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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한 책이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통해 인물에 대해 깊은 정보 뿐만 아니라 새로운 리더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시민기자로 가입하면 누구나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마침내 '운명의 날'이 정해졌다. 5월 9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대선 주자들의 행보 역시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탄핵 사태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주 시작된 경선에서부터 이미 후보들 간 치열한 경합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선 이재명(성남시장), 최성(고양시장), 문재인(민주당 전 대표), 안희정(충남도지사) 후보에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현재 가장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는 문재인 전 대표는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노 대통령의 참모 출신이다. 연일 그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안희정 지사 역시 노 대통령을 권좌에 올린 일등공신이었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이재명·최성 시장의 경우 노 대통령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그들 역시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부르짖으며 경선에 뛰어들었다. 네 명의 후보들 모두 노무현의 뒤를 잇겠노라 선언하면서 이제는 누가 노무현의 적통을 계승할 후계자인지를 가리자는 '적자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지경이다.

26일 대전MBC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대전·충남 토론회에 참석한 최성·이재명·문재인·안희정 경선후보(왼쪽부터)
 26일 대전MBC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대전·충남 토론회에 참석한 최성·이재명·문재인·안희정 경선후보(왼쪽부터)
ⓒ 문재인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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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길 걷겠다고? 이 책부터 읽어야

예외 없이 노무현의 길을 걷겠다는 대선 주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정치학자 이갑윤·이지호가 쓴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대통령 노무현이 실패했다는 전제 하에 써진 책이다.

노 대통령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겐 달갑지 않을 내용이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의 공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매우 논쟁적이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실패하기는커녕 성공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반대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의 모든 면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가치편향적인 논쟁 속에서 그는 어떻게 그리고 왜 성공했는가 혹은 실패했는가를 중립적으로 분석하는 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 p.8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바로 국민들의 지지도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정부의 성과에 대해 국민들이 매긴 성적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늘 낮은 학점을 받았다. 실제로 취임 초 70%에 육박하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3개월 만에 30%대로 떨어졌고, 임기 내내 평균 지지율은 20~30%를 밑돌았다. 국민들은 왜 노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렸던 걸까.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책 표지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책 표지
ⓒ 에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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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 동력의 상실로 이어진 '지지연합 해체'

저자들은 '지지연합'의 해체를 노 대통령의 첫 번째 패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지지연합이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호남 지역 유권자들과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은 곧 이들의 빠른 이탈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노 대통령의 '반(反)호남·친미' 노선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대선 당시 호남 유권자들이 영남 출신이었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행사한 것은 그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라기보다는 반 한나라당, 반 이회창 정서가 반대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노 대통령조차 "호남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서 지지한 게 아니라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지지한 것"이라 발언할 정도였다.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이었던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에 대한 대북특검 수용 등 일련의 반호남 정책이 호남 유권자들의 이탈을 이끌어냈다는 게 저자들의 분석이다.

지지연합의 또 다른 축을 이루던 젊은 세대들 역시 참여정부 출범 후 노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다. 대선 당시 효순이·미선이 사건으로 고조된 반미감정 속에서 "미국에게 할 말은 하겠다"고 부르짖은 노무현 후보에게 젊은 세대들은 호감을 가졌다.

그러나 취임 직후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대통령에게 큰 실망을 느꼈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뤄진 지지연합의 해체는 초기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저자들은 인사실패 역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능력을 의심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노 대통령은 국정을 이끌어갈 내각 인사를 구성하면서 '개혁·탈주류'를 내세웠다. 그 결과 여성 변호사인 강금실을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으로 발탁하고 시골 이장 출신 김두관을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파격 인사는 개혁의 첫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경험이 전무한 운동권 출신 인사 기용은 도박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화물연대 파업'과 'NEIS(국가교육정보시스템) 도입'은 참여정부의 국정운영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대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파업 사태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고, 이후 협상 과정에 있어서도 입장을 번복하는 등 비일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온라인망으로 연결해 전국 교육청이 열람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의 NEIS 시행을 앞두고서는 '개인정보 침해'라고 반발하는 진보단체와 이에 대한 보수단체의 반격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끌려다니는 모습을 연출했다. 저자들은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국민들로 하여금 참여정부의 국정운영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위기이자 기회였던 탄핵 그러나 돌아선 민심

물론 노 대통령에게도 역전의 기회는 있었다. 2004년 3월 야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시작된 탄핵 사태는 취임 1년 만에 맞은 위기였지만, 반면에 기회이기도 했다. 국민들이 탄핵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났다.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석 과반을 획득했다. 대통령을 흔들지 말라는 국민들의 엄중한 경고였던 셈이다. 결국 헌재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노 대통령은 입법부와 행정부를 아우르는 안정적인 권력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여대야소의 자신감 속에서 정부·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법 개정, 사학법 개정, 언론관계법 개정으로 일컬어지는 소위 '4대 개혁입법'을 밀어붙였다. 4대 법안은 진보정권의 핵심 목표였으며 국민들의 지지도도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보수세력의 반발이었다.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한 보수세력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이어졌고, 민생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모양으로 애꿎은 국민들만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대화와 타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호 간의 비방과 발목잡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무려 4개월 간 국회가 정회되었으며, 민생법안은 개혁입법의 볼모가 된 채 계류 중이었다. 국회 밖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극한 대립이 지속되는 정치적인 분열과 불안정 속에 국민들은 '개혁 피로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 p.67

결국 개혁에 대해 피로감을 느낀 국민들은 정부에 우선 경제·민생 문제에 주력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당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혁입법보다는 민생 문제 해결을 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독주했다. 그 결과 민심은 노 대통령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섰다. 저자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최우선 과제를 무시한 결과"라고 꼬집는다.

"그러나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하더라도 참여정부 초중반기, 특히 2003~4년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참여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경제성장률이 1년 전의 7%대에서 3% 이하로 급감하고, 카드사태의 결과 300만 이상의 신용불량자가 생겨났으며, 벤처열풍이 꺼지면서 코스닥 주가가 폭락했다. 이 와중에 청년 구직난은 악화되고 소득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실질소비소득이 7분기 연속 감소하게 되어 한국인의 60% 이상이 체감경기가 IMF 때보다도 더 나쁘다고 느낄 때였다." - p.71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이 창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이 창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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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결국 침몰하는 배처럼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2005년 4·30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참패했다.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개혁을 위해 자신의 권력마저 내려놓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미 권위를 상실한 정부를 철저히 무시했다.

저자들은 집권여당이 붕괴되고 정부가 권위를 상실한 이 시점의 참여정부를 '식물정부', '불능정부'로 규정한다. 이 당시 노 대통령은 마지막 승부수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선·총선 동시선거 실시를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이렇다 할 업적도, 진전도 없이 진보정권의 실패만을 남긴 채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진보정권의 안정적인 집권을 위해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저자들은 대통령의 역할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은 계몽군주도 개혁가도 아닌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개혁은 의미가 없으며 그럴 경우에는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수행해야함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저자들은 가장 큰 지지세력인 호남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계속 붙잡아야한다는 것과 야당의 협조 없이는 간단한 법 하나조차 통과시킬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때로는 '적과의 동침'을 할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이상에만 매몰되기 쉬운 진보세력에게는 따끔한 충고일 수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 노무현의 실패에서 배워야

부패한 보수정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권교체는 야당 뿐만 아니라 국민들 모두의 바람이 됐다. 국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정권교체를 희망했던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드물었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시스템의 전면 개조를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정권교체만 이뤄지면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왜 임기 내내 낮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대통령직을 걸고 추진했던 각종 개혁안들이 어떻게 좌초되었는지 돌아봐야만 한다.

더욱이 진보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이명박근혜' 정권의 탄생을 불러왔다는 점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진보정권이 또 한 번 삐걱거리는 순간, 국민들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노무현의 길을 걷겠다는 대선 주자들이여, 부디 봄잠에서 깨어나 노무현의 실패를 가슴에 새겨라. 노무현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그가 못 다 이룬 가치를 실현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기를 고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이갑윤·이지호 저, 에이도스, 2015.11.20, 14,000원.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 논쟁적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와 성찰

이갑윤.이지호 지음, 에이도스(2015)


태그:#노무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박근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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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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