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더>의 메인 포스터.

<파운더>의 메인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나이키와 함께 업계 최고의 스포츠 용품 회사인 '아디다스(Adidas)'는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의 이름을 줄여 만든 상호명이다. 세계적인 가구회사 '이케아(IKEA)' 역시 창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것이다.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회사인 '배스킨라빈스 31(Baskin Robbins 31)' 역시 처음 회사를 연 어빈 라빈스(Irvine Robbins)와 버튼 배스킨(Burton Baskin)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 외 수많은 명품 패션 브랜드들 '샤넬(Chanel)', '구찌(Gucci)', '루이 비통(Louis Vuitton)'도 마찬가지다. 모두 창립자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그렇다면 전 세계 119개국 3만 50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음식 업체 '맥도날드(McDonald's)'는 어떨까? 역시나 195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시골에서 처음 식당 문을 연 맥도날드 형제(Dick&Mac McDonald)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런데 맥도날드의 초대 창립자는 맥도날드 형제가 아니라 레이 크록(Ray Kroc)이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유가 뭘까?

세일즈맨의 부활

 가게 앞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에 세일즈맨은 놀라움을 금치 못 한다.

가게 앞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에 세일즈맨은 놀라움을 금치 못 한다. ⓒ CGV 아트하우스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면 산업화된 사회의 시스템에서 몰락해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영화 <파운더>의 주인공인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 역시 그 전례를 답습하는 듯하다. 세일즈맨으로서 그는 가리지 않고 이 물건 저 물건 미국 전역을 차로 다니며 발품을 팔아보지만 오늘도 아무 것도 팔지 못 했다. 점점 아내와 직원을 볼 낯이 없다. 무거운 믹서기를 트렁크에서 꺼내고 넣기만 반복할 뿐이다.

모든 것이 좌절스럽기만 하던 바로 그 때, 비서로부터 희소식을 듣는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시골동네인 샌 버나디노의 한 식당에서 믹서기를 여덟 대나 주문한 것이다. 한 대 팔기도 녹록치 않던 그는 도대체 어떤 식당이길래 믹서기를 여덟 대나 주문한 것인지 궁금해 직접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해서 그 곳에 가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로 우리가 지금 쉽게 즐기는 햄버거 가게의 1호점을 보게 된다.

가게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근데 이게 웬 일. 순식간에 줄이 줄어든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햄버거를 시켰더니 30초도 안 되어 음식이 나온다. 심지어 식기도 필요없다. 포장지 속 음식을 다 먹고 종이는 버리기만 하면 된다. 완전히 새로운 식당의 출현이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에 대해 고민이던 레이 크록에게 이번만큼은 아주 확실한 촉이 왔다. 이 식당을 키워보자고. 아니 키우는 걸 넘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자고.

레이 크록은 가게의 주인인 맥도날드 형제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한다. 하지만 두 형제는 큰 돈을 만지는 것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세일즈맨은 계속해서 구애했다. 결국 형제는 그의 설득에 넘어갔고 확장에 관련한 전권을 그에게 위임하게 된다. 그렇게 세일즈맨은 완벽하게 부활의 날갯짓을 펼친다.

마이클 키튼의 부활

 영화의 연출을 맡은 존 리 행콕(왼쪽)과 주연 마이클 키튼(오른쪽)

영화의 연출을 맡은 존 리 행콕(왼쪽)과 주연 마이클 키튼(오른쪽) ⓒ CGV 아트하우스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나왔고 2편까지 영화가 흥행하며 주인공 배트맨을 맡은 마이클 키튼은 9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 후 그의 필모그래피는 심한 기복으로 점철되었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왕년의 스타는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빛나는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으로 부활했다. 반짝 부활이 아니었다. 이듬해 아카데미에서 <스포트라이트>로 다시 작품상을 연거푸 받으며 완벽한 부활을 이뤄낸 것이다. 이젠 믿고 보는 배우가 된 마이클 키튼의 영화기에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부활한 왕년의 배우는 그 기대에 다시 한 번 완벽히 부응했다.

마이클 키튼 말고도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존 리 행콕 감독의 이름을 보는 순간 <파운더>에 대한 기대감은 더 높아진다. 그의 전작들인 <루키> <블라인드 사이드> <세이빙 Mr.뱅크스>가 모두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었고 전부 훌륭한 수작들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맥도날드의 첫 역사가 담긴 실화를 다루는데 있어 존 리 행콕말고는 대체재가 안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

맥도날드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해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동의를 얻은 레이 크록은 곧바로 두 발로 뛴다. 돌아다니며 홍보를 하는 것은 세일즈맨으로서 그의 전공이었다. 화려한 언변과 추진력으로 그는 한 달 새 세 개의 점포를 열었고 계속해서 미 전역에 맥도날드의 '골든 아치'(맥도날드를 상징하는 황금색 m자 형태)를 세웠다.

하지만 매장은 계속 늘어나지만 최초의 계약대로 로열티만 받기에 레이 크록은 성이 차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분명히 맥도날드 형제의 것이지만 맥도날드라는 시골의 작은 햄버거 가게를 미국 최고의 식당으로 만든 공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영악한 세일즈맨은 묘수 또는 꼼수를 써서 맥도날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결국 빅맥을 콜라와 삼켜버리듯 맥도날드 전체를 삼켜버린다. 그리고 맥도날드 왕국의 초대 창립자(Founder)가 되어버린다.

 결국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의 창립자가 된다.

결국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의 창립자가 된다. ⓒ CGV 아트하우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을 다시 복기해보면 맥도날드의 시작은 미국 역사에 대한 자화상으로서 역할을 한다. 콜럼버스는 인도를 찾아 나섰다가 잘못 도착한 대륙에서 만난 원주민들을 마음대로 인디언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헐리우드는 그들을 밀어내며 서부를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들을 자랑스레 영화로 만들어왔다.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영토를 차지한 미국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신흥 강대국으로서 절정을 향해간다. 당시 급성장하는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속도와 효율이었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많은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결국 자동차 회사 포드(Ford)의 컨베이어 벨트가 미국을 지배하게 됐다.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햄버거를 내놓는 방식을 고안한 맥도날드 형제의 모습과 그런 그들을 밀어내며 새로운 주인 행세를 하는 레이 크록의 모습은 미국의 성장사에 대한 아주 분명한 암시(알레고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언종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eon_et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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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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