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럼프 장애인 모욕" 비난한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 힐스에서 8일(현지시간) 열린 제 74회 골든글로브 사싱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수상소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 "대선 기간 장애를 가진 뉴욕타임스 기자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고 말했다.

▲ "트럼프 장애인 모욕" 비난한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 힐스에서 8일(현지시간) 열린 제 74회 골든글로브 사싱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수상소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 "대선 기간 장애를 가진 뉴욕타임스 기자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EPA


"할리우드에는 아웃사이더와 외국인들이 넘쳐난다. 우리를 다 쫓아낸다면, 미식축구와 종합 격투기 말고는 볼 게 없을 것이다. 그건 예술이 아니다."

지난 1월 8일,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메릴 스트리프의 수상 소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고조된 약자 혐오 분위기를 우려하는 발언이었다. 조지 클루니, 줄리안 무어 등 다양한 배우들이 그녀에게 지지를 표명했고,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호응했다.

하지만 메릴 스트리프의 수상 소감은 트럼프 비판 이외에도,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또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녀는 배우의 역할을 얘기하며,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배우의 유일한 일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게 어떤 느낌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왜 우리는 메릴 스트리프의 발언에 주목해야 할까? 그녀의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배우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게 어떤 느낌인지를 느끼게 해줄 때, 관객인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물론 누군가는 말한다. 관객은 그저 즐겁게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고, 작품을 즐기면 됐지 뭘 바라냐고.

하지만 영화 <그을린 사랑>은 말한다. 배우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게 어떤 느낌인지를 느끼게 해줄 때, 관객인 우리의 역할은 단순히 이를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록하며 기억하는 거라고. 2011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는 이유이다.

<그을린 사랑> 속 나왈의 '1+1=1'인 세상

 영화 <그을린 사랑>

갑작스럽게 전달된 유언 편지. 그들은 중동으로 향하고, 진실을 마주한다. ⓒ ㈜티캐스트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듣고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중동으로 떠난다. 그리고 쌍둥이 남매는 그 과거의 끝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목도한다.

나왈의 삶은 레바논에서 15년간 벌어진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내전과 궤를 같이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왈은 이슬람교의 남자를 사랑해 결국 임신한다. 그러나 고향 마을에서 가문의 수치로 낙인 찍힌 결과, 남자는 살해되고 나왈은 집에서 쫓겨난다.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시간이 흘러 나왈은 아이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독교 민병대의 무차별한 테러와 살인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목격한다. 결국, 나왈은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죽이고 감옥에 15년간 갇힌다.

나왈은 감옥에서 고문 기술자인 아부 타렉을 만난다. 그는 고문 과정에서 나왈을 강간하고, 나왈은 쌍둥이를 임신하게 된다. 쌍둥이는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버려질 뻔하지만 겨우 살아난다. 시간이 지나 나왈은 감옥에서 나와 쌍둥이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나왈은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부 타렉은 사실 자신이 낳은 첫 번째 아이였다.

아부 타렉은 전쟁의 광기 속에 미쳐 버렸다. 전쟁의 폭력성에 중독된 그는 고문 기술자가 되어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을 알게 된 시몽은 잔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1+1=2가 될 수 있을까?" 쌍둥이가 알게 된 어미니 나왈의 세상은 '1+1=1'인 세상이었다. 그렇게 레바논 내전의 비극은 나왈이라는 개인의 삶에 그대로 투영된다.

'1+1=1'인 세상에서 우리의 역할, 기록하고 기억하라

 영화 <그을린 사랑>

그에게 닥친 비극은, 개인사적 비극이 아니였다. ⓒ ㈜티캐스트


영화 <그을린 사랑>은 나왈이라는 개인을 통해 레바논 내전의 비극을 우리에게 온전히 느끼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 비극을 경험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충격적인 진실을 겪은 후 나왈은 실어증에 걸린다. 하지만 나왈은 이를 외면하지 않고 유언을 통해 자식들에게 알린다.

쌍둥이 자매인 잔느와 시몽은 관객인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출발한다. 어머니 나왈의 과거를 전혀 모른 체, 우리는 쌍둥이 자매와 함께 나왈의 삶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잔느와 시몽 그리고 우리는 비극적 현실을 마주한 뒤 주저앉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시몽은 애초에 나왈의 삶을 추적하는 데에 부정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말한다. 멈추지 말고 진실을 마주하라고 그리고 다시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기억하라고. 위 과정이 모두 유언이라는 공증의 절차로 진행된다는 점, 나왈이 공증인의 비서로 일했다는 설정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게 쌍둥이 자매와 극장에서 나온 우리는 레바논 내전의 비극을 온전히 기억하게 된다.

2014년 4월 16일, 305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 비극적 현실에 대다수 국민은 함께 아파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정치화되고, 대학 특례입학 등이 논란이 되면서 비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정부는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데 소극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구의역 사고 등 또 다른 비극을 겪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박정희 정권부터 쌓여온 적폐가 상징적으로 청산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말 그대로 '상징적' 청산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구의역 사고 등의 참사는 우리 사회에 쌓인 적폐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준 사건이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투표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는 집회 참여 등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도 말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 <그을린 사랑>은 말한다. 그 전에 우리는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비극적 현실, '1+1=1'인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시작이라고.

나왈의 유언은 잔느와 시몽 그리고 우리를 향한 유언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

영화 <그을린 사랑>, 찾아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이다. ⓒ ㈜티캐스트



메릴 스트립 그을린 사랑 비극 '1+1=1'인 세상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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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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