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너티>의 한장면

<이터너티>의 한장면 ⓒ (주)라이크 콘텐츠


인생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다른 인생의 시작과 끝을 보다가 죽는다. 우주가 별의 탄생과 소멸로 점철되어 존재하듯, 삶은 태어남과 죽음이 교차되는 와중에 끊임없이 전해진다. 그렇게 작고도 유한한 인간의 존재는 영겁(Eternity)을 살아간다.

영화 <이터너티>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 영겁의 세월을 그린다. 배경은 19세기에서 20세기를 아우르는 프랑스 어딘가. 주인공은 발렌틴과 그의 며느리 마틸드, 그리고 마틸드의 친구 가브리엘이다.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의 일생을 마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느릿느릿 전한다. 1995년 출간된 알리스 페르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영상 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트란 안 훙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드리 토투와 멜라니 로랑, 베레니스 베조 등 프랑스 대표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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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한 집안의 어린 딸 발렌틴(오드리 토투 분)으로부터 시작한다. 부모와 자매들 사이에서 귀하게 자란 그는 성인이 되어 집안에서 맺어준 짝 쥘과 결혼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발렌틴은 쌍둥이 두 아들을 비롯해 많은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한다. 발렌틴의 아들 앙리가 소꿉친구 마틸드와 결혼한 뒤에는 마틸드(멜라니 로랑 분) 역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일가를 꾸린다. 이들 부부는 절친이자 이웃인 가브리엘(베레니스 베조 분)-샤를 부부와 함께 평화로우면서도 다사다난한 일상을 이어간다.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감독 트란 안 훙의 말대로 <이터너티>가 그리는 세계는 퍽 이질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노동을 하지 않은 채 생활을 영위하고, 그들의 삶은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언제나 풍요롭다. 발렌틴과 마틸드, 가브리엘의 인생이 결혼과 출산, 육아의 단순한 구조로 전개되고 반복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근대 프랑스 브루주아 여성인 이들은 그렇게 '생존하는 삶'이 아닌 '영위하는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

덕분에 영화는 행복과 불행, 만남과 헤어짐이 이어지는 세 주인공의 서사를 통해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들은 많은 자녀를 얻는 동안 몇몇 아이를 유산하거나 병으로 떠나 보내고, 혹은 전쟁터에 보낸 자식을 보지도 못한 채 죽음을 통보받는다. 어느새 늙어버린 부모를 잃거나 사랑해 마지않던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린다. 대저택과 널따란 정원, 초록의 숲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훑는 영화의 장면 장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뛰노는 아이들 뒤로 어스름 깔리는 저녁 하늘은 행복에 내재된 불행의 불씨를 아릿하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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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차분한 어투로 사건과 감정의 흐름을 읊조리는 내레이션은 이러한 영화의 분위기를 견인하는 주된 동력이다. 제3자이자 여성의 음성으로 극 중 인물이나 사건과 분리된 채 이어지는 목소리는 서사를 대하는 미래의 관점으로도 비치고, 한편으로는 세 여자를 아우르는 초월적 여신(女神)의 시선으로까지 여겨진다. 그 중에서도 "위태롭지 않은 것이 없었고, 모든 게 덧없이 되풀이되었다"라는 내레이션은 영화가 다루는 인생의 본질을 한 마디로 대변하며 깊숙이 각인된다. 무엇보다 빛나는 건 이 잔인한 삶을 대하는 발렌틴과 마틸드, 가브리엘의 태도다. '언젠가 이별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 한 그들의 잔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오는 18일 개봉.


이터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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