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보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존재감이 카디널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개막전부터 드러났다. 3일(한국시각)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시카고 컵스와의 2017 메이저리그 개막전부터 시즌 첫 등판을 치른 오승환이 역전 허용의 위기 속에서 조기 등판했던 것이다.

ESPN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게임으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이 날 경기는 카디널스의 에이스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와 디펜딩 챔피언 시카고 컵스의 왼손 에이스 존 레스터가 등판했다. 에이스들의 자존심 대결이었던 만큼 8회까지 카디널스가 1-0으로 살얼음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선발투수 교체하고 바로 마무리 오승환 올린 카디널스

이 날 카디널스의 선발투수 마르티네스는 7회까지 4피안타 무사사구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생애 첫 개막전 선발 등판에서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였다. 1점 차 살얼음 리드 속에서 카디널스는 8회에도 마르티네스를 그대로 올렸다. 마르티네스의 투구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8회까지 책임지고 바로 오승환에게 마운드를 넘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기 후반 경기의 흐름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투구수가 적더라도 생애 첫 개막전 선발에서 마르티네스의 8회 등판은 다소 무리가 따른 결정이었다. 마르티네스는 8회에 안타 2개를 추가로 허용하며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는 데 그쳤다. 결국 카디널스의 마이크 매시니 감독은 개막전부터 마무리투수 오승환의 조기 투입을 결정했다.

8회초 1사 에이스가 동점 주자와 역전 주자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랐다. 오승환과 야디어 몰리나 배터리는 컵스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서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선택했다. 하지만 컵스의 타자들은 오승환과 몰리나가 선택한 유인구에 속지 않았다.

그 와중에 비까지 내리면서 마운드가 빗물에 젖어 공을 제대로 던지기도 힘들었다. 오승환의 공이 빠지면서 몸 맞는 공이 되었고, 역전 주자가 득점권에 가는 만루 위기까지 몰렸다. 개막전부터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등판했던 2경기 모두 위기 상황에서 올라왔던 오승환은 올 시즌 벌써 3번째 맞이하는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오승환은 컵스의 간판 타자들인 크리스 브라이언트와 앤서니 리조를 모두 뜬공 처리하면서 마르티네스의 실점을 막았다.

마무리투수의 체력적, 정신적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멀티 이닝 게임

삼성 라이온즈 시절부터 돌부처 이미지로 각인된 오승환의 정신력은 메이저리그 마무리투수가 되어서도 여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승환은 올해 WBC 2경기에서 호투했고, 개막전에서 8회부터 등판했음에도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오승환이더라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한계는 올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위력적인 마무리투수라 하더라도 가급적 8회부터 기용하지 않는 것이 전력에 더 좋은 선택이 될 수가 있다.

구원투수들은 선발로도 나올 수 있는 롱 릴리프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1이닝 이하를 던진다. 짧은 시간 동안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지는 구원투수들이 1이닝을 초과하여 멀티 이닝을 소화하게 되면 보통 30구 이상을 던지게 될 경우 구위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스프링 캠프 시기에 열리는 WBC에서 30구 이상을 던질 경우 다음 날 강제 휴식을 적용하는 규정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 날 경기에서 오승환이 9회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30구를 초과할 경우에 대한 우려는 크게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8회말 랜달 그릭허크의 투런 홈런이 터지면서 1점 차 살얼음 리드는 3점 차 넉넉한 세이브 성립 조건이 되어 오승환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9회초 선두 타자 벤 조브리스트를 몸 맞는 공으로 내보낼 때까지만 해도 큰 위험 없이 경기가 끝나는 듯했다. 오승환은 몸 맞는 공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타자인 애디슨 러셀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아웃 카운트를 추가했다. 다음 타자인 제이슨 헤이워드를 땅볼로 유도했을 때 카디널스의 수비수들이 경기를 무리 없이 끝낼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강하게 비가 내린 탓에 수비수들도 수비 과정에서 호흡이 꼬였고, 1루 주자와 타자가 모두 살아남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웃 카운트는 추가되지 못했고, 결국 오승환의 경기 투구수는 30구를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30구를 넘기며 상대했던 윌슨 콘트레라스에게 결국 스리런 홈런을 얻어 맞고 말았다. 이 날 오승환이 컵스를 상대로 내준 유일한 피안타가 스리런 홈런이었던 탓에 오승환은 개막전부터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에이스 마르티네스의 승리를 날렸다.

오승환에 대한 카디널스의 지나친 의존도,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득보다 실이 커

3-3 동점이 되며 8회까지 리드하던 카디널스는 예정에 없던 9회말을 맞이했다. 그러나 9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8회에 추가 타점을 올렸던 그릭허크가 또다시 끝내기 안타를 날려 경기를 금방 끝냈다(4-3).

결과적으로 블론세이브를 범했던 오승환은 팀 동료들의 도움으로 행운의 구원승을 챙겼다. 자칫 역전패했으면 이 날 블론세이브에 대한 죄책감이 컸겠지만, 팀 동료들은 오승환이 죄책감에 시달릴 시간을 주지 않고 추가적인 투수 등판 없이 경기를 끝냈다.

그러나 이 날 카디널스의 개막전은 팀의 승리와 관계 없이 카디널스 투수진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를 남겼다. 카디널스는 지난 겨울 FA 시장에서 구원투수에 대한 큰 보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카디널스의 부상자 명단 등재 선수들은 모두 투수들이다. 알렉스 레이예스와 재크 듀크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게 되면서 올 시즌을 뛸 수 없다. 왼손 투수 타일러 라이온스는 무릎 수술에서 회복 중이라 아직 복귀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시즌 개막 때만 해도 마무리투수를 맡았으나, 시즌 중반 오승환에게 마무리투수 자리를 넘겼던 트레버 로젠탈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어깨 부상에 시달렸던 로젠탈은 결국 올 시즌 개막을 부상자 명단에서 맞이했다.

물론 카디널스에는 케빈 시그리스트, 조나단 브록스턴, 브렛 세실 등 좋은 구원투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실제로 오승환이 30구를 넘기는 시점부터 카디널스 불펜에서는 세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디널스는 오승환을 8회 1사부터 올렸다. 지난 시즌 오승환이 허용했던 피홈런 5개(강정호 1개 포함) 중 2개가 컵스를 상대로 나온 것이었는데, 각각 브라이언트와 콘트레라스를 상대로 내줬던 홈런이었다. 그리고 이 날 경기에서 또 콘트레라스를 상대로 홈런을 내줬다.

이러한 기록들을 감안했을 때 아무리 8회 1점차 역전 위기 상황이었다고 해도 오승환을 8회부터 올린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162경기나 되는 정규 시즌을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첫 경기에서 투수 2명으로 경기를 끝낸 것까지는 좋았으나, 첫 경기부터 에이스와 마무리투수에게 너무 큰 짐을 줬다는 점에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올해 7월이면 만 35세가 되는 오승환은 사실 지난 시즌에도 76경기에서 79.2이닝을 던졌다. 게다가 지난 시즌 1이닝을 초과했던 멀티 이닝도 10경기나 되었으며, 무려 2이닝을 던진 경기도 5경기나 됐다.

물론 팀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확실히 믿고 내보낼 수 있는 선수가 오승환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승환이 현재 팀에서 중요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9회가 아닌데 마무리투수가 아닌 셋업맨으로 확실하게 믿고 내보낼 선수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구원투수 자원만 4명이 부상자 명단에 올라있다는 점에서 카디널스는 이들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할 구원투수들을 찾는 것이 일단 올 시즌 전반기에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됐다. 확실하게 믿고 내보낼 수 있는 마무리투수를 보다 확실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다리를 놓아 줄 선수들도 꼭 필요하다. 시즌 개막부터 큰 숙제를 남긴 카디널스가 이 문제를 어떻게 타개해나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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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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