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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부산행>은 좀비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돌아보고 점점 분리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여기가 더 무서워"라는 진희(안소희)의 대사는 눈앞에서 맹렬하게 달려드는 좀비 떼보다 자꾸 경계를 만들려는 인간의 내면이 실제로는 더 무섭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최근 국내에 개봉한 영화 <분노>도 대인 관계 속에서 바탕이 되는 믿음, 그 속에서 자라나는 불신 등 인간 내면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 <분노>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한 살인사건 후 연고를 알 수 없는 세 남자와 그 주변인들의 시선이 담긴 스릴러다.

도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현장엔 피로 쓰인 '분노'라는 글자가 남겨져 있다. 1년이 지난 뒤 용의자를 닮은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지바의 항구에서 일하는 요헤이(와타나베 켄)는 얼마 전부터 함께 일한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와 사랑에 빠진 딸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가 미덥지 않다. 말수가 적고 예사롭지 않은 타시로의 눈빛이 마음에 걸린다. 샐러리맨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신주쿠의 게이클럽에서 만난 나오토(아야노 고)와 동거를 시작한다. 적극적인 자신에 비해, 과거를 이야기 하지 않으려는 나오토의 행동에 유마는 주춤한다. 오키나와로 이사 온 고등학생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친구 타츠야(사쿠모토 타카라)와 무인도를 구경하던 중 그곳에서 혼자 사는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를 만난다. 상냥하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소문내지 말아 달라는 타나카의 요청에 이즈미는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알겠다고 한다.

영화는 세 남자를 대하는 주변인들을 통해 믿음이 어떻게 불신으로 바뀌는지 보여준다. 타인을 받아들였음에도 그들의 겉모습과 행동에서 보이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의심의 눈초리를 던진다. 그렇게 섣부른 판단만을 가지고 상대방을 나무랐을 때 돌아오는 건 상처와 이별뿐이다. 아이코에게 "믿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타시로와 나오토의 고아원 친구에게 "믿지 못해 난 도망쳤다"고 말하는 유마의 상반되는 대사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믿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다"고 분노하는 사쿠모토의 행동에는 신뢰와 불신 사이의 혼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인 우리들의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영화는 묻는다.

영화는 세 남자와 그와 얽힌 주변인들의 모습을 치밀하고 교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촘촘하게 전개된다. 경찰이 구체적으로 용의자의 몽타주를 공개할수록 커지는 세 남자에 대한 궁금증, 깊어지는 주변인들의 의심은 관객들이 긴장을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항구와 게이클럽, 외딴 섬 등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배경은 낯섦이라는 것을 통해 또 다른 공포를 준다. 명배우로 정평이 난 와타나베부터 신예 히로세까지 8명의 탄탄한 주연 배우들이 내 외면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는 세세한 심리묘사는 142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의 집중도를 유지해 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수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mediasoo.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분노 이상일 감독 와타나베 켄 일본 영화 미야자키 아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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