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위기 탈출 해법은?' 축구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회복훈련에 앞서 훈련장을 살피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경기를 치른다.

▲ '슈틸리케, 위기 탈출 해법은?' 축구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회복훈련에 앞서 훈련장을 살피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경기를 치른다. ⓒ 연합뉴스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한국축구의 인연이 점점 파국을 향해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현재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 3승 1무 2패(승점 10)로 2위에 올라있다. 지난 23일 중국전에서 졸전 끝에 0-1로 패하며 원정에서 3경기 연속 무승(1무 2패)에 머물렀다. 선두 이란(4승 2무, 승점 14점)과의 승점차는 4점으로 벌어졌고, 3위 우즈벡(승점 9), 4위 시리아(승점 8)에게도 간발의 격차로 쫓기는 상황이 됐다.

슈틸리케 감독의 여론은 이미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미 최종예선 들어 거듭된 부진과 논란의 언행으로 도마에 올랐던 슈틸리케 감독은, 40년 가까이 공한증 신화를 지켜오던 중국 원정에서 결과와 내용 모두 완패를 당하며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경기 후 실패에 대한 책임이나 반성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도 여전했다. 최종예선이 이제 불과 4경기밖에 남지않은 상황이지만 이대로라만 한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슈틸리케 감독을 당장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도 빗발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브라질월드컵의 실패로 물러난 홍명보 전 감독의 뒤를 이어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지 어느덧 2년 6개월이 됐다. 이미 한국축구 역대 외국인 사령탑으로는 최장수 재임 기록이자,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을 이뤄낸 허정무 전 감독(2007.12~2010.6)의 역대 최장수 기록을 넘어서는 것도 눈앞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슈틸리케 감독이 앞으로도 계속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만에 하나,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탈락하게 될 경우 경질은 기정사실이다. 설사 운좋게 월드컵 본선행에는 성공한다고 해도 지금같은 경기력으로는 본선까지 슈틸리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부임 초기만 해도 실리축구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며 히딩크 이후 최고의 외국인 감독이 될수도 있다는 극찬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슈틸리케 감독의 처지는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이는 결국 인과응보에 가깝다. 오히려 그동안 초기의 깜짝 성공신화에만 가려져서 누적된 문제점들이, 시간이 흘러서 하나씩 거품이 빠지며 진짜 밑천을 드러냈다고 할만하다.

일단 슈틸리케 감독의 축구 경력을 돌아봤을 때 처음부터 그는 '유능한 감독'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선수로서는 독일대표팀과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었지만 지도자로서는 한국축구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내놓을만한 성과가 전무했다. 그나마 평가받는 독일 청소년대표팀이나 코트디부아르 A대표팀 지도경력도 중요한 국제대회 본선에서 보여준 성과가 없었다. 축구협회는 1순위로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현 사우디 대표팀) 전 네덜란드 감독 등 거물급 지도자들의 영입이 각종 비용과 조건 등의 문제로 무산되며 결국 '싼 가격에 적당한 지명도를 갖춘' 슈틸리케를 땜빵 식으로 영입한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슈틸리케 감독의 초창기 시절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부임 후 첫 대회였던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고 동아시아 대회 우승, 월드컵 2차예선 무실점 전승 등으로 첫 1년 반동안 승승장구했다. 이정협, 김진현, 차두리 등 슈틸리케 감독이 발탁하여 중용한 선수들마다 승승장구하며 '슈틸리케 효과'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하여 2부리그와 아마추어까지 한국축구 방방곡곡을 누비는 성실함, 합리적이고 진중한 언행도 팬들이 슈틸리케 감독에게 호감을 느낀 원인이었다. 브라질월드컵의 실패와 홍명보의 불명에 낙마 이후 침체되어있던 대표팀 분위기를 일신하는데 성공하는 듯 했다.

악순환의 반복, '돌려막기식' 선수 선발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왼쪽), 기성용이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회복훈련 시작에 앞서 울리 슈틸리케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경기를 치른다.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왼쪽), 기성용이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회복훈련 시작에 앞서 울리 슈틸리케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경기를 치른다. ⓒ 연합뉴스


하지만 정작 불행의 씨앗은 이때부터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슈틸리케호 초창기에 거둔 놀라운 성공은 사실 거의 대부분 아시아권의 약체팀들을 거둔 승리였다는게 함정이었다.

아시안컵만 해도 꾸역꾸역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막상 내용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은 경기가 별로 없었다. 조별리그는 졸전의 연속이었고 우즈벡과의 8강전까지도 연장전에서 손흥민의 연속골이 아니었으면 져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이 결승까지 올라갈수 있었던 것도 아시안컵에서 번번이 한국의 앞으로 가로막던 라이벌 이란과 일본이 모두 탈락한 어부지리 효과가 컸다. 유일하게 한국과 대등한 수준의 강팀이라 할 만한 호주와는 두 번 맞붙어 조별리그에서는 이겼지만 결국 결승전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지 몇 달되지 않았고, 브라질월드컵의 실패로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시점에서 거둔 성과라 준우승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의 전력을 감안하면 오히려 절호의 우승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진짜 실력에 비하여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성공은 결국 독이 되어 되돌아왔다. 슈틸리케호의 민낯은 지난해 6월 유럽 원정에서부터 불안한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슈틸리케호 부임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유럽 강팀과의 대결이었던 스페인전에서 한국은 1-6으로 참패했다. 한국축구와 세계 수준과의 여전한 격차를 확인한 것과 동시에 그간 약팀을 상대로 쉬운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슈틸리케 감독에게 날아든 최초의 경고장이었다. 다행히 슈틸리케호는 이어진 체코 원정에서는 2-1로 승리하며 일단 여론을 무마시켰다.

하지만 진정한 '헬게이트'는 결국 최종예선에서 열렸다. 한국은 중국과의 홈 1차전을 3-2로 승리하며 출발했지만 세골 차의 리드에도 후반에만 두 골을 내주며 불안한 경기운영을 드러냈다. 2차예선까지 강점이라던 수비는 계속해서 흔들렸고 공격은 볼 점유율만 높을뿐 실속이 전혀 없었다. 이후로 홈경기에서는 카타르(3-2. 3차전)-우즈벡(2-1, 5차전)에 전반 리드를 빼앗기고 후반전에 겨우 역전하며 신승을 거뒀고, 원정에서는 시리아(0-0), 이란(0-1), 중국(0-1)을 상대로 단 한골도 넣지못하며 무승에 그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도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초창기에 보여줬던 합리적인 선수선발의 원칙과 기준이 사라지고, 핑계와 변명이 그 자리를 메웠다. 23명까지 가능한 선수선발을 굳이 20명만 발탁하여 선수단 운용의 경직성을 자초하는가하면, 소속팀에서의 활약상과는 별개로 자신이 쓰는 선수들만 기용하는 '돌려막기식' 선수선발이 잦아졌다. 슈틸리케 감독의 신데렐라로 불렸지만 아시안컵 이후 활약상이 미비했던 이정협의 연이은 발탁이나, 경기력 논란을 자아낸 유럽-중동파 선수들의 오락가락하는 선발기준이 대표적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언행도 구설수에 올랐다. 최종예선 이후 자신을 향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비난을 위한 비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이렇게 욕만 먹을 거면 원정경기에 가지 말아야겠다'라고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이란전 패배 이후에는 뜬금없이 "한국에는 카타르의 세비스티안 소리아같은 공격수가 없었다"라거나 "이런 식이면 한국의 월드컵 진출은 어렵다"는 등 선수탓과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무책임한 인터뷰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전에서도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그럼 어떤 전술을 써야하는지 알려달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이고도 치명적인 문제는 슈틸리케의 축구가 초창기에 비하여 전혀 발전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의지가 보이지않는다는 점이다. 4-2-3-1, 혹은 4-4-1-1로 요약되는 뻔한 전술과 실속없는 점유율 축구에 대한 집착은 이제 아시아권 팀들에게도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분명히 슈틸리케 감독에게도 성장을 위한 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부진한 이정협과 중국파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 정작 경기가 안풀리면 그저 후반에 김신욱을 이용한 뻥축구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패턴은 이제 전문가가 아니라도 모두가 예측하는 공식이 됐다. 매번 비슷비슷한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전술적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도, 조직력을 극대화하거나 과감한 세대교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 과거의 성공 경험에만 기대어 현상유지에 안주하는 모습일 뿐이다. 왜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을, 그것도 슈틸리케를 계속 사령탑으로 써야하는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슈틸리케 참사',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회복훈련에 앞서 카를로스 알베르토 아르무아 코치와 이야기를 하다 잠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경기를 치른다.

축구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회복훈련에 앞서 카를로스 알베르토 아르무아 코치와 이야기를 하다 잠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경기를 치른다. ⓒ 연합뉴스


물론 외국인 감독 한 명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할 문제는 아니다. 지금의 '슈틸리케 참사'를 초래한 구조적인 원인은 애초부터 잘못된 감독 선임과 주먹구구식 대표팀 운영으로 혼란을 자초한 축구협회와 기술위의 몫이기도 하다.

축구협회의 무원칙과 말바꾸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을 직접 영입한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당초 월드컵이나 대륙별 대표팀 지휘 경험과 실적 등 8가지가 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으나, 결과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협회가 처음 제시한 기준에는 거의 대부분 미달하는 인물이었다.

최종예선 이후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가 노출된 상황에서도 협회는 제대로 된 견제나 보완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슈틸리케호 출범 초기부터 함께해온 경험많은 국내파 코치인 신태용을 리우 올림픽팀에 이어 U-20 대표팀까지 빼내가며 정작 중요한 A팀 코치진의 기능 약화를 초래했다. 영입당시만 해도 수석코치로 알려졌던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는 슈틸리케의 측근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정확한 역할과 보직이 아직도 불분명하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우즈벡과의 5차전 이후 슈틸리케 감독의 부족한 부분을 보좌할수 있는 경험많은 코치들을 보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약은 빈말에 그쳤다. 신태용 감독이 U20 대표팀으로 떠나고, 외국인 수석코치의 영입도 무산된 대표팀은 정식 코치 라이센스로 취득하지못하는 무자격 코치인 차두리를 위하여 전력분석관이라는 직함을 억지로 만드는가 하면, 역시 지도자 경험이 많지 않은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을 코치로 데려오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2002 월드컵 스타들의 유명세에만 기댔을뿐 지도자로서의 경험이나 역량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발이었다.

결국 중국전에서도 대표팀은 기존의 슈틸리케 축구에서 전혀 발전되거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을 전술적으로 보좌하거나, 잘못된 팀운영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경험많은 국내 코치조차 전무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슈틸리케 본인도 선수경력에 비하여 지도자로서의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인데, 코치진 구성까지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했으니 대표팀 운영이 산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슈틸리케호는 현재 총체적 파국의 위기에 처해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물론이고, 무능하고 안이했던 축구협회와 기술위 역시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 당장의 월드컵 본선행이 불확실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대로라면 한국축구의 미래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축구협회가 더 이상 변명과 책임 회피가 아닌 구체적인 혁신과 대안을 내놓아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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