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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3일 오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군 동성애 색출 지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2017.4.13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3일 오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군 동성애 색출 지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201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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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하나 등장한다. 바로 수돗물 불소처리가 미국 상수원을 오염시키려는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믿는 잭 리퍼 장군이다. 누가 들어도 코웃음을 칠 망상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의 공포가 강력했던 냉전 시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

문제는 리퍼 장군이 유사시에 핵 공격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갖고 있는 장성이었다는 점. 그는 결국 전투기들에게 소련을 향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고 미국 정부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들은 지금의 핵 공격은 사고이며 명령은 취소될 것이니 보복 공격을 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소련 대사는 핵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전 세계에 방사능이 퍼지는 장치가 이미 마련되었다며 난색을 표한다.

내부 체제를 공고히 하고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사례는 흔하다. 가령 미국 사회를 공산주의자 색출로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매카시즘 사태를 살펴보자.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는 명예훼손과 금품수수, 음주 추태로 인해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미국에 암약한 공산주의자들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매카시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어갔고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이내 그를 둘러싼 이슈는 잊은 채 매카시의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에 휩쓸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이 같은 공포 정치를 풍자적으로 비튼다.

보수 개신교계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유

매카시 의원에게 공산주의가 있었다면 한국 개신교계에는 동성애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성 소수자 혐오에는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를 증오하는가>에서 한채윤은 보수 개신교계가 집단적인 성 소수자 혐오 활동을 통해 교계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정치적 세력화를 이루고자 했음을 지적한다.

이들이 필요했던 것은 비리와 분열로 초래된 반목의 해소와 입법 과정에 개입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다. 성 소수자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교계의 구성원들이 내부의 문제를 볼 틈이 없게 지속적인 혐오 활동 임무를 부여한다. 또한, 각종 차별 금지 법안과 조례를 무산시키는 식으로 정치에 개입해 실력을 행사한다.

때문에 보수 개신교 집단이 성 소수자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치명적인 위해를 가한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이들이 전파하는 혐오는 성 소수자들이 육체적이나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을 힘들게 만들며 차별과 소외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내긴 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혐오 세력은 각종 법안의 통과를 막거나 성 소수자 관련 행사에 훼방을 놓는 식으로 개인보다는 주로 퀴어 공동체 전반을 목표물로 활동 중이다.

이는 애초에 딱 그 정도 수위의 공격으로도 보수 개신교계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혐오 선동에 참여하는 교계나 구성원들이 법을 위반하지 않고서는 성 소수자 개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신체적 안전을 해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혐오 범죄를 혐오로 보지는 않더라도, 범죄로 보지 않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다.

혐오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질 때

그런데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보자. 이는 혐오에 경도된 개인이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위해를 가하는 것이 가능한 제도적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성 소수자의 삶은 지금보다 더 직접적으로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졌다. 얼마 전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육군 당국이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및 처벌을 지시했으며 배후에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내가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단지 참모총장이 한국기독군인연합회의 회장을 맡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가 보수 개신교계와는 달리 성 소수자를 혐오하지 않고 문제가 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 집단의 존재 자체를 문제로 보고 범죄를 수사하듯 이들을 색출하고 처벌코자 하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게 누가 되었든 이 일을 명령한 책임자는 어쨌든 존재한다. 말하자면 성 소수자들의 신상을 위태롭게 만들 만큼 권한을 지닌 누군가가 자신의 혐오에 기반해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는 이번 사건을 다룬 KBS의 보도와 SNS 포스팅에서도 똑같이 반복된 문제이기도 하다.

KBS의 해당 보도는 육군 측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전하며 이번 사건이 성 소수자 군인에 대한 조직적 탄압이 아니라 동성애자 군인의 성행위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 것처럼 다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SNS를 통해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포르노 영화 찍냐?'나 '우웩'이라는 표현을 통해 혐오를 드러냈다. KBS의 보도와 포스팅이 만들어 낼 프레임은 명확하다.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성애자의 성행위는 그 자체로 문제이며 그것은 역겨운 것이라는 음란함과 혐오의 틀 말이다.

혐오 사회에서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KBS가 이 같은 시선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다. 공영방송으로서 이들은 막강한 전파력을 지니고 있으며 성 소수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KBS의 페이스북 계정 팔로어만 해도 2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런 집단에서 뉴스를 제작하고 방송에 내보내며 SNS 계정을 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혐오를 반복하거나 심지어 행하기까지 한다? 이건 두 번 말할 것 없이 위험하다.

물론 이번 사건의 뒤에는 혐오하는 개인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단순한 해프닝이나 특정 인물의 일탈적 행위로 볼 생각은 없다. 이들이 군대 내에서 주요한 직무를 맡거나 공영방송에서 뉴스를 제작하고 SNS 계정 포스팅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하고 행하는 것이 기껏해야 에티켓의 문제나 혹은 해악조차도 아닌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 아닌가. 심지어 이는 누군가가 다른 이의 삶을 좌지우지하거나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지위에 진입하는데 있어서도 결격사유로 작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별금지법과 같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여기에서 기인한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문제임을 선언하고 직무적 판단에 혐오가 개입할 여지를 막을 법률 및 시스템이다. 또한, 군형법 92조 6항과 같이 소수자 탄압에 악용될 여지가 있는 법과 제도를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처럼 권력을 이용해 소수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일들은 얼마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기우 같은가? 당장 미국만 봐도 트럼프 당선 이후 오바마 정권이 이룩한 성 소수자 인권 향상 정책들이 도루묵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 그리고 박근혜 같은 사람을 권력의 정점에 올려 보았던 우리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익히 알려져 있듯 혐오는 전염성이 강한 정서다. 지금에서야 이게 단지 성 소수자들만의 문제로만 보이겠지만 어떤 집단으로 혐오의 감정이 옮겨질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혐오가 만연하고 심지어 국가 기구 내부에서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까지도 그 정서를 공유하는 사회가 과연 안전할까?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결말처럼 그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맞이할 결과는 사이좋은 공멸뿐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혐오가 힘에 접근하지 못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잭 리퍼 장군은 영화 속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태그:#혐오, #군형법, #성소수자, #인권, #동성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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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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