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프전답게 시작부터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가 연출됐다.

박미희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2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세트스코어 3-2(25-13,20-25,25-22,13-25,15-13)로 꺾었다. 흥국생명이 1차전 승리로 기선을 제압하는데 성공했지만 역대 챔프전 1차전 승리팀의 우승확률은 50%에 불과하다. 기업은행도 전혀 기 죽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흥국생명의 쌍포 타비 러브와 이재영은 51득점을 합작하며 공격을 주도했고 센터 김수지도 14득점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활약하며 흥국생명의 1차전 승리를 안긴 숨은 주역은 따로 있었다. 바로 흥국생명에서만 11년째 활약하고 있는 진정한 흥국생명의 '적통'이자 주장 김나희가 그 주인공이다.

 김나희는 2007년 프로 입단 후 흥국생명에서만 11년째 활약하고 있다.

김나희는 2007년 프로 입단 후 흥국생명에서만 11년째 활약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올스타전에서 더 유명했던 '약체' 흥국생명의 주장

아직도 많은 배구팬들에게는 김혜진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김나희는 중앙여고 시절부터 라이트와 센터를 오가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정작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5순위까지 지명 순위가 밀렸다. 같은 또래에 배유나(한국도로공사), 이연주, 하준임(이상 은퇴), 양효진(현대건설) 같은 쟁쟁한 유망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나희의 흥국생명 입단은 개인에게나 구단에게나 매우 시의적절했다. 당시 흥국생명은 김연경(페네르바체)과 황연주(현대건설)로 이어지는 V리그 최고의 쌍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진혜지의 은퇴로 센터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나희는 입단 첫 해부터 흥국생명의 주전 센터로 활약할 수 있었다.

김나희는 입단 첫 시즌에 정규리그 우승, 두 번째 시즌에 챔프전 우승을 경험하며 프로 무대에서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하지만 2008-2009 시즌을 마지막으로 김연경이 일본리그로 진출했고 2010년 FA 자격을 얻은 황연주마저 팀을 이적하면서 흥국생명의 전력은 점점 약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김나희와 함께 흥국생명의 주전 센터로 활약하던 전민정마저 2012년 승부조작 사태에 연루되며 영구제명을 당했다.

결국 흥국생명은 2010-2011 시즌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우승은커녕 봄배구도 진출하지 못하는 약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2013-2014시즌에는 7승23패의 성적으로 최하위로 추락했다. 김나희는 2010-2011 시즌과 2012-2013 시즌 올스타전 세레머니상을 받으며 배구 외적인 곳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김나희는 이다영(현대건설)이라는 본좌(?)가 등장하기 전까진 V리그에서 가장 끼 많은 선수로 꼽혔다.

암울하던 흥국생명에 희망이 생긴 것은 박미희 감독이 부임한 2014-2015 시즌부터였다. 흥국생명은 2014년 FA센터 김수지를 영입했고 흥국생명의 중앙을 외롭게 지키던 김나희는 드디어 든든한 파트너를 만났다. 흥국생명은 김수지와 김나희 콤비가 결성된 후  2년 째를 맞는 2015-2016 시즌 5년 만에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6년 만에 출전한 챔프전에서 주장다운 희생정신 발휘

이번 시즌 흥국생명은 더욱 강해졌다. 특히 이재영과 신연경, 조송화 세터, 한지현 리베로 등 20대 초, 중반의 젊은 선수들은 꾸준히 경험을 쌓으며 흥국생명 전력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흥국생명 이적 후 팀 내 비중이 커진 센터 김수지 역시 이번 시즌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V리그 최고 수준의 센터로 등극했다.

하지만 유독 주장 김나희의 성적은 예년에 비해 하락했다. 물론 러브, 이재영, 김수지 등 팀 내 공격 옵션이 다양해지면서 김나희가 굳이 많은 공격을 시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김나희가 기록한 163득점은 신인 시절의 170득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뷔 후 가장 낮은 성적이었다. 세트당 0.22개에 불과한 서브 득점 역시 까다로운 무회전 서브를 구사하던 김나희의 이름값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24일 기업은행과의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도 김나희는 단 3득점에 그쳤다. 2개의 블로킹을 제외한 공격득점은 단 1점에 불과했다. 김나희는 이날 6개의 속공을 비롯해 7번의 공격을 시도했지만 득점으로 연결된 공격은 단 하나뿐이었다. 공격성공률은 단 14.29%. 조금 냉정하게 표현하면 아예 공격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팀에 더 많은 도움이 될 뻔 했다.

하지만 김나희는 이날 무려 13개의 유효블로킹(자기팀의 수비로 연결된 블로킹)을 기록하며 공격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이는 유효블로킹 정규리그 1위를 기록한 김수지의 6개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비록 많은 득점을 올리지 못했지만 전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코트를 누비며 기업은행의 공격을 막기 위해 수없이 네트 위로 뛰어 올랐다는 뜻이다. 긴 랠리가 이어지는 여자배구에서 유효블로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은 이번 시즌 김수지와 김나희의 혹시 모를 공백에 대비하기 위해 라이트 정시영을 종종 센터로 활용하기도 했다. 1995년생 임해정을 원포인트 블로커로 활용한 것도 장기적으로 제3의 센터를 키우기 위함이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이 김나희의 아성(?)을 노리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김나희는 지난 11년 동안 한 시즌도 빠짐없이 흥국생명의 중앙을 지켜 온 붙박이 주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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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챔피언 결정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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