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동화 같은 도시 콜마르(Colmar) 구시가의 또 다른 중심지, 도미니크회 성당(Église des Dominicains) 앞 광장을 향해 걸었다. 생 마르탱 성당(Collegiale St-Martin)에서 북쪽으로 출발하여 걸음을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딕양식의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도미니크회 성당을 만났다. 한낮의 도미니크회 성당은 성당 외벽이 따뜻한 햇볕을 만나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고딕 양식의 이 높은 성당은 작은 광장을 품은 유서 깊은 성당이다.
▲ 도미니크회 성당. 고딕 양식의 이 높은 성당은 작은 광장을 품은 유서 깊은 성당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도미니크회 성당은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 말 때인 1364년에 완공되었으니 역사가 유구한 성당이다. 그런데 도미니크회 성당 앞 광장에는 수많은 노점 가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유서 깊은 성당의 전면을 가리고 있었다. 도미니크회 성당 북쪽에는 거대한 크기의 도미니크 수도회 도서관이 연접하여 지어져 있다. 성당과 수도회 도서관이 함께 지어진 것은 도미니크 수도회가 설교와 함께 연구를 또한 강조하기 때문이다.

성당 외벽에 꽃이 바쳐진 작은 공간이 보여서 가 보니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다 전사한 분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프랑스에서는 어느 도시에 가나 큰 성당마다 이러한 세계대전 전사자 추모공간을 마주칠 수 있다. 그리고 이 추모공간을 볼 때마다 프랑스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진정한 추모의 정신이 느껴진다. 놀라운 사실은 항상 오늘 아침에 바친 듯한 생화가 추모의 제단 앞에 쌓여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성당을 들어갈 때에 입장료를 냈던 기억은 없는데 이 도미니크회 성당은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성당 출입문 앞에 세워진 광고 배너를 보니 성당 안에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와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의 작품이 있고 이벤트로서 특별 조각전(Pièces d' exception)이 함께 열리고 있었다.

콜마르 출신의 마르틴 숀가우어는 사상 최초의 판화가로서 어느 판화가도 그의 재능을 능가하지 못했다고 평가 받는 인물 아닌가? 나는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나게 되어 횡재한 기분으로 성당 안으로 얼른 들어갔다.

사방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가득 찬 벽면으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진다.
▲ 도미니크회 성당 내부. 사방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가득 찬 벽면으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진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한 성당답게 성당 안에는 14~15세기에 만들어진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방의 온 벽면을 뒤덮고 있었다. 성당 내부 측면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벽면의 가장 아래 부분까지 내려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길게 내려와 있었다. 높게 치솟은 고딕 성당답게 높은 벽면을 장식한 장방형의 스테인드 글라스 수십 개가 건물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성당 내부는 별도로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성당 안의 가장 빛나는 길을 향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제단 바로 앞, 제단을 가로 막듯이 서있는 제단화 앞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틀림없이 이 제단화가 이 성당 안에서 꼭 보아야만 하는 유명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제단화 앞 쪽으로 더 걸어 들어갔다. 예상대로 제단화는 그 유명한 마르틴 숀가우어의 작품이었다.

그림 아래 설명문을 보니 1473년에 그려진 이 명작의 제목은 '장미 덤불 속의 성모 마리아(Madonna of the Rose Bower)'였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소탈한 표정은 무언지 모르게 온화하게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대화가가 혼신을 다해 남긴 대작은 그림 밖으로 대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이 강렬했다.

장미와 장미 덤불을 배경으로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다.
▲ 장미 덤불 속의 성모 마리아. 장미와 장미 덤불을 배경으로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성모 마리아 뒤편에는 붉게 핀 장미와 가시 덤불이 가득하고 그 위로 천사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는 이 명작을 보다가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 뒤편에 화려함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지천으로 그려 놓았을까?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로서 가시 덤불에 갇힌 금욕적인 생활을 뜻하는 것일까? 가시 덤불 앞에 핀 붉은 장미는 묘하게도 오랜 세월 속에서 밝게 피어 있었다. 왜 성모 마리아 뒤에 화려한 장미를 이다지도 많이 그려 놓았을까?

나는 이 대작의 설명문을 읽다가 작은 놀라움도 함께 느끼게 되었다. 이 15세기 명작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성당 안의 이 대작이 꼭 오리지널, 즉 원작이라고 한 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 곳에서도 사실, 팩트를 정확히 알리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진실을 말하려고 하는 노력과 솔직함이 돋보이는 글을 만나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제단화에서 눈을 돌려 성당 내부를 둘러보니 성당 안은 군더더기 없이 깨끗했다. 간결한 성당 내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성당 벽면에 번호가 차례로 매겨진 종교화들이었다. 사람 머리 높이 정도 되는 벽면에는 순서대로 14개의 예수 고난사 그림들이 빙 둘러져서 걸려 있다. 그림 아래에는 간략한 독일어로만 설명이 되어 있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그림만 보면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는 바로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나오는 14개 장면의 그림에는 예수님이 유죄판결을 받는 모습,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힘들게 오르는 모습, 시몬이 십자가를 지는 것을 예수님이 돕는 모습, 예수님이 관에 내려지는 모습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나는 특히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넘어지는 9번 그림 앞에 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의 14개의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다.
▲ 예수의 수난사.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의 14개의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그림 속에서 예수님을 끌고 가는 로마 병사는 예수님의 다리를 발로 밟고 있고 한 병사는 창으로 예수님을 위협하고 있다. 다음 10번 그림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옷을 벗기고 있고 그 다음 11번 그림에서는 예수님을 눕혀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을 읽는 것보다도 이 그림을 보게 되면 예수의 고난 가득한 삶이 피부로 느껴진다. 현대와 같이 동영상이 없던 중세 시대에는 이러한 종교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심을 더 깊게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검소한 복장을 입은 성 도미니크가 간절하게 설교를 하고 있다.
▲ 성당의 주제단. 검소한 복장을 입은 성 도미니크가 간절하게 설교를 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성당의 주제단에는 성 도미니크(Saint Dominique)가 하늘을 올려보며 염원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성당이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 Order) 성당이고, 도미니크 수도회는 1216년 바로 성 도미니크가 설립한 수도회이다. 청빈한 삶을 주창한 성 도미니크답게 수수하고 검소한 복장을 입고 로마 가톨릭의 교리를 설교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간절해 보인다. 성 도미니크의 발 아래에는 책이 펼쳐져 있는데 신학과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공헌한 성 도미니크의 삶의 깊이가 느껴진다.

옷을 짧게 입은 풍만한 여성이 그려진 작품이 성당에 전시되어 있다.
▲ 현대 조각전. 옷을 짧게 입은 풍만한 여성이 그려진 작품이 성당에 전시되어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이 수도회 성당이 인상적인 것은 성당의 넓은 중앙 홀에 있는 예배 의자들을 모두 치우고 중앙 홀을 미술관 같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당의 중앙 홀은 특별 조각전(Pièces d' exception)의 무대가 되어 성당의 분위기와는 대비되는 현대적 느낌의 작품들이 개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표면에 온통 프랑스어가 가득 채워진 대형 자기 작품에는 옷을 짧게 입은 풍만한 여인이 턱을 괴고 자유롭게 앉아 있다. 성스러운 장소일 것이라고 예상하며 성당을 찾은 나를 놀라게 하는 장면이다. 가톨릭 신앙심이 강한 프랑스에서는 이토록 예술 표현의 자유도 자유롭다.

현대 작품을 편안하고 여유 있게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작품전을 보는 콜마르 시민들. 현대 작품을 편안하고 여유 있게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콜마르 인들은 이 현대적 작품들을 한가하게 느끼며 사색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같이 방문한 지인들과도 이 모던한 작품들에 대해서 토론을 하듯이 이야기를 나눈다. 미술작품 앞에 차분하게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들처럼 여유롭게 감상을 하면 좋으련만 나는 이 현대 작품들 앞을 빨리빨리 이동하고 있었다. 내 앞에는 아직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수많은 프랑스의 여행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콜마르의 골목길에는 젊은 판토마임 공연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 판토마임 공연. 콜마르의 골목길에는 젊은 판토마임 공연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내 머리 속의 다음 방문지를 찾아 도미니크회 성당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콜마르 구시가의 좁은 골목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에는 없었던 판토마임 공연자들이 거리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온통 흰 눈을 뒤집어 쓴 듯한 거리의 예술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든 채로 미소를 띄우고 있고, 피에로 복장의 한 여성 공연자는 지팡이만을 앞에 든 채로 동작이 멈춰 있다. 그들의 발 밑에는 팁으로 주는 공연 관람료를 받기 위한 수금통이 열려 있다. 나는 유로 동전 몇 개를 그들의 발 밑에 두고 왔다. 길거리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주는 작은 답례였다.

할아버지, 아저씨 연주자들이 실로폰과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다.
▲ 거리의 악기 연주자들. 할아버지, 아저씨 연주자들이 실로폰과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젊은 공연자들은 판토마임을 공연을 하는데 반해 할아버지, 아저씨들은 과거 방식 그대로 거리에서 자신의 악기를 열심히 연주하고 있다. 한 할아버지는 빛 바랜 실로폰을 들고 나와 독수리 타법으로 실로폰 연주를 하고 있고 한때 잘 놀았을 것 같은 한 아저씨는 트럼펫 연주를 스스로 즐기고 있다. 이들의 연주가 아마추어 급이라고 해도 이들의 연주는 콜마르의 골목길을 풍성하게 하고 있었다.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길을 걸으니 여행이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마력의 도시 콜마르를 점점 벗어나 콜마르 역을 향해 걸어갔다. 역을 향해 걸으면서 나는 점점 콜마르가 잡아당기는 인력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콜마르에 이토록 많은 볼거리가 있는 줄 모르고 왔다가 발걸음이 바빠진 나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콜마르를 떠날 때가 되자 마음이 아쉬웠다.

나는 콜마르 역에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 역에도 알자스의 따뜻한 태양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양지를 배경으로 미모의 역무원이 걸어오고 있었다. 눈이 파란 장신의 미녀. 어쩌면 눈이 저렇게 깊고 파랄 수가 있을까?

깊고 푸른 눈의 콜마르 역무원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 푸른 눈의 역무원. 깊고 푸른 눈의 콜마르 역무원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그녀에게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기차가 언제 오냐고 괜히 한번 물어보았다. 그녀는 웃으며 친절하기까지 했다. 갑자기 성모 마리아의 빨간 장미가 생각났다. 나는 이 아름다운 여인이 콜마르의 이미지에 마지막으로 덧대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콜마르, #도미니크회 성당, #도미니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