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걱정할 것 많은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저런 염려가 많다. 많긴 하나 사람 문제라는 점에선 모두 같다. 이제는 무탈하게 사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혹은 둘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고통의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마음이 쓰이는 정도의 친구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정말 이러다가 큰일을 치르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들게끔 한다. 아픈 소리를 해도 마음이 쓰지만 아무 말도 없을 때는 오히려 더 무섭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지인에게 답답함을 호소했더니, 그 감정을 알면 제발 남에게 걱정거리가 되지 말아 달라고 한다. 할 수 있는 게 잘 사는 것 밖에 없다. 요즘은 그 생각으로 일상을 버틴다.

대부분의 만남이 필연이 아닌 것처럼 헤어짐도 그렇다. 격언을 살짝 비틀어 말하자면 오는 데도 가는 데에도 순서는 없다. (나는 이쪽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준비된 이별을 치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벌어지는 것조차 예측할 수가 없으니 통제력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하나가 공포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겪은 몇 번의 죽음은 모두 '도대체? 어쩌다? 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도 별일 아닌 양 넘길 말에도 잔뜩 긴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또다시 느낀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가사를 알고 다르게 다가온 'Space Oddity'

 Space Oddity

ⓒ David Bowie


죽음과 그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 워낙 보편적인 주제이다 보니 이를 다룬 노래도 많다. 심지어 같은 심정인 이들에게 위로를 얻고 싶을 때 듣는 플레이 리스트까지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에 정말 뜬금없이 같은 종류의 노래를 발견했다. 바로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다. 1969년 싱글로 발매된 이 노래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오랜 사랑을 받았다. 보위의 팬이었던 나 역시도 이 노래를 틈틈이 찾아 듣곤 했으나 정작 가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노래의 내용이 한 우주 비행사가 우주로 떠밀려가 생이별을 하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노래의 화자는 두 명이기까지 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주비행사인 톰 소령은 우주선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지구의 통제실은 환호하고 그에게 잠시 나와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우주선은 무슨 문제인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우주로 흘러가고 톰은 지구에 사실상의 작별 인사를 남긴다. 통제실에서는 계속해서 응답을 요청하지만, 통신은 끊어지고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성공에서 작별로 환희에서 애달픔으로 넘어가는 이 이야기는 톰 소령과 통제실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몇 마디 오가지 않는 말로 모든 스토리텔링을 마치는 보위의 작사 능력이 일품이라 할 만하다. 여담이지만 2003년 인터뷰에서 보위는 이 노래가 당시 화제였던 달 착륙을 그려낸 것으로 오해 받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고 한다.

지구는 푸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Space Oddity

ⓒ David Bowie


사실 형식은 두 화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만 노래의 후반부, 이별의 순간으로 가면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떠나감을 직감한 사람은 자신은 괜찮다고, 아내에게 사랑을 전해달라고 남겨질 사람을 위로하지만, 상황을 받아 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말이 들리냐는 애달픈 외침을 반복할 뿐이다. 우주로 던져진 톰 소령은 아마 살아남지도, 돌아오지도 못할 것이다. 서로를 향해 보낸 말이 허공을 떠도는 상황은 갑작스러운 단절 속에서 이들이 처한 무력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에서 보위는 그 느낌을 톰 소령의 입을 통해 간결하게 정리한다.

 Space Oddity

ⓒ David Bowie


"지구는 푸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아마 이 노래의 인장이자 마침표라 할 이 가사를 보며 나는 한동안 궁금했다. 톰 소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토로하는 것은 당연했다. 노래의 클라이맥스에 펼쳐진 상황에서 그도 통제실의 사람들도 그런 처지였으니까. 그런데 그 앞에 지구는 푸르다는 말은 왜 붙은 것일까. 가사 속엔 이를 유추할 단서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비약일 수밖에 없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의미를 보충해 보고 싶다. 그것이 죽음이든 저 먼 우주로 보내지는 것이든, 돌이킬 수 없는 헤어짐을 겪은 사람은 아마 세상이 다 무너지는 감정이 들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상처 입고 무기력감에 무너져도, 세상은 냉정할 정도로 아랑곳없이 전날처럼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더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상실을 겪은 이들의 보편적인 고독


더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와중에도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는 톰 소령의 감정은 어땠을까. 나는 갑작스레 모든 것을 잃었지만 정작 평온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쩌면 그것은 급작스러운 이별 속에서 스스로가 극단적으로 무력하고 초라해진 경험을 한 이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고독일지도 모른다. 단조로운 일상마저도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이 그것을 사는 사람을 보며 느끼는 감정.

미세먼지가 가시고 이 시기에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공기가 깨끗했던 요즘이었다. SNS에 접속했던 나는 아차 싶었다. 청량한 하늘을 찍은 사진들과 여전한 지인들의 고통스러운 아우성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 앞에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막연하고 아연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의 기분이었다. 보위의 노래 제목처럼 세상은 참 이상(odd)하기만 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데이비드 보위 SPACE ODDITY 무력함 상실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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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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