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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대선주자로 나선 심상정 대표가 지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방공약을 발표하며 “병사 복리 증진, 국방 민주화, 자율, 지능형 현대군으로 튼튼한 안보를 실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 국방공약 발표한 심상정 "튼튼한 안보 실현하겠다" 정의당 대선주자로 나선 심상정 대표가 지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방공약을 발표하며 “병사 복리 증진, 국방 민주화, 자율, 지능형 현대군으로 튼튼한 안보를 실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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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안보'를 말했다. 그러나 그 안보에는 민주주의도, 헌법도 없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지난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권 시 병역 기피는 물론 민주화운동 등으로 수감됐던 병역면제자까지도,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장관직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신뢰 회복을 위한 "책임있고 상징적인 조치"였다. 과거 <중부일보> 등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몇 차례 밝힌 적이 있는 바였다.

이른바 우클릭이다.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의 해산 이후 계속해 '강한 안보'를 주장해 왔다. 여타 정당처럼 군부대를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강한 안보의 중심에는 군 개혁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애국 페이를 끝내고 진짜 안보시대를 열겠다고, 똑똑하고 가볍고 빠른 한국군을 만들겠다고, 수구안보 안보제일주의는 가짜 안보라고 이야기해왔던 심상정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병역면제자는 장관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논란이 됐다.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여성과 장애인을 정무직 공무원에서 배제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심상정 후보는 28일 저녁, 정의당원들에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고, 이는 일부 당원의 SNS에 올라왔다. 심 후보는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이나 신체 장애를 이유로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장애인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수감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이들의 장관직 배제는 한시적으로나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상징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병역회피 근절의 의지 표현이라는 것이다.

물론, "군대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만 가는 것"이라는 만연한 인식을 극복하고,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이 공약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과 상징과 신뢰 회복의 과정에 어떤 이들이 배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배제'와 '차별'의 공약

2014년 1월 8일 당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파주시 1사단을 방문, 도라 OP에서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14년 1월 8일 당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파주시 1사단을 방문, 도라 OP에서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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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후보가 언급했듯, 민주화 시위를 이유로 감옥에 가야 했던 이들이 그렇다. 이들은 병역을 '기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들은 '사상범'으로 징역을 살았다는 이유로 군대에 가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 중 같은 이유로 수감되어 군대에 가지 못했던 이들이 상당수다.

심상정 후보는 이들에게 병역 의무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억울함'을 감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불신이 종식될 때가 그들이 공직의 자리에 들어설 수 있는 때라고 했다. 하지만 아주 오랜 기간 농축되고 축적된 불신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만 장관이 된다고 해결될 리 없다. 이건, 특정한 이들의 장관직 임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여러 '꼼수'를 통해 병역을 기피해 온, 기득권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징병검사와 군 선발 등에 있어 부정을 행사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역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군대에 가지 못했던 이들과 마찬가지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심상정 후보의 공약대로라면 정치 또는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이들 역시 장관이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지난해부터 병무청은 고위층 병역의무 기피를 예방하고 성실한 병역이행 풍토를 확산한다면서, '고위층 병역기피자'가 아닌,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이름과 나이, 주소까지 공개하기 시작했다. 총을 드는 대신 평화적 신념을 지키겠다는 이들이었고, 사건과 사고의 현장에서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를 위해 총을 들 수 없다는 이들이었다.

병역거부자와 병역기피자가 구분되지 않는 시점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이들의 정무직 공무원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건, 곧 이중, 삼중의 차별을 이어 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또한 교리로서 군대를 금지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종교에 대한 전면적 차별이다. 어떤 종교의 신자는 장관이 될 기회조차 없다는 것. 이는 심상정 후보와 정의당이 줄곧 주장해왔던 차별금지법의 내용과도 심히 모순된다.

병역기피자와 장애인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논란을 더 하고 있다. 심상정 후보는 "신체 장애를 이유로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장애인은 논의의 대상이 아님"을 밝혔지만, 대부분 병역기피자들이 신체상의 문제를 이유로 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 신체적 문제를 이유로 군 복무를 수행하지 못한 이와 병역기피자를 엄밀히 구분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적으로 장애인은 아니지만, 신체적 문제로 군대에 가지 못한 이가 있다면 병역기피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심상정 후보가 '병역 의무'에 대한 신뢰회복을 정말 원하고 있다면, 그것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평화적 신념·민주화 정신·신체적 문제가 장관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태그:#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강한 안보, #병역거부자, #병역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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