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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탈출 게임'은 TV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신서유기> <코드-비밀의 방>에서 활용되며 대중에게 친숙해진 이름이다. 방 안에 갇힌 참가자들이 단서를 찾거나 수수께끼를 풀어 정해진 시간 내에 바깥으로 나오는 놀이를 의미하는 '방 탈출 게임'은 처음엔 <크림슨 룸> 등 컴퓨터 게임에서 출발했다. 어도비 플래시, 마우스를 이용하는 웹게임으로 유행하던 '방 탈출 게임'은 2007년 일본에서 게임을 현실로 재현한,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서 게임 바깥의 세상으로 나왔다.

현재 '방 탈출 게임'을 운영하는 놀이 공간이나 카페는 전 세계에서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2015년에 상륙하여 서울 홍대와 강남을 중심으로 전국에 130개 이상의 매장이 운영되는 상황이다. 큰 인기에 발맞추어 유명 게임을 원작으로 한 내용, 고대나 중세 등 다양한 시간대, 추리 소설에서 모티프를 얻은 상황 등 '방 탈출 게임'은 여러 테마와 스토리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영화 <이스케이프 룸>은 제목 그대로 '방 탈출 게임'을 소재로 다룬다. 커플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브라이스(스키트 울리치 분)가 운영하는 방 탈출 카페를 찾은 제프(랜디 웨인 분), 벤(매트 맥베이 분), 제스(크리스틴 돈런 분), 엔지(에슐리 가예고스 분). 그들은 게임 도중에 브라이스가 골동품 가게에서 산 해골 무늬 상자를 연다. 상자가 열리면서 바깥으로 나온 악령에 밀실 살인마 역할을 하던 배우가 빙의되고 그는 실제로 사람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방 안을 볼 수 있는 CCTV가 고장이 난 상황에서 내부 상황을 모르는 브라이스는 가게의 평판을 두려워해 게임을 중단시킬지 여부로 고민한다. 그동안 방 안에 있는 네 사람은 살인마에게 하나씩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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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케이프 룸>은 최근 유행하는 두 가지 트렌드의 접목을 시도한다. 하나가 유행하는 '방 탈출 게임'이라면 다른 하나는 저주가 깃든 물건이다. 할리우드는 <쏘우> 시리즈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기상천외한 살육의 현장 다음으로 악령에 시선을 돌렸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컨저링>의 성공은 <애나벨> <오큘러스> <위자> <살인소설> <포제션: 악령의 상자> 등 저주받은 물건과 악령을 다룬 영화들이 쏟아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스케이프 룸>의 해골 무늬 상자에 잠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도 이들의 영향을 받은 소재다.

영화에서 '방 탈출 게임'에 도전하는 제프와 벤은 자칭 호러 전문가다. 유명 호러 사이트를 운영하는 두 사람은 집에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같은 호러 걸작 포스터를 걸어놓고 <유아 넥스트>가 걸작인지로 논쟁할 정도로 호러에 푹 빠져있다. "때가 되면 우린 각본을 쓸 거고 호러 대가의 반열에 오를 거야"라고 외치는 두 사람에 모습엔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피터 듀크스의 호러를 향한 열정과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패기가 서려 있다.

피터 듀크스 감독은 호러광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에서 나아가 몇 편의 호러 영화를 <이스케이프 룸>의 디딤돌로 놓았다. 골동품가게 주인 라모나(이 역할을 맡은 배우는 <블레이드 러너>의 인조인간 레프리컨트로 유명한 숀 영!)는 해골 무늬 상자를 팔라는 브라이스의 제안을 받고 단칼에 팔지 않는 물건이라면서 거절한다. 이 장면은 <그렘린>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라모나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을 적엔 "물을 피하고 자정 전에 밥을 줘"란 대사가 나올 정도로 <그렘린>에 대한 애정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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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케이프 룸>에선 제프와 벤이 존 카펜터의 <괴물>(1982)과 <더 씽>(2011)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고립된 공간, 정체불명의 존재가 인간에게 들어오는 <괴물> <더 씽>의 설정은 <이스케이프 룸>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스케이프 룸>은 <이블 데드>와 닮은 구석이 더욱 많다.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일행이 녹음기를 튼다거나 악령이 환영을 보여주며 산 자를 유혹하는 장면은 <이블 데드>의 설정을 변형한 전개다. <이스케이프 룸>엔 <괴물>과 <이블 데드>의 유전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스케이프 룸>은 재미 삼아 도전한 '방 탈출 게임'이 생존을 위한 실제 상황으로 돌변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 바깥에서 열어주지 않는 한 나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인물들은 필사적으로 게임에 임한다. 쇠사슬에 묶인 살인마는 그들의 숨통을 시시각각 조인다. 이렇게 구축한 긴장감은 제한된 시간과 어울려 한층 재미를 더한다. 생존 게임에 주어진 55분은 완벽하게 실시간으로 구성되진 않았으나 어느 정도 실제 시간에 맞게 진행되어 체감지수를 높여준다.

영화는 인원, 공간, 예산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방 탈출 게임'의 맛과 '악령'의 공포를 결합한 <이스케이프 룸>은 누구나 아는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 '웰메이드'란 표현이 절대 아깝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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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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