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2월 28일 오후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일본 오키나와현 야에세의 고친다구장 보조 구장에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이창열이 김성근 감독의 펑고를 마친 뒤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김 감독이 직접 펑고를 친 것은 2차 스프링 캠프지인 오키나와에서 이날이 처음이다.

지난 2015년 2월 28일 오후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일본 오키나와현 야에세의 고친다구장 보조 구장에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이창열이 김성근 감독의 펑고를 마친 뒤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김 감독이 직접 펑고를 친 것은 2차 스프링 캠프지인 오키나와에서 이날이 처음이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 감독과의 불편한 동거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화 구단은 지난 23일 김성근 감독과의 결별을 발표했다. 구단은 김 감독 측이 먼저 사의를 표명했다는 입장이지만 야구계에서는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할 때 사실상 경질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4년 겨울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하여 3년 계약을 맺었던 김 감독은 결국 만료 6개월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끝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김성근과 한화 구단의 예고된 파국은 그야말로 '용두사미'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김성근 감독이 처음 한화의 사령탑으로 부임할 때만 해도 많은 팬들로부터 가히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퇴장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사령탑 후보 우선순위로 크게 거론되지도 않았던 김 감독이 예상을 깨고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적극적인 여론몰이가 큰 몫을 담당했다. 이로 인하여 김 감독은 사상 최초로 '팬들이 추대한 감독' 같은 영예로운 수식어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일개 스포츠 감독을 넘어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을 만큼 신격화됐던 김 감독은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며 패배의식에 찌든 한화 구단을 구원해줄 사실상 유일한 구세주로 거론될 정도였다. 한화 구단도 감독에게 전례없이 막강한 권한을 보장하는가 하면 FA와 외국인 선수 영입-트레이드 등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며 아낌없이 김성근 감독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화는 김 감독 부임 이후에도 지난 두 시즌 연속 5할을 밑도는 승률로 포스트시즌조차 탈락했고 올 시즌도 지난 22일까지 18승 25패로 9위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치고 있었다. 한화에서 거둔 통산 성적은 319경기 150승 166패 3무 승률 4할 7푼 5리에 불과했다. 단순히 성적 부진만 아니라 김성근 부임 이후 끊임없이 거론된 선수 혹사 논란,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팀 운영, 구단과의 마찰 등으로 수많은 구설수를 초래했고 한때 든든한 우군이었던 팬들과 구단조차도 질린 나머지 잇달아 등을 돌리게 했다.

결국, 김성근 감독은 한화에서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실상 경질이라는 초라한 모양새로 팀을 떠나게 되며, 그의 야구 인생 내내 반복해온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40년이 넘는 김성근의 지도자 경력에서 한화는 김성근을 해고한 13번째 구단이다. 한화가 임기 마지막 해 최하위에 그쳤던 김인식-김응용 전 감독조차 끝까지 임기를 보장하고 시즌 후 계약만료 형식으로 결별하며 최소한의 예우는 지켜준 것과 비교할 때 김성근 감독의 말년이 더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김성근의 초라한 퇴장은, 한국야구에서 '구시대의 마지막 잔재'가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한국프로야구 1세대 감독 중 최후의 생존자라고 할 수 있었던 김성근은 현장과 프런트의 전문화·분업화가 보편화되고, 개인의 역량보다는 체계적인 시스템 중심의 운영이 자리 잡은 현대야구에서, 여전히 절대적 권능을 지닌 '1인 리더십'에 대한 환상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지도자였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몰락, 이미 예견됐었다

 (서울=연합뉴스)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75)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한화는 2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리는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의 지휘봉을 빼앗았다. 2017.5.23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75)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한화는 2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리는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의 지휘봉을 빼앗았다. 2017.5.23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김성근에게 야구를 바라보는 기준이란, 철저히 자기 자신의 주관적 신념과 경험에만 의지하고 있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독선과 불통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그의 야구를 데이터 야구나 스몰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김성근만의 야구에 가깝다. 투수 운용 패턴이나 훈련과 휴식의 구분, 혹사의 개념 등 어떤 측면에서 봐도  원칙이나 일관성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야구다.

여기서 김성근 야구에 대한 모든 판단의 옳고 그름, 타당성과 개연성을 가늠할 수 있는 절대 기준은 오로지 '김성근 그 자체' 밖에 없었다. 불펜투수를 매일 연투시키고, 돌아가면서 부상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유망주들은 트레이드로 유출되어 미래마저 암울해지는 부작용이 아무리 심각해도 김성근이 그렇게 해야 했다고 믿는다면 그런 것이다. 박종훈 단장같이 그에 반대하거나 제동을 거는 존재가 나오면 공공의 적이 될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항상 옳다." "나를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적"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즘'은 어쩌면 김성근의 지도자 인생 내내 일관된 처세이자 자기 보호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김성근은 가는 팀마다 권위에 유독 집착했고 팀 운영 전반에 걸쳐 일일이 개입하며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을 보였다. 반면 여론이나 외부의 평가에는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한때 사회적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김성근의 '야신 신화'는 어쩌면 빗나간 영웅주의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강력하고 유능한 초월적 리더가 망가진 조직이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류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대중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하지만 악용되면 오히려 대중을 선동하는 마타도어가 되기도 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한국의 '박정희=근대화' 신드롬이나 독재 권력을 합리화하는 개발도상국의 역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김성근이 한때나마 야구 감독 이상을 넘어 신격화된 존재로까지 미화될 수 있었던 것도 나누면 철저한 '성적 지상주의'와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포장된 '이미지 메이킹'의 힘이었다. 김성근은 실제로 한화 감독을 맡기 이전까지는 주로 약팀을 맡아 한 단계 도약을 이끌어내는 명장의 이미지가 강했다. 김성근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던 강훈련과 벌떼 야구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위대한 리더십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철저하게 눈앞의 효율성만 강조하여 선수들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야구는 뒤로 갈수록 혹사와 부상 논란, 팀의 노쇠화 같은 많은 부작용을 양산하기 일쑤였다.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나 구단의 지원·시스템같이 조직을 지탱하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오직 김성근 덕분에 성공했다는 잘못된 환상이 퍼진 것도 갈등을 유발하며 '김성근 리더십'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조명을 흐리게 만들었다.

김성근은 자신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나올 때마다 '핍박받는 아웃사이더'나 '소신 있는 리더'라는 이미지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내부를 결속시키는 방식을 고수했다. 수많은 인터뷰나 자서전 등을 통하여 자신의 업적을 미화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 말 그대로 1970~80년대에나 통하던 낡은 성공 방식이나 언론플레이를 21세기에도 그대로 답습하려다가 역풍을 맞고 몰락했다는 점에서 마치 몇몇 정치인들 혹은 우리 현대사의 데자뷔를 보는 듯 묘한 느낌까지 든다.

김성근을 무너뜨린 것은 그 자신이다

김성근을 무너뜨린 것은 박종훈 단장이나 한화 구단이 아니다. 바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고인 물이 되어 스스로가 야구계의 '적폐'로 전락해버린 본인이 자초한 몫이다. 물론 잘못된 포퓰리즘에 휘둘려 경솔하게 김성근을 영입했던 한화 구단도 팀 재건의 골든타임을 또 한 번 놓치며 막대한 비용과 시간까지 허비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화 구단도 이럴 바에는 지난 겨울 차라리 박종훈 단장을 영입하며 프런트를 개편하던 시점에 김성근 감독을 교체했어야 했다. 전혀 성향이 다른 김성근과 박종훈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야구에 대하여 조금만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예상했던 결말이었다.

김성근에게는 이번 경질이 단순히 한화와의 작별을 넘어서 프로야구 지도자 경력의 종착역이 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이미 물리적 나이로도 70대 중반의 고령인 데다 한화 사령탑을 맡은 지난 2년 반 동안 지도자로서 밑바닥을 드러내며 그간 쌓아온 명성과 이미지마저 모두 무너진 만큼 다시 그를 영입할 프로 구단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화도 김성근과의 불편한 동거에 우여곡절 끝에 마침표를 찍기는 했지만, 시련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결별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던 만큼 김성근 전 감독이나 그를 추종하는 팬들이 당분간 외부에서 구단을 비난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 2011년 SK 시절에도 당시 이만수 후임 감독과 구단 프런트는 김성근 측의 악의적인 여론몰이에 꽤 오랫동안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당시 폭도로 돌변한 일부 극성팬들이 홈구장에 방화를 저지르고 난동을 부리는 불상사도 있었다. 이번에도 김성근의 사퇴가 알려지면서 박종훈 단장을 비롯한 한화 구단 관계자들이 일부 극성팬들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의 타깃이 되고 있어서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화 구단 내부적으로도 할 일이 태산이다. 김성근 전 감독이 망가뜨린 유망주 육성 시스템과 1군 라인업의 고령화, 고비용 저효율의 선수단 구조를 개편하고 팀을 재건하려면 후임 감독이 누가 되든지 당분간 고생이 불가피하다. 지난해까지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한화로서는 당분간 암흑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김성근은 드디어 떠났지만, 한화가 구시대의 적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직도 험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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