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의 유소년 선수인 이강인이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발렌시아의 잔류를 선언했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의 잔류를 위해서 그에게 후베닐C가 아닌 후베닐B 월반을 약속했고, 이강인은 레알 마드리드보다 경쟁이 비교적 수월한 발렌시아 잔류를 선택했다.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나중에 커서 꼭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자"라는 글을 달거나, 필자에게 "이강인이 나중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기회는 없습니까?"라고 묻곤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겠다. "이강인이 성인이 되어서 발렌시아의 1군에 데뷔한다면, 그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1) 발렌시아는 카탈루냐 문화권의 도시다

이강인과 발렌시아라는 클럽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면, 에스파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에스파냐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에스파냐를 비롯한 이베리아 반도는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 이후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대대적으로 침략하면서 에스파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가톨릭 왕국들로 분열되었다. 이 작은 가톨릭 왕국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을 외치며 '레콩키스타' 운동을 시작했다. (711년~1492년)
 
문제는, 이 700년이라는 긴 시간 때문에 에스파냐는 지방마다 그들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 정치적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레콩키스타 운동 기간 동안 에스파냐는 두 개의 대표적인 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하나는 카스티야와 레온 지방을 통치했던 '카스티야·레온 왕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탈루냐와 발렌시아 지방을 비롯한 동부 에스파냐 해안가를 통치했던 '아라곤 연합 왕국'이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에스파냐는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결혼 동맹으로 인해서 형식적으로 통일된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7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분열되어 있었던 에스파냐의 언어와 문화, 정치적 사상 등은 하나로 융합되기 어려웠다. 페르난도 2세가 에스파냐를 아라곤 연합 왕국의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싶었다면, 이사벨 1세는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들 사후 에스파냐의 왕으로 즉위한 카를로스 5세와 그 아들인 펠리페 2세가 즉위하면서, 에스파냐는 철저하게 카스티야 지방의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는 국가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에스파냐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 되었음에도 지속적으로 분열된 국가였고, 아라곤 연합 왕국의 지배를 받은 도시들은 카스티야 지방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이러한 카스티야 지방에 대한 불만은 결국, 20세기에 에스파냐 내전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발렌시아는 아라곤 연합 왕국의 지배를 받은 대표적인 도시였다. 아라곤 연한 왕국의 수도는 바르셀로나였다. 그렇다 보니 아라곤 연합 왕국의 지배를 받는 도시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카탈루냐 지방 문화권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발렌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렌시아에는 자연스레 카탈루냐 지방 문화권과 함께 이들의 정치적 사상이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 이는 레콩키스타 운동이 끝나는 1492년 이후에도 약 5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발렌시아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 발렌시아 C.F의 보드진 임원들을 비롯한 현지 발렌시아 서포터들 역시 이러한 카탈루냐 문화권에 대한 사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카스티야 지방, 특히, 에스파냐의 수도인 마드리드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카스티야 지방의 클럽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발렌시아 사람들의 사상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발렌시아의 축제가 있다. '라스 파야스'라는 축제다. 매년 3월에 열리는 이 축제는, 축제 마지막 날에 판지와 나무 등으로 '파에'라는 거대한 인형을 만들어서 태운다. 주로 정치인이나 유명인들, 또는, 발렌시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인형들이 많이 제작된다. 공교롭게도 이 축제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스타 플레이어들의 인형들도 많이 제작된다. 이는 발렌시아의 서포터들이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전통적으로 발렌시아의 보드진은 가능하면 핵심 선수들을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와 같은 클럽으로 매각하려고 한다. 라이벌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에 핵심 선수를 매각하는 것보다 같은 카탈루냐 문화권의 도시인 바르셀로나에 매각하는 것이 그나마 발렌시아의 서포터들과 발렌시아의 사회에서 비난과 비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2)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의 사이는 좋지 않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을 이어서 설명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의 사이는 좋지 않다(물론, 그렇다고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의 사이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처럼 앙숙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클럽의 사이가 지금처럼 악화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1996년에 발렌시아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사건이었다.
 
1995/1996시즌 때 발렌시아의 공격수였던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는 라 리가 40경기에서 28득점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미야토비치는 득점뿐만 아니라 팀의 공격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갖췄기 때문에 그가 팀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미야토비치의 활약에 힘입은 발렌시아는 1995/1996시즌에 라 리가 2위로 준우승을 차지했었다.
 
1995/1996시즌을 5위로 마치며 명예 회복을 노렸던 레알 마드리드와 로렌소 산스 회장은, 1996/1997시즌 라 리가 우승을 위해서 우승 청부사인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선임하며 호베르토 카를로스와 클라렌스 세도로프 등을 영입하며 팀 전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는 이러한 레알 마드리드의 타겟 중 한 명이었다. 이에 미야토비치는 발렌시아 잔류를 선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레알 마드리드는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의 영입을 발표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야토비치가 이적료의 일부를 자신이 충당하면서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이적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발렌시아의 서포터들은 미야토비치를 '유다토비치(JUDAtovic)'라고 부르며 그를 원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두 팀 간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미야토비치가 1997/1998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32년 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안겨준 데 이어 레알 마드리드가 1999/2000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3-0으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발렌시아 서포터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 두 클럽의 사이는 악화되었다. 로렌소 산스 회장의 뒤를 이어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이 된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두 클럽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발렌시아로 이적한 선수들은 많아도 발렌시아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선수는 2009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라울 알비올이 마지막이었다.
 
2009년에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다비드 비야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다비드 비야 역시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원하며 레알 마드리드와 개인 합의까지 마쳤다. 하지만 당시 발렌시아의 회장이었던 마누엘 요렌테 회장은 페레즈 회장에게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도 다비드 비야의 영입을 원한다'는 이유를 대며 다비드 비야의 이적료를 추가로 요구했다. 이에 페레즈 회장은 다비드 비야의 영입을 취소하고 그 대신 카림 벤제마를 영입했다.

2015년에는 호세 가야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발렌시아 보드진의 완고한 반대로 인해서 무산되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에는 안드레 고메스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5000만 유로+1000만 유로의 옵션 조항을 걸며 6000만 유로의 이적료에 안드레 고메스의 이적료를 합의했지만, 발렌시아의 보드진은 안드레 고메스를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에 매각했다.
 
문제는, 정작 발렌시아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 혹은 레알 마드리드 출신의 유소년 선수들을 꾸준하게 영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렌시아는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선수 출신인 후안 마타와 로베르토 솔다도, 다니엘 파레호, 로드리고 모레노, 알바로 메드란 등을 영입했다. 지난 시즌에는 데니스 체리셰프를 임대 영입했고, 이번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 출신의 에세키엘 가라이를 영입했다. 거기에 지난겨울 이적 시장 때는 레알 마드리드의 마리아노 디아스 영입을 추진했었다.

이러한 사태가 지속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서포터들 역시 더 이상 발렌시아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내의 레알 마드리드 서포터들만 해도 "더 이상 발렌시아와 거래를 하지 마라."라고 주장한다. 현지 레알 마드리드의 서포터들 반응 역시 국내 서포터들 못잖다. 레알 마드리드라는 구단이 포터들과 소시오 주주들의 의견을 참고해야만 하는 시민 구단의 특성을 고려해본다면,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두 구단의 사이는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3) 이강인은 발렌시아의 유소년 선수로 1군에 데뷔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강인이 성인이 되어 발렌시아 1군에 데뷔한다면, 그는 발렌시아의 유소년 선수 출신의 선수가 된다. 사실상 이것이 이강인의 레알 마드리드의 이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2011년에 발렌시아와 유소년 선수 계약을 맺은 이강인은, 현재 6년 가까이 발렌시아의 유소년 팀에 뛰고 있는 선수다. 만약 그가 2019년에 발렌시아 1군에 데뷔한다면, 그는 과거 발렌시아의 주장이었던 다비드 알벨다처럼 발렌시아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여름에 발렌시아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파코 알카세르는 발렌시아의 서포터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알카세르가 발렌시아의 유소년 선수 출신으로 오랫동안 발렌시아 서포터들의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알카세르를 비롯하여 피터 림 구단주를 중심으로 한 발렌시아 보드진 자체가 발렌시아의 서포터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면치 못했다.
 
사실상 호세 가야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지 못했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왼쪽 풀백의 기근 현상 때문에 발렌시아가 가야를 지키고자 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가야는 발렌시아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었고, 그만큼 발렌시아의 상징적인 선수가 될 수 있는 선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발렌시아의 보드진은 무슨 일을 해서라도 가야를 잔류시켜야만 했다.

만약 이강인 역시 발렌시아의 1군에 데뷔한다면, 파코 알카세르처럼 발렌시아의 서포터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이강인이 외국인이라고 해도 아무래도 발렌시아의 유소년 선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렌시아 보드진이 만약 이강인을 레알 마드리드로 매각한다면, 그때는 알카세르를 매각했던 것 보다 더 한 비판과 비난을 받을 준비를 해야만 한다. 아무리 피터 림 구단주를 중심으로 한 발렌시아 보드진이 형편없다고 해도 레알 마드리드에 이강인을 매각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이강인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만약 이강인이 성인으로 데뷔한 이후 발렌시아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은 이후 발렌시아를 떠난다면, 그는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나 해외 클럽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더 높다. 사실상 이강인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로 뛸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가 발로 차 버린 셈이다.
 
물론,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그가 발렌시아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강인이 발렌시아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수 있는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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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http://ryuilhan1993.blog.me/220947769853

위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미리 개재해 놓은 글입니다.
스포츠 이강인 레알 마드리드 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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