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포스터

▲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언제고 만들어질 게 분명했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실사판이 드디어 관객과 만났다. 1995년 극장판 첫 편이 개봉한 지 무려 22년 만이다. 22년은 얼마나 긴 세월인가. 막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고 중학생이던 소년이 중년을 바라본다. 4월 재개봉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공각기동대>와 같은 해 제작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공각기동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견디며 단단한 명성을 이룩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공각기동대>가 그저 나이만 먹은 작품인 건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캐머런, 워쇼스키 자매 등 내로라하는 연출자들이 이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원작은 수차례 속편과 TV시리즈로 만들어졌고 마침내는 최신 기술을 살려 실사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번졌다.

실사화 작업은 지난 2008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드림웍스를 앞세워 판권을 사들이면서 시동이 걸렸다. 원작이 원전 그대로 남기를 원한 이들이 우려를 표했으나 그보다 많은 팬들이 소식을 반겼다. 온라인 보편화에 수년 앞서 미래에 도래할 논쟁적 주제를 들춰냈고 로봇과 인간의 경계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색한 원작의 미덕이 실사영화에서도 그대로 보존될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메이저 마코토를 연기한 스칼릿 조한슨.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트를 입고 스크린 위를 종횡무진한 그녀의 활약에 영화가 더욱 박진감 넘쳤다.

▲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메이저 마코토를 연기한 스칼릿 조한슨.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트를 입고 스크린 위를 종횡무진한 그녀의 활약에 영화가 더욱 박진감 넘쳤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때는 인간이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거나 완전히 기계화된 육체를 갖는 게 일반적이 된 2029년이다. 배경은 동양과 서양, 제3세계가 뒤죽박죽된 첨단의 도시로 정부는 강력범죄와 테러사건을 담당하는 특수부대 섹션9을 통해 사회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을 척결하고자 노력한다.

주인공인 쿠사나기 모토코는 섹션9의 비밀병기로 막강한 전투력의 인공신체에 인간의 뇌를 이식해 제작한 일종의 사이보그다. 모토코는 사이버로봇기술을 보유한 대기업 한카 로보틱스가 제작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에 대해, 자신의 기억이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한다. '더 이상 육체가 인간 존재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인간성의 기준은 과연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원작의 물음은 충분하진 않을지라도 일정부분 이어진다.

루퍼트 샌더스가 연출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으로 보인다. 원작의 오프닝 스코어가 엔딩곡으로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이어질 시리즈의 시작점이란 걸 유추할 수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메이저 모토코의 사연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원작 시리즈에서 매력적으로 그려진 공안9과 팀원들의 이야기는 속편에서 보다 세밀하게 그려질 듯하다. 후속편 논의가 충실히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후속편 제작이 현실화될 경우 원작의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 타치코마가 등장해 이야기의 깊이를 깊게 할 것이 분명하다.

문턱은 낮추고 분위기는 더하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동서양의 이미지가 혼합된 가까운 미래도시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 <제5원소> <블레이드 러너> 등에서 보여진 세기말적 분위기가 잘 살았다는 평이다.

▲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동서양의 이미지가 혼합된 가까운 미래도시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 <제5원소> <블레이드 러너> 등에서 보여진 세기말적 분위기가 잘 살았다는 평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시리즈의 첫 편으로 주인공의 캐릭터를 다지는 작품이 되다보니 철학적 고민은 간소화됐다. 감독 샌더스와 각본가 윌리엄 휠러는 원작이 탐색한 실존적 고민을 상당부분 덜어내고 영화를 SF 블록버스터로 녹여내는데 집중했다. 세기말적 분위기와 흥미로운 이야기, 매력적인 캐릭터는 할리우드 최첨단 기술력에 힘입어 세련되게 표현됐다.

화이트워싱(원작과 달리 백인배우를 주요 배역에 캐스팅하는 행태)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스칼릿 조핸슨은 그 이상 모토코 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없다고 느껴질 만큼 멋진 연기를 펼쳤다.

개봉 당시 파격적이던 설정과 주제의식은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13층> <아이로봇> <아일랜드> <그녀> <트랜센던스> 등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는 영화가 여럿 개봉하는 동안 익숙한 무엇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시리즈의 첫 편으로 원작의 주제 그대로를 답습하기보다 원작의 분위기를 살려내는데 집중한 선택은 효과적이다.

샌더스는 오시이 마모루의 그 유명한 작품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공각기동대> 첫편을 완성해냈다. 모토코가 스파이더 탱크와 싸움을 벌이는 후반부를 근래 보기 드문 감격을 선사하는 명장면으로까지 만들어냈다. 대항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적을 막아서다 온몸이 만신창이로 부서지지만 끝까지 저항하고자 하는 모토코와 쿠제의 의지는 일견 새로운 시리즈의 주제인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이는 원작 시리즈가 공유하고 있는 주제와도 일정부분 통한다. 스스로의 약함을 절감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몸을 던진 타치코마들을 기억하는 이라면 틀림없이 이 영화가 보인 가능성을 알아봤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원작과 차별화되는 영화임에도 원작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신이 여럿 삽입됐다.

▲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원작과 차별화되는 영화임에도 원작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신이 여럿 삽입됐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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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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