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윙보트>의 포스터. 선거에서 유권자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스윙보트>의 포스터. 선거에서 유권자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한 표에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

버드 존슨(케빈 코스트너)은 미국 뉴멕시코의 작은 도시 텍시코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살고 있지 않은 이상 텍시코라는 도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일 이후로 10일간 이 도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가 된다. 이곳에 버드 존슨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버드 존슨의 손안에 미국의 운명이 놓였다.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는 무승부. 그런데 텍시코에서 선거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 단 한 표를 위해 재투표가 시행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재투표, 그 한 표의 주인공

 사람들의 편지를 읽고 있는 버디와 몰리.

사람들의 편지를 읽고 있는 버디와 몰리.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재투표를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버드다. 버드가 민주당을 뽑으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공화당을 뽑으면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 하지만 버드는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일에도 큰 관심 없는 흐물흐물한 사람 아닌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맥주 마시며 빈둥거리기인 그의 선거에 대한 평소 지론은 이렇기까지 하다.

"투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주인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어차피 누구를 뽑아 놔도 보험료는 안 내려갈 거고 너 병나면 아빠는 가서 피 팔아야 돼."

아빠보다 정신연령이 훨씬 높은 12살 딸 몰리(매들린 캐롤)가 "투표는 시민의 의무야"라고 한 말에 대한 대답이 위와 같았던 건 건데, 그러니까 버드는 '부동층 유권자'라고 할 수도 없다. 아예 정치에 관심조차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 <스윙 보트>는 버드가 '스윙 보트(부동층 유권자)'라는 데 희망을 품은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가, 버드의 한 표를 얻기 위해 '버드만을 위한 캠페인'을 여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따라간다.

설정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이 설정이 가능했던 것이 부정 선거였기에 영화의 설득력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케빈 코스트너의 (짜증 날 정도로) 능청스러운 연기와 매들린 캐롤 특유의 냉소와 순수함이 묻어있는 표정 연기 그리고 좌충우돌하는 대선 캠페인의 코믹함을 보는 재미가 크다.

한 표의 가치, 투표 기준은?

 버디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도시 텍시코를 찾아온 대선 후보.

버디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도시 텍시코를 찾아온 대선 후보.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한 표의 가치'다. 결국, 대선 후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한 표'이고, 이들은 이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당을 대표하는 정책까지 과감히 바꾼다. 버드의 말 한마디에 공화당은 그간의 친기업 정책을 버리고 친환경 정책을 공표하며, 민주당은 다양성 정책을 폐기하고 반이민 정책에 발을 담근다. 영화에서 각 진영은 너무할 정도로 오락가락 정책을 펴지만, 이는 버드 자체가 아무 생각 없는 유권자이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만약,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한 표의 거대한 무리들'이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 A라는 정책을 지지한다면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A 정책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걸 영화는 말하고 있다.

한심한 버드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지점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심지어 어느 당에 투표할 것인지조차 생각해보지 않은 채 이 상황을 즐긴다. 버드의 모습에 미국의 근심은 늘어가고 급기야 딸은 아빠에게 "아빠가 미국을 망치고 있다!"며 집을 나간다. 이제 투표는 며칠 앞으로 다가왔고 투표 전날 두 명의 대선 후보는 버드를 위한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버드 혼자. 그렇다면, 버드는 무슨 질문을 할까.

영화는 조금은 산만한 과정을 거쳐왔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영화 전반에 걸쳐 '한 표의 가치'를 다뤘다면, 마지막 버드의 변화에서 '어떤 기준으로 투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울림을 전한다. 버드가 정신없이 휩쓸려 다닐 때 몰리는 전국에서 도착한 편지들을 분류하고 여력이 닿는 한 답장을 보내 편지 발신자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토론회 전날 버드와 몰리가 한 일이 편지를 읽으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토론회 날, 버드는 영화가 시작한 이래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이 그간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한 첫 질문은 다른 이의 아픔을 두 명의 대선 후보에게 전하는 일이었다. 버드는 침착하게 편지를 읽어 나간다.

"저희는 딸 셋의 부부입니다. 서로 두 개씩 일해도 생활이 빠듯하기만 해요.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아이가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겁이 덜컥 납니다. 나라는 잘사는데, 왜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기 힘든 걸까요?"

이 장면은 버드가 다음 날 있을 재투표에서 투표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 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윙 보트 대통령 선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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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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