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해로 기록된다. 전두환은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을 무마하고자 우민화 정책을 수행한다. 집권 2년차에 실행된 이른바 3S (Sex, Sports, Screen) 정책은 '우민화 프로젝트' 하에 프로야구 창단, 야간 통행 금지 해지, 성적 표현에 대한 검열 완화 등이 표면화 된 현상을 언론이 지칭하게 되면서 형성된 용어다.

야간 통행 금지가 해지되면서 심야영화 상영이 가능해지고, 이 시간대를 메우게 된 것은 주로 애로 영화들이었다. 특히, 영화의 성적 재현에 대한 검열이 대폭 완화되면서 1980년대 초반 애로/성애 영화의 제작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윤정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1982년 기준 한국 영화 총 제작수의 60% 가량이 성애영화였다고 기록되어 있다(Cinema of Retreat : Examining South Korean Erotic Films of the 1980s).

이러한 애로 영화 봇물의 선두에 있는 작품 <애마 부인>(원제는 愛馬婦人이었으나 "馬, 말 마" 자가 음란하다는 검열의 요청으로 "麻, 삼 마" 자로 변경된 愛麻婦人으로 개봉되었다) 은 1982년 2월 16일, 서울극장에서 단독개봉 했다.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단일관에서만 33만 5000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애마부인>

영화 <애마부인> ⓒ 한국영상자료원


전두환의 3S 정책, 선두의 <애마부인>

영화는 부도를 낸 남편이 교도소에 가자 홀로 남은 중산층 여성의 성적 행각을 그린다. 주인공 애마(안소영 분)는 남편의 면회를 다니던 중 우연히 미대생(하재영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미대생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그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자와 또 다른 관계를 갖는다. 시간이 흘러 남편이 출소하고 미대생은 애마에게 같이 프랑스로 가자고 제의하지만, 끝내 애마는 남편의 아내로 남기로 한다.

1982년 첫 개봉 이후 총 12년 간 '11탄'까지 제작되며 성인 영화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만큼 <애마 부인>은 '볼 거리'가 풍성(?)하다. 애마가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고 흰 말을 타는 유명한 장면만 생각해도 <애마 부인>이 선대를 지배했던 호스티스 영화들 보다 시각적으로 월등히 진화했음을 가늠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애로 영화의 정석, 혹은 텍스트 같은 작품으로 남아 있는 <애마 부인>은 영화사적으로도 함유하는 의미가 많은 작품이다.

일단 <애마 부인>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요소는 여주인공의 설정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호스티스 영화의 여주인공들, 즉, 시골에서 꿈을 안고 올라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술집 여자로 전락하게 되는 비련의 호스티스에서, 중산층 가정 주부로 진보한 것이다. 이를 '진보' 라고 보는 이유는 여성의 성적 행위가 70년대의 선례들처럼 강요되거나, 특정 직업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 아닌 보편적 데모그래피를 대표하는 가정주부에 의한 것으로, 미미하나마 발전 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애마 부인>을 혁신적으로 보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동성애의 재현이다. 가령, 애마의 친구 에리카(김애경 분)가 애마와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에리카는 애마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애마는 정말 예쁜 몸을 가졌어"라며 그녀의 육체에 대해 찬양한다. 이 장면은 여자 친구들 사이의 흔한 대화의 묘사가 아닌 성적인 에너지와 뉘앙스로 가득하다.

카메라는 에리카가 애마의 몸을 만지는 손을 슬로우 워크로 따라가고 이내 그녀의 손이 애마의 가슴에서 멈춘다. 애마는 눈을 감고 친구의 도발을 즐기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묘사를 휘감고 있는 것은 애로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정체 불명의 끈적끈적한 음악이다. 아무리 당시 검열이 영화들의 성적 재현을 완화했다고는 하지만 잘려 나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노골적인 동성애 묘사다.

 영화 <애마부인>

영화 <애마부인> ⓒ 한국영상자료원


단순 애로영화라기 보단 '읽을거리' 많아

<애마 부인>은 '아파트'가 중심이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애마가 아파트의 이웃 남자 중 한 명과 얽히게 되면서 플롯의 상당 부분이 아파트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부로 1970년대에 시작되어 80년대에 급증하기 시작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더 가까운 근거는 1970년대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단지 처' 영화들이다.

'단지 처' 영화는 니카츠 로망 포르노 영화들(야한 영화의 정치학 4화 참조) 중, 아파트 단지에 사는 부잣집 주부, 혹은 첩(아파트 단지에 두는 '처'라 해서 '단지 처' 라는 이름이 붙었다)의 성적 일탈을 그려낸 하위 장르의 영화들을 말한다. 1970년대의 일본도 아파트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증가했고, 단지 안에서 대부분의 일상을 보내는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단지 처'라는 장르의 영화까지 생겨난 것이다. 단언할 수는 없으나 '단지 처' 영화들의 엄청난 성공과 한국영화들이 당시 국내로 수입될 수 없었던 일본영화를 표절한 예들이 빈번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애마 부인> 의 아파트 설정도 '단지 처' 영화를 참고한 것이 아닌가 유추해 보게 한다.

 영화 <애마부인>

영화 <애마부인> ⓒ 한국영상자료원


단순 성애 영화로 국한시키기에는 <애마 부인>은 '읽을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특히 생각 해 볼 문제는 이 영화가 (일반)여성의 성적 욕망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과연 진보적인 여성상에 접근했는가라는 이슈다. 애마는 그녀의 욕망을 능동적으로 표현하고 실현한다는 점에서 선대 (영화들)의 여성들 보다 진일보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정작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 그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에게 돌아간다. 가정을 가진 여자가 내연남을 정리하고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영화가 애마의 내적 고민이나 상처는 충분이 설명하거나 표현하지 않은 채 다소 급작스럽게 애마를 '귀가' 시키고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애마 부인>은 애마의 성적 욕망은 디테일하게 표현 하면서도 정작 그녀의 내면을 표현하기를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80년대의 성애 영화들이 소위 '야한 여자'들을 등장시켜 히트를 거듭했지만, 사실 그들은 70년대의 가련한 호스티스들에서 크게 진보하지 못한 채 욕망이 발현되는 육체로만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70,80년대에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들이 압도적인 수를 기록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 이면이 달갑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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