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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가르치며 가르키고 있다.
▲ 와이셔츠 차림을 한 이수영 제자들을 가르치며 가르키고 있다.
ⓒ 이수영선생 제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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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수영(1940, 충남 부여~2007) 선생 10주기 추모굿이 오는 5월 16일(화) 오후7시30분 충무로역 3번 출구 남산국악당에서 이수영선생 제자모임 주최로 열린다.

남사당놀이 인간문화재 예능보유자 고 남운용(1907~1979) 선생의 마지막 유랑예인(流浪藝人) 전수자로 꽹과리로 돋으며 비나리하는 비나리쇠로 독보적인 이수영은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대 전문 예인 사이에서는 '아티스트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늘 첫손에 꼽혔다.

그의 희귀음원은 국악방송에서 '탁발염불 비나리'나 '고사덕담'이란 곡 제목으로 드물게 소개되었고, 학술대회에서도 마지막 남사당 회고담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남사당 정통 비나리쇠 이수영 이외에도 '남사당 명인', '유랑예인', 정통 비나리쇠', '덜미의 명인'이라는 수식어로 줄곳 이 분야 제자들이 애송하는 스승 이름으로 불려져 왔다.

그러나 인간문화재가 되길 거부한 이수영 선생은 살아생전 어떤 명성을 마다하며 남사당 발끝에서 땅끝으로 가는 낮고도 더 낮은 유랑예인의 곧은 삶을 살아갔다.

선생이 떠나간지 올해로 10주년이 되는 해, 그의 몇 안되는 제자들이 의기투합해 다시금 이름을 불러 모시려는 굿판을 벌이려 한다.

사물놀이 창시자인 김덕수(1952~, 현 한예종 교수)의 사회로 역시 양대산맥의 남은 하나인 이광수(1952~, 민족음악원 원장)가 비나리를 시작한다. 이 둘은 이수영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따르던 동갑내기 아우들이었다.

이어서 장구, 버나놀이, 덜미(목 덜미의 덜미로 불리우는 남사당패 인형극), 풍물놀이를 '이수영제(制)'로 재현한다.

그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7년 동안 수발을 들며 가시는 길을 지켜보았던 공간다락 대표 박연하 외에 이수영 선생이 말년에 다니며 가르쳤던 학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제자 김원민(현재 모교 교수로 재직)과 서울예술대학교 국악과 제자인 이용태(현재 재직 교수). 그리고 극단 사니너머대표인 김학수, 굿치는 사람들 해당화 대표 김영은 이렇게 다섯 제자가 본 추모굿을 함께 모의(謀議)했다.

정통 비나리쇠 이수영의 생전 마지막 공연 중 한 장면
▲ 생전 마지막 장면 중 하나 정통 비나리쇠 이수영의 생전 마지막 공연 중 한 장면
ⓒ 이수영선생 제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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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전문소리꾼처럼 하는게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범인(凡人)이 자기 애끓는 심정을 아무나 붙잡고 말하듯 툭툭 던지면 그게 제대로 되고 제대로 나는 소리다. 이를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했다. 속으로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하는 경지라. 소리는 지르듯하나 아이가 잠결에 듣는 조곤조곤 어른들 이야기 소리같고, 그것이 비나리가 되고 이윽고 숭앙(崇仰)하는 노래가 된다."

스승의 예술을 후에 논문으로도 정리해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발표한 박연하가 선생의 소리를 정리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공연 문의 : 010-2776-2930 이수영선생 제자모임 박연하 공간다락 대표.
사진출처 : 이수영선생 제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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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수영 제자모임, #박연하 , #공간다락, #이수영, #남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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