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석 아나운서

ⓒ 이종성


신의석 아나운서는 가톨릭평화방송의 여러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눈코 뜰 새 없이 활동을 하는 입사 4년 차다. 2013년 하반기 이 방송사 공채시험에 라디오 프로듀서 입사를 목표로 지원했고 엄청난 경쟁률 속에 시험과 면접 등 여러 단계를 거쳐 방송사에서 일하는 꿈을 마침내 이루게 됐는데, 그가 최종합격한 분야는 프로듀서가 아닌 아나운서였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가 너무도 치열한 현실 속 경쟁을 TV를 통해 접하고 일정 기간 포기했지만, 막상 수년이 흐른 뒤 그의 이름 뒤에 붙여진 아나운서란 호칭은 운명 그 자체가 되었다. 무엇보다 아나운서 3년 차가 된 2016년 4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을 맡게 된 팝 전문 프로그램 <신의석의 11시가 좋다>는 많은 사람과 음악을 통해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는 신의석 아나운서.

어쨌든 그의 차선의 선택은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 마인드로 현재의 삶을 사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상대방에게 밝은 기운을 전해주는 신의석 아나운서와 29일 오후 5시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꿈을 이루고 현실을 살아가는 4년차 아나운서

 신의석 아나운서

ⓒ 이종성


- 아나운서로 근무한 지 얼마나 됐나?
"2014년 1월 2일 입사를 했으니 3년하고 5개월 정도 됐다. 방송사에 입사해 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다가 포기한 시기가 있었는데 다시 꿈을 갖고 도전 끝에 현재의 삶이 주어졌다. 운도 따랐다. (웃음) 무척 바쁜 일상을 4년 차 되도록 보내고 있지만, 아나운서 지망생이 여전히 많은 현실을 알고 있기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품고 산다."

-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가졌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교사인 어머니가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1학년 때는 선생님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학년 돼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과 선배의 모습을 보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2008년 아나운서를 오디션으로 뽑는 TV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면에서 부족할 게 없어 보였던 도전자들을 보고 그냥 포기했다웃음) 이후 군 복무 후 복학해서 공부하면서 아나운서가 아닌 방송사 프로듀서 입사 준비를 했다."

- 그럼 원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나?
"2013년 2월 대학을 졸업한 후 방송사와 주요 대기업 취업을 위해 취업 준비생의 삶을 살았다. 당시 선택과 집중을 너무 좁게 해서인지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웃음) 같은 해 가을 대학원 입학 등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무렵 어머니께서 가톨릭평화방송 공채 시험을 끝으로 보는 것 어떠냐고 권유를 하셨고 아까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운과 선택이 더해져 합격하게 됐다. 당시 지원했던 프로듀서로는 뽑히지 못했는데 방송사 경영진에서 아나운서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고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 4년 차 아나운서로서 방송국에서의 일과는 어떤가?
"매일 아침 출근해서 오늘 하루 방송에 어떻게 임할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오전 11시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원고·선곡·청취자분들의 다양한 통로로 보내주시는 글도 살펴본다. 이 밖에도 정해진 계획과 일정에 따라 여러 라디오 및 TV 프로그램 진행 및 경우에 따라 제작도 하고 있는데, 제작진 및 외부 게스트 분들과 함께 회의 일정은 항상 있다. 팟캐스트 방송도 하고 있고, 청취자 또는 시청자와의 소통하기 위해 SNS 홍보도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 한다. 물론 방송국이란 특수한 매체의 속성상 야근 및 주말 근무도 아나운서실 시간 배정 때문에 잘 임하고 있다. 그리고 한 명의 언론인이기 전에 직장인으로서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은 남들처럼 일상적으로 해나가는 중이다. (웃음)"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팝음악 프로그램 DJ

 신의석 아나운서

ⓒ 이종성


- SNS 홍보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나?
"매일 오전 11시에 방송되는 팝 음악 전문 프로그램 <신의석의 11시가 좋다>의 DJ로서 전국은 물론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애청자들을 만난다. 특히 수요일마다 내 개인 SNS 계정을 활용해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데 듣고 참여해주는 분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직접 체감하면서 '그분들과 이 공간에서만이라도 친구처럼 친근하고 편안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양한 분들과 이 공간에서 소통하고 싶다."

- 특히 1년 넘게 진행한 팝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듯하다.
"1960~1990년대 팝 음악을 주로 전해드리는 프로그램이라 내 나이에 접해보지 못한 곡들에 대한 낯섦이 많았다. 하루하루 음악을 사랑하는 청취자분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제작진들과 호흡을 맞춰 나가면서 좋은 팝 명곡과 여러 뮤지션들을 지속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도 있고 내가 음악 DJ로서 성장해 나가는데 자양분이 된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애정과 열정을 갖고 프로그램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는데 공헌을 했는지 5월 중순 방송국에서 주는 우수사원상도 받았다. (웃음)"

- 아나운서가 된 것에 대한 보람도 있을 것 같다.
"내 얼굴과 이름을 걸고 공적인 채널을 통해 말하는 것에 대해 항상 책임감을 느낀다. 방송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에 기운과 용기 위로를 얻거나 청취자(시청자)분들의 이야기에 조금이나마 귀 기울이고 따뜻한 말을 드리며 서로 공감대를 나눌 때 나의 선택에 스스로 감사한다. 오히려 그분들이 긍정적 기운을 내게 주는 것 같다."
아나운서의 틀 탈피, 제작진행자가 되는 꿈을 향해

- 최근 몇 년 사이 아나테이너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어떤 생각이 드나?
"아나운서연합회가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할 때가 있다. 세미나 주요주제로 '아나운서 위기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토론 상 많이 오간다. 뉴스 및 시사, 오락 예능 프로그램 대부분 치열한 시청률(청취율) 경쟁을 해야 하는 현재 방송 환경상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사로잡기 위한 연출자 입장에서 '선택의 풀'은 확장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나테이너(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로 성공한 분들은 그들 나름의 상당한 노력 끝에 얻은 결과라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나만의 색깔과 재능을 표출할 수 있는 아나운서로 성장해 가고 싶다. 현시점에서 내가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 SNS상에서 나란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자칭 '페북 스타'가 되고 싶다는 포부가 있는데 나를 잘 모르는 다수 사람으로부터 '재치 있고 유머 감각도 있는데 아나운서였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앞으로 가톨릭평화방송의 아나테이너로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웃음) 하지만 방송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프로듀서·기자·아나운서 각자의 영역이 점점 더 엷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획 및 제작, 진행까지 모두 할 수 있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

- 아나운서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여전히 많다. 선배로서 조언한다면?
"방금 피력했듯이 미디어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에 '아나운서는 진행만 잘하면 된다는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 지망생들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프로그램 기획 제작자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이지만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진행자와 청취자(시청자)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해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본다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향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을 드리고 싶다."

- 신의석 아나운서를 아끼는 애청자(시청자)분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 정말 많은 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내 이름을 걸고 1년째 방송 중인 <신의석의 11시가 좋다>도 언제부턴가 나 자신도 '이제는 들어줄 만 한데?'라고 자평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주신 애정에 항상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매일 만나려 한다. 또한, 점점 더 많은 팝 음악을 알아가고 좋아하는 아나운서이자 가톨릭평화방송의 장수 프로그램 DJ가 되어 애청자분들의 오랜 벗으로 남고 싶다.

아나운서 신의석 11시가 좋다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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