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블럭'이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연 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에서 발언하고 있다.

음악평론가 '블럭'이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연 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에서 발언하고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힙합을 좋아하는 동시에 여성혐오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줘도 안 먹어"(블랙넛)라거나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송민호) 같은 노골적인 힙합 가사를 보면 이는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담는 힙합의 특성과 '디스'가 결합해 '무조건 솔직한 이야기를 하면 장땡'이라는 풍조가 득세하게 되면서 더더욱. 부적절한 가사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면 "그럴 거면 듣지 말아라"라거나 "'선비질'한다"는 반박이 나온다.

이런 것이 과연 힙합인가? 힙합은 이럴 수밖에 없는 건가? 2013년부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블럭'(필명)은 "솔직하게 말하겠다면서 소수자를 후려치는 내용을 쓰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블럭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이야기'를 랩을 통해 풀어내는 힙합을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힙합을 힙합 그 자체로 좋아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회고한다.

거기서 그가 택한 대안은 힙합에 대한 고민을 글로 내는 것이었다. 그는 칼럼을 통해 거듭 여성 혐오적 가사를 생산해내는 블랙넛을 향해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라고 비판했고 블랙넛은 랩을 이용해 그를 '디스'했다. 지난 19일 블럭이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한국여성민우회 특강에서 '엠넷의 힙합'에 대해 입을 열었다.

"왜 래퍼는 효도를 좋아해?"

엠넷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힙합 프로그램들에 대해 블럭은 불만을 표했다. 그가 말하기를 힙합은 처음 "놀기 위해" 시작된 음악 형태다.

"놀기 위해 노래를 틀고 여기에 래퍼들이 가사를 입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음악들이 생겼다. 힙합으로 여성 혐오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저질렀던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는 사람도 많다. 하나의 갈래만이 진실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는 '엠넷'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힙합의 특징을 이용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랩은 자신이 직접 가사를 써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반영이 되고 그러다 보니 '이 지경'이 됐다. 이걸 제일 좋아하는 게 '엠넷'이다. '엠넷' 참 사연 좋아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사연이 더해지면 재밌어지니까."

 엠넷의 힙합 프로그램. (왼쪽부터) 청소년들이 나와서 경연을 벌이는 <고등래퍼>, 여성 래퍼들의 무대인 <언프리티 랩스타>, 그리고 엠넷의 대표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음악전문채널 엠넷의 대표 힙합 프로그램들. (왼쪽부터) 청소년들이 나와서 경연을 벌이는 <고등래퍼>, 여성 래퍼들의 무대인 <언프리티 랩스타>, 그리고 엠넷의 대표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 Mnet


"물론 래퍼라면 프로그램과 무관하게 각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있고 자신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라는 순기능이 묻어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효도나 가난 같은 구구절절한 사연, 어머니 아버지 안 나오는 힙합 프로그램이 없다. 항상 효도해야 하고. 왜 래퍼는 효도를 해야 할까? '부모님께 돈을 많이 벌어 좋은 걸 해드렸다'라는 미국의 랩을 본 적이 없다.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성공 서사를 증명하기 좋은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성공을 이야기하고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약자를 때리는 것이다."

또 블럭은 엠넷이 '래퍼 상품화'에 앞장섰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을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블럭은 "(프로그램 속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우승한) 래퍼가 상품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길게 활동하는 경우는 안타깝게 많지 않다"면서도 래퍼들이 이들 프로그램에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엠넷이 조성하는) 생태계 자체에 래퍼들이나 기획자들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풍조가 비단 <쇼미더머니>나 <고등래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블럭의 설명이었다.

"엠넷은 잘 빠져나간다. 래퍼가 부적절한 표현을 하면 이는 래퍼의 표현이 된다. 방송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거르지 않고 내비치고 분위기를 몰아간 엠넷에도 잘못이 있지만 보통 사과를 하는 사람은 래퍼지 엠넷이 아니더라.

하지만 <쇼미더머니>나 <고등래퍼>, <언프리티랩스타>가 아니더라도 이런 문제는 나왔을 거라 본다. 래퍼는 스스로 가사를 쓰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상태나 생각하는 방식이 가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블럭은 마지막으로 불편하게 듣지 않는 힙합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면서 그 예로 '슬릭'과 '제리케이'를 들었다.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블럭. 그는 과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계속 힙합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우리는 '진짜 내 이야기'를 하는 힙합을 즐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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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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