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의 스틸 이미지.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윤동주는, 실은 부끄러운 인간이 아니었다. 진짜 부끄러운 인간은 따로 있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문학은 사치다.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다. 반면 영화 <동주> 속 윤동주는 시를 쓴다. 그렇기에 윤동주는 매번 자책감에 시달린다. 죽마고우이자 사촌지간인 송몽규는 독립운동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며, 모든 것을 바친다. 이런 송몽규의 모습은 윤동주를 더욱 주저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윤동주는 계속해서 시를 썼다. 일제 치하의 풍파를 견디며, 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그 결과 현재의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보면서 식민지 시대를 겪은 청년의 무력감과 동시에 독립을 향한 그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윤동주가 평생 자신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정지용 시인의 말처럼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알았기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그의 남겨진 시들 또한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영화 속 '부끄럽지 않은'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일제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는 도중에 목숨을 잃고 만다.

정작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당사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영화 <동주>의 스틸 이미지.

영화 <동주>의 스틸 이미지. 윤동주는 '부끄러움'의 시인이었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러나 영화 <동주>를 통해 윤동주를 기억하며, 정지용의 말에 위안을 얻고 끝내기엔 현실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정작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당사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 체 살아남았고, 지금도 부끄러움을 모른 체 살고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모진 고문 끝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일제 군대나 경찰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친일파들은, 미군의 비호를 받던 이승만 정권에서 살아남아 독재에 부역했다. 일제 34년 11개월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와해했다.

5·16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심지어 일본 왕에게 혈서로 친일을 맹세한 만주군 장교였다. 또한, 1965년에는 일본과 다시 국교를 맺는 과정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를 말끔히 처리하지 않았다. 참고로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이 친일파에게 수여한 훈장은 모두 368건이었다.

박정희의 딸이자 제18대 대통령인 박근혜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으로부터 10억 엔을 받는 대신 한일 간 외교적 현안으로 위안부 문제 논의를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부터 지지기반이 강고해진 뉴라이트는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로 친일 역사관을 설파했다.

전두환, 세월호, 용산참사 그리고 백남기 농민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매장에 <전두환 회고록>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4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매장에 <전두환 회고록>이 진열되어 있다. ⓒ 권우성


하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 비단 친일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5.18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는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지난 4월 3일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대선주자였던 홍준표 전 경상남도 도지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린 학생들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3년 동안 했으면 됐지 않았느냐?"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같은 당 김명연 의원은 세월호 재조사 지시를 정치 보복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09년, 이명박 정권 아래 6명의 희생자를 낸 용산참사의 책임자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공항공사 신임사장으로 임명됐다. 현재는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중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경찰이 부검을 시도해 40일 넘게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바 있다.

이렇듯 100년이 넘는 한국 현대사는 부끄러움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100년의 역사였다. 정작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당사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이러니한 역사였다.

새 정부에 바란다, '부끄러움을 되찾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입 다문 정우택 문재인 대통령(왼쪽 다섯째),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한편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오른쪽 둘째)은 입을 다물고 있다. 행사를 마친 뒤 정 대표는 ‘5·18 민주 영령에 대한 추념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항’이라며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왼쪽 다섯째),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국정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으며, 15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의 순직을 인정하는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그 외에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 등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부끄러움이 많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5.18 학살 책임자 규명, 용산참사 진상규명, 해고 언론인 복직 문제 등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앞에는 IMF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어느 때보다도 예측 불가능한 한반도 안보 상황이 놓여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알아야 한다. 윤동주의 시가 부끄럽지 않았던 이유는 윤동주가 일제강점기에 시를 쓰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새 정부에 말하고 싶다. 꼭 잃어버린 부끄러움을 되찾아 달라고, 정확히 말해서 부끄러움의 제자리를 찾아 달라고. 부끄러움은 윤동주 시인만의 몫이 아니라고.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하자.

동주 부끄러움 문재인정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