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다자인 소프트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태어난 <링>과 <주온>은 전 세계 호러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인기는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판본으로 새로이 만들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속편의 반복되는 전개와 별다른 창작적 고민이 없는 만듦새에 팬들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빈틈을 채운 것은 <쏘우> 시리즈와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몫이었다. 이후 <링>과 <주온>이 만든 '저주'의 기운은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와 <컨저링> <인시디어스> <데모닉> <애나벨> <라이트 아웃> 등 제임스 완의 손길이 닿은 작품들에 스며들었다.

<사다코 대 카야코>를 끝으로 두 원혼이 성불하길 기대한 건 무리였을까? <링>이 <링스>라는 낯선 이름으로 돌아왔다. 이번 복귀는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링스>는 미국 기준으론 <링>(2002)과 <링 2>(2005)를 잇는 세 번째 할리우드산 <링>이다. 메가폰은 단편 영화 <브라질>(2002)로 주목을 받고 첫 장편 영화 <쓰리 데이즈>(2008)로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는 F. 하비에르 구티에레즈가 잡았다.

F. 하비에르 구티에레즈 감독은 공포물 전문 매체인 <루 모르그>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리지널 <링> 시리즈를 매우 좋아해 <링스>에도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담고자 노력했다"고 밝히며 <링>에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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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과했던 탓인지 <링스>의 이야기는 <링>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홀트(알렉스 로 분)가 어떤 계기로 저주의 영상을 보게 되고, 애인 줄리아(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 분)마저 감염이 되면서 그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함께 저주의 근원을 파헤친다는 <링스>의 전개는 앞선 작품들이 보여준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영화는 여기에 '희생' 코드를 살짝 얹었을 뿐이다.

<링스>는 자신만의 색채를 내기 위해 과격한 설정 파괴를 시도한다. "저주의 영상을 본 사람은 7일 후에 죽게 되고, 살려면 그 시간 안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죽는 이는 오직 영상을 본 사람이다"라는 지금까지 지켜진 <링>의 법칙이다. 그러나 <링스>는 오프닝에 나오는 비행기 장면부터 <링>의 규칙을 산산조각으로 깨버린다. 이런 행보는 영화 내내 계속되며 <링>의 고유성을 소멸시킨다.

줄리아만 다른 저주의 영상을 보는 이유는? 그녀가 선택을 받았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지만, 영화는 별다른 설명을 하질 않는다. 막무가내 진행이 거듭되다 보니 개연성은 있을 턱이 없다. 마치 <링>의 껍데기를 다른 공포 영화에 억지로 씌운 느낌이다. 미국의 <글로브 앤 메일>의 평자 존 셈리는 <링스>에 대해 "<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모순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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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스>에 대해 가혹하게 평가한다면 <링>의 불필요한 복사본 수준이다. 뒤죽박죽 설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평 포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링스>가 기록한 신선도 '6%'는 쉽게 나올 수 있는 성적표가 아니다. 돈벌이에 급급하여 <링>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마저 내버린 태도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다. <링>의 유산을 인용하며 훌륭한 변주를 시도했던 <팔로우>를 떠올리면 <링스>가 얼마나 게으른지 알 수 있다.

<링>과 <주온> 시리즈는 조악한 완성도로 계속 나오는 실정이다. 두 영화는 국적 불문하고 제작을 금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골도 적당히 우려내야지 이젠 아무것도 안 나오지 않나. 호러 영화가 무섭기는커녕 웃기게 되었다면 볼 장 다 본 셈이다. 끝없이 착취당하는 사다코와 카야코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링스 F. 하비에르 구티에레즈 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 알렉스 로 자니 갈렉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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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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