진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