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윤이서 역의 배우 안재홍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안재홍의 장기 중 하나인 평범함의 연기를 잘 담아낼 그릇이었다. ⓒ 이정민


요즘 악기 하나 제대로 배워볼까 생각 중이다. 얼마 전 SNS에 올린 영화 <라라랜드> 피아노 연주 영상에 어떤 이는 "여전히 라라랜드냐"며 댓글로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는 진지하다. "제일 배우고 싶은 건 기타"라며 왕성한 예술혼을 드러내기도 했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며 이젠 명실상부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주연을 맡은 안재홍이다.

그가 이번 영화에서 맡은 역은 다름 아닌 사관 윤이서, 그냥 사관이 아니라 임금 예종(이선균 분)과 함께 고관대신들이 벌이는 역모를 추적하는 임무까지 맡는다. 매우 중요한 일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하다.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이서의 재능을 이미 알아본 임금은 그를 꾸준히 중용한다. 평범해 보이는 영웅의 이야기. 안재홍은 "그런 이야기를 평소에 좋아했다"고 말했다.

첫 주연, 그리고 이선균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윤이서 역의 배우 안재홍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선균과의 만남. 소고기 인연은 두 사람의 첫 사극 코미디 도전으로 이어졌다. ⓒ 이정민


두 남자의 추리 활극이라는 틀에서 보면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몇 가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 명탐정> 시리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말이다. 다만 임금과 신하의 조합, 그 연기의 주체가 이선균과 안재홍이라는 점에선 충분히 신선하다. 두 배우 모두 사극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전혀 소모되지 않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재홍은 이선균과 인연이 깊다. 대학교 은사기도 한 홍상수 감독 작품을 통해 이선균을 만났고, 이선균은 종종 후배들에게 소고기를 사주며 챙긴 일은 꽤 알려진 일화다. "귀한 소고기를 사주시다니 좋았다. 물론 지금도 귀하지만"이라며 그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포스터. 예종 폐위 음모를 두고 왕과 신하가 직접 사건해결에 나선다는 코미디 사극이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포스터. 예종 폐위 음모를 두고 왕과 신하가 직접 사건해결에 나선다는 코미디 사극이다. ⓒ CJ 엔터테인먼트

"분량과 상업영화라는 이유로 물론 처음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내심 해보고 싶었다. 제가 큰 역할을 맡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선균 선배가 출연한다는 사실에 더 하고 싶었다. 이야기가 또 재밌게 느껴졌다. 총명한 인물이지만 궁궐이 주는 위압감에 허둥대고, 그러면서도 우직하게 예종을 지키려는 모습이 설득력 있고 좋았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전형적 사극이 아니라서 가능한 설정들이 있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작품 준비할 때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다. 좀 더 다양하게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참고가 될 만한 영화가 생각나면 찾아보고, 혼자서도 생각을 많이 한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준비하면서는 <머니볼>(브래드 피트 주연의 미국 프로야구 구단에 대한 영화 - 기자 주)이라는 작품을 많이 참고했다. 빌리 빈(브래드 피트)과 피터 브랜드(조나 힐)의 관계를 집중해서 봤다. 그 영화를 연출한 배넷 밀러 감독의 작품을 다 좋아한다."

비급 정서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윤이서 역의 배우 안재홍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속 윤이서가 능력을 발휘하기 직전 취하는 포즈를 안재홍이 시연했다. ⓒ 이정민


상업영화 최전선에 나섰지만 여전히 안재홍은 몇 가지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족구왕> 속 복학생,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등으로 친숙한 그는 은근하게 존재감을 넓혀온 경우다. 여기에 전공을 살려 두 편의 단편영화 연출 경험도 있다. 분명 주류 감성은 아닌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친숙한 모습으로 그는 제법 다양한 옷을 입어왔다. 그의 연기와 작품이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이유다. 이를 비급 정서라고 정의해봤다.

"대중에 익숙한 이야기라 해도 제게 편안 옷은 없다. 나름엔 또 친숙하면서도 뭔가 캐릭터가 확장되는 느낌을 주고 싶기도 하다. 아직까진 쉬운 건 없고, 그럴 내공도 아닌 거 같다. 비급 정서라는 게 좋다.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연기라는 게 관객 분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거잖나. 그런 의미에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구분은 제겐 크게 의미 없다. 그 영화에 맞는 연기를 할 뿐이다.

그리고 단편영화 연출은 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해본 거고, 하고 싶었던 말을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한 거다. 그간 몰랐던 부분을 깨닫게 해준 게 있다. 근데 지금은 딱히 연출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할 수 있겠지."

기억의 힘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윤이서 역의 배우 안재홍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안재홍의 다양한 표정들. ⓒ 이정민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스스로도 낯을 가린다고 말할 만큼 자기를 말로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만큼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에 대한 기억, 지금까지 거쳐 온 여행지, 그리고 출연작들에 대한 세세한 사항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의 원천이 이런 기억 본능에 있지 않을까.

"숫기도 없었고, 연기자가 될 줄 어릴 땐 몰랐지. 일단 대학생이 되고 싶었던 거 같다. 그 이후 정말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다. 처음부터 목표가 명확했던 건 아니었다. 친구들끼리 단편영화 만드는 게 너무 재밌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수업이 없어도 방학 때 학교에 가서 무대를 만들고 연습하곤 했다.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좋더라. 점점 연기에 빠졌고, 마음을 굳힌 거지. 그렇다고 저 멀리 미래를 보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 충실히 살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인생은 내 계획대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달까. 그렇다고 계획 없이 막사는 건 아니다(웃음).  

과거를 돌아보고 잘 기억하려 하는 편이다. 소중하고 귀한 거 아닌가. 근데 기억력은 나쁘다(웃음). 일기를 따로 쓰진 않고, 그때그때 기념품이나 소품을 모으는 편이다. 내가 출연한 영화의 소품, 인터뷰했던 잡지들을 다 모으고 있다. 젊은 부부가 하시는 동네 카페에 갔는데 창문에 철판으로 된 세계지도를 붙여놓은 걸 봤다. 다녀온 여행지들에 그곳에서 산 마그네틱이 붙어 있더라. 너무 좋아보였다. 나도 모아봐야겠다."

출연작 모두가 깨물어 안 아픈 손이 없듯 소중하겠지만 안재홍이 꼽은 자신의 소중한 필모그래피는 <1999, 면회>였다. "가장 청순했던 모습이 담겨 있다"며 "내 초심이라 생각하고 가끔씩 돌려 보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 출연 장르는 SF. 사뭇 이 장르에서의 안재홍 모습이 급 궁금해졌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윤이서 역의 배우 안재홍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SF라는 장르에서 안재홍의 연기를 보게 될 날이, 기대된다. ⓒ 이정민



안재홍 이선균 임금님의 사건수첩 사극 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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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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