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놀기 바쁜 초등학교 6학년생 이시다 쇼야(이리노 미유), 어느 날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녀 니시미야 쇼쿄(하야미 사오리)가 그의 반에 전학을 온다. 쇼코는 공책에 글을 써가면서 반 친구들과 소통하며 친해지려 노력하지만, 우에노 나오카(카네코 유우키)를 비롯한 반 친구들은 쇼쿄와 거리를 두려 한다. 게다가 말썽꾸러기 이사다 쇼야는 쇼쿄의 보청기를 뽑는가 하면 공책을 물에 던지는 등 그녀를 괴롭히기까지 한다. 그렇게 왕따를 당한 쇼쿄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전학을 간다. 그리고 이시다 역시 왕따의 가해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왕따가 되고 만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이시다는 자살을 하기에 앞서 쇼쿄를 찾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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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미야자키 햐야오의 지브리 시대가 끝나가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호소다 마모루와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가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목소리의 형태>는 이제 또 한 명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을 주목하게 하고 있다. 바로 야마다 나오코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왕따 같은 민감한 인간관계를 뛰어난 통찰력으로 다루고 있으며,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심리적인 깊이가 돋보이는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조차 <목소리의 형태>를 보고 "굉장한 작품이다. 흉내내고 싶어도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이다.

풋풋한 그림체와 다른 주제 의식

<목소리의 형태>는 언뜻 10대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10대들의 왕따 문제 그리고 우정의 의미와 진정한 용서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다.

왕따의 가해자였던 말썽꾸러기 이시다 쇼야는 제멋대로 청각장애인 니시미야 쇼코를 판단하고 괴롭힌다. 그러다 본인이 왕따의 가해자라는 낙인 속에 갇히게 되고 도리어 왕따의 피해자가 되면서 말 없는 외톨이가 되고 만다. 영화는 확연히 대조적인 이시다 쇼야의 과거와 현재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자신의 과거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온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한편, 왕따 가해자에게 왕따 피해자에 대한 역지사지의 관점을 제대로 끌어올리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왕따 피해자의 세밀한 감정묘사가 인상적이다.

 왕따를 당하는 쇼야는 학우들의 얼굴이 X 표시로 가려져 보인다.

왕따를 당하는 쇼야는 학우들의 얼굴이 X 표시로 가려져 보인다. ⓒ (주)콘텐츠게이트


이시다 쇼야는  학우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 학우들의 얼굴은 모두 X 표시로 가려지게 된다. 이런 상태는 왕따 피해자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꾸릴 수 없음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이고 있다.

또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시다 쇼야의 시점에서 처리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이시다 쇼야는 다른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리나 가슴을 보고 대화를 하곤 하는데, 영화는 그런 대화 장면을 쇼야의 시점에서 보여주면서 왕따 피해자의 부끄럽고 굴욕적인 심정을 잘 전달하고 있다. 또 카메라는 말을 하는 쇼야를 잡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을 담아내며 듣는 이의 감정까지 잡아내면서 매우 효과적으로 화면처리를 하고 있다.

왕따로 살아가던 쇼야의 인간관계 회복은 과거 잘못에 대한 참회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를 돕게 되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는 자살하기 전 용서를 구하기 위해 쇼코를 찾아간다. 그녀와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을 좀 더 돌아보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자하는 노력 속에서 자기 자신을 아끼게 된다. 그리고 '나도 친구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잘못에 대한 진정한 참회의 시간이 자신을 회복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쇼야는 위험에 처했던 나가츠카를 도와주면서 처음으로 고등학교에서 친구를 얻게 되는데, 이런 나가츠카와의 관계형성은 친구가 없거나 혹은 친구와 틀어진 관계 속에서 고통슬운 시간을 지내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과거 친구에게 받은 상처속에 돌이키기 힘든 관계 회복만을 바라며 위축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환경에 따라 친구가 없어질 수 있지만 선의를 통해서 얼마든지 새로이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예전엔 무서워서 못했는데 이제는 해보고 판단하기로 했어"라는 사하라의 대사도 인상적이다. 실패와 남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가두어 작은 시도조차 못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해보지 않으면 자신의 한계를 깨뜨릴 수 없다는 것으로, 경험을 통한 자기 발전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매력

 청각장애인 쇼코를 괴롭히는 쇼야

청각장애인 쇼코를 괴롭히는 쇼야 ⓒ (주)콘텐츠게이트


<목소리의 형태>는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메시지와 세밀한 감정표현뿐 아니라 영화적인 기교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다.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물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쇼야의 모습, 사람 얼굴에 X 표시를 붙여 넣은 상징적인 요소들이 돋보이는 한편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맥거핀을 활용하여 신선함을 준다. 빛과 정적만으로 전달되는 감정표현과 노이즈를 통해서 더 선명하게 전달시키는 아름다운 배경음악도 인상적이다. 사진을 보는듯한 포커싱과 생생함을 표현하고 있는 디테일한 배경 묘사는 애니메이션만의 매력을 고스란히 발산하고 있다.

원작자 오이마 요시토키의 원래 고향이었던 기후현 오가키를 배경으로 하는데, 작품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인 '수화' 역시 수화 통역사였던 원작자 어머니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탄생하게 됐다고 한다. 제목인 <목소리의 형태>는 "숨겨진 메시지도 알아채자"라는 마음에서 시작돼, 소리 '声', 손을 뜻하는 창 '殳', 그리고 귀 '耳'가 합쳐진 글자인 聲을 보고 작품의 이름을 <聲の形>(목소리의 형태)라 짓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작사는 교토 애니메이션이며 연출은 <케이온>, <타마코 마켓>의 여성감독 야마다 나오코가 맡았다. 각본은 <케이온>의 각본을 맡았던 요시다 레이코, 캐릭터 디자인은 <일상>, <빙과>, <Free>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던 니시야 후토시로다. 주인공 이시다 쇼야의 목소리는 이리노 미유, 니시미야 쇼코는 하야미 사오리가 맡았다. 일본에선 2016년 9월 17일에 개봉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지난해 아시아를 강타했던 <너의 이름은> 탓에 크게 기를 펴지 못했다. 일본에선 1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3억 엔의 극장수입을 거두었다.

<목소리의 형태>는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2017년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페스티벌 각본상과 작품상 수상을 비롯해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애니오브더이어 작품상 수상한 바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목소리의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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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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