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군> 영화 포스터

▲ <대립군> 영화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대립군>은 역사적 사실(fact)에 상상력(fiction)을 가미해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팩션(faction) 장르에 속한다. 먼저 사실을 살펴보자.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다. 명나라의 군사 원조를 청하기 위해 신의주로 향하던 선조는 18세이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후에 임시 조정인 분조를 맡긴다. 분조를 이끌던 광해군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일대를 돌면서 의병을 모아 왜적에 맞선다. 이것은 선조실록과 피란행록에 기술되어 있다.

광해군이 병력을 이끌고 강계 전투를 직접 지휘했다거나 자객들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는 영화 속 전개는 상상력으로 쓰였다.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 치르는 '대립(代立)'은 선조 당시에도 빈번했으나 대립군이 분조를 도왔다는 근거는 없다. 여기서 영화는 파천(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피란)한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맡은 광해군과 생계를 위해 다른 이의 군역 부담을 진 대립군이 닮았음을 발견한다.

<대립군>에서 분조를 이끄는 광해(여진구 분)와 대립군의 대장 토우(이정재 분)는 다른 신분을 가졌다. 한쪽은 제왕의 피를 이어받은 신분이고, 다른 한쪽은 생계를 위해 전쟁터에서 군역을 대신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같은 처지이다. 광해는 자신을 임금 대신 불구덩이에 던져진 허수아비 신세라며 괴로워하고, 토우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도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허깨비 취급을 받는다.

픽션과 허구 사이, 대립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는 다른 신분에 놓였으나 대립 신세에선 똑같은 광해와 토우가 동일시되는 과정을 담았다. 유약한 광해는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을 무거워하며 줄곧 도망치려 한다. 광해는 토우와 강계로 향하며 서서히 강건한 모습으로 바뀐다.

변화는 불타버린 책이나 파괴되는 가마, 물을 마시고 밥을 먹거나 개울에서 몸을 씻는 장면으로 드러난다. 과거의 자신을 죽이며 새로운 자아를 찾는 광해의 변모는 곧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정이다. 토우는 도망간 아버지 선조를 '대립(代立)'해서 또 다른 아버지로 광해를 보살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진정 무서운 것, 바꾸어 말하면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대립군>의 '대립(代立)'은 대신한다는 의미 외에 의견이 충돌한다는 '대립(對立)'으로 읽을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 조정과 분조, 광해와 토우, 임금과 백성은 대립 관계를 이룬다. 영화는 토우와 광해가 갈등을 깨고 동일시되는 과정에 권력과 대립하는 민초의 울분을 전한다.

나라를 버리고 백성을 등진 임금에 대한 원망은 "나라가 망해도 우리 팔자는 안 바뀌어"라는 토우의 말로 드러난다. "우리한테 해준 게 뭐라고 목숨을 바친단 말이오!"라는 곡수(김무열 분)의 절규도 마찬가지다. 조선인과 여진족을 넘나드는 골루타(박지환 분)는 마치 내면의 감춰진 목소리처럼 기능하며 세자를 왜군에 넘기라고 속삭인다.

올 로케이션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대립군>은 실내 세트 촬영을 배제하고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되었다. 연출을 맡은 정윤철 감독은 <대립군> 제작기 영상을 통해 "주인공들이 겪는 고생이 보여지지 않으면, 이 영화의 뒤의 감정들이 실리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리얼한 모습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라고 올 로케이션 촬영의 배경을 설명한다. 영화에 참여한 이들의 노력 덕분에 <대립군>은 생생한 체험을 관객에게 준다. 강계 전투 장면 등은 전투 묘사도 실제감이 넘친다.

아쉬운 점도 있다. 광해를 죽이려는 자들처럼 극적 연출을 위해 고증을 지나치게 벗어난 부분은 팩션을 참작해도 무리수다. 강계 전투 후반부의 편집이 급작스러운 점도 거슬린다. 왜군의 전투 방식도 엉성한 구석이 많다.

<대립군>의 등장인물은 근사한 장면을 하나씩 가진다. 토우가 발길을 돌리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는 인상적이다. 광해가 백성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진심이 느껴진다, 곡수의 살려달라는 외침은 간절함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등장인물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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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군>을 만든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만든 바 있다. <대립군>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희망하는 '광해 다시보기' 두 번째 프로젝트인 셈이다. 두 영화가 공히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민본주의'를 주제로 삼았고 낮은 자세로 백성을 살피는 지도자 상을 그렸다..

정윤철 감독은 "<대립군>은 왕과 백성이 고생 속에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힘을 합쳐 침략한 적과 싸우는 이야기다. 고행길에서 광해는 처음으로 백성의 삶과 맞닥뜨린다. 그 안에서 리더란 무엇인가 깨달아간다.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대립군>에 나오는 왕을 상징하는 깃발엔 두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다. 두 마리의 용은 왕과 백성을 나타낸다. 깃발이 휘날린다는 건 왕이 존재한다는 말이며 백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름 없는 민초들이 깃발을 세우는 장면은 파천과 분조가 뒤엉킨 역사와 함께 대한민국의 오늘에 겹쳐진다. 토우는 광해에게 묻는다. "아직도 왕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광해는 답한다. "자네는 내 백성이 되고 싶은가?" 그렇게 <대립군>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와 지도자를 말하고 있다.

대립군 정윤철 이정재 여진구 김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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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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