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프랑스필 내한공연

라디오 프랑스 필 단원들과 음악감독 미코 프랑크. ⓒ 세종문화회관


웃으며 지휘한다. 단원들의 머리가 휘날린다. 피아노가 타악기처럼 연주된다. 듣고 있으면 몸이 들썩인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근대음악의 역동성, 에너지, 젊음, 위트로 가득했다. 4년 만에 내한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들의 색깔에 더없이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들고 생기 넘치는 5월의 무대를 꾸몄다.

예술감독 미코 프랑크가 2016년 부임 후 처음 갖는 아시아 투어다. 라디오 프랑스는 정명훈 예술감독이 2000년부터 15년간 전임으로 활약한 오케스트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다채로움과 활기가 특징이다. 프랑스적 선율로 듣는 시벨리우스, 거슈윈, 라벨의 에너지를 느껴보자.

손열음과 조지 거슈윈, 그리고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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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프랑스 필 내한 공연에서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 F장조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 세종문화회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시원하게 등 파인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센스 있는 선택이었다. 손열음은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 F장조의 협연자로 섰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무대인 셈이었다.

이 곡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여왕 김연아가 사용한 음악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파란색 의상을 입은 김연아 선수가 이 곡에 맞춰 프리 스케이팅 연기를 마친 후 금메달을 확정지었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피겨 퀸의 눈물을 잊을 수 없듯, 조지 거슈윈의 이 곡도 잊을 수 없다.

이 곡을 손열음의 연주로 듣는 건 의미 있는 우연처럼 보인다. '평창'이란 키워드로 김연아, 손열음을 연결할 수도 있기 때문. 김연아는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발히 활동 중이고, 손열음은 평창대관령음악제 부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모던 타임즈>란 이름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한 손열음은 격변의 20세기 초 근대음악에 대한 관심도 많고, 이해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자신 있고 편안한 해석으로 조지 거슈윈의 정신을 표현해냈다. 미코 프랑크는 몸을 돌려 손열음과 눈빛, 미소를 주고받으며 생동감 있는 하모니를 만들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공연장에서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사진은 지난해 11월 9일 촬영한 이미지. ⓒ 이정민


조지 거슈윈은 우아한 장난꾸러기 같다. 재즈와 클래식이 이보다 절묘하게 접목될 수 있을까. 재즈의 위트가 넘치는 가운데 클래식의 무게감을 잃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고전음악과 조금 다른 구성을 보인다. 활약이 미미하던 악기들이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처음 보는 악기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비브라폰 혹은 실로폰으로 보이는 악기와 피아노의 앙상블이 '귀엽다'는 인상마저 준다. 이러한 전복과 반전이야말로 근대음악의 활력과 유머를 보여주는 대목 아닐까. 엄격함을 덜어낸 자유분방한 리듬도 라디오 프랑스 필과 잘 어울렸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김연아의 밴쿠버 프리 연기를 다시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이전에는 '우아함'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면, 지금은 '역동성'이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왔다. 김연아는 이 곡의 1악장과 3악장을 4분 분량으로 편집해 2009년~2010년 프리 프로그램으로 활용했다. 자유분방하게 약동하는 피아노 선율의 뉘앙스를 김연아가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했는지, 얼마나 감각 있게 동작으로써 표현했는지 비로소 제대로 실감했다.

왜 김연아가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배경음악으로 택했는지, 이 곡을 통해 그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손열음과 라디오 프랑스 필의 협연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손열음은 앙코르곡으로 거슈윈의 프렐류드 1번을 스베틀린 루세브의 바이올린 협주로 선보이고 퇴장했다.

미코 프랑크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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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관객에게 다채로운 색감의 음악을 선사했다. ⓒ 세종문화회관


음악 감독 미코 프랑크의 지휘도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의자에 앉아서 지휘하는가 하면 바이올린 앞에 다가가 춤추듯 몸을 흔들며 젊음과 파격을 선보였다. 방긋 웃으며 단원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표정으로도 적극적으로 단원들과 의사소통하는 활동성이 돋보였다.

시벨리우스 크리스찬 2세 조곡 중 '야상곡'으로 문을 연 라디오 프랑스 필은 2부에선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과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제2번'을 선보였다. 특히 시벨리우스의 곡은 핀란드 출신인 미코 프랑크의 장기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레퍼토리였다. 앙코르곡으로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선물해 객석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지난 17일 입국한 미코 프랑크는 세종문화회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라디오 프랑스 필 단원들은 굉장히 뛰어나고 열정적이며 탐구심이 많다"며 "단원들과 연주하면서 눈 마주치고 미소 지을 정도로 호흡 잘 맞다"고 했다. "단원들 간의 사이가 좋고 즐겁다"는 그의 말의 진정성은 이날 공연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채운 관객들은 프랑스에서 온 신선하고 다채로운 음악에 만족한 듯 긴 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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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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