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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가을이었나보다. 대학에서의 첫 해를 자유 전공으로 보냈더니, 서서히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의 규율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도 '위험'한 일만 아니라면 여자인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금지'하지 않으셨다.

나는 온전히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겠다 마음먹었고, 그게 그동안 여자라곤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던 '기계공학'이었던 것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선택 당시엔 '생산공학'이었고, 석사학위를 마치기 전에 기계공학과로 통합되었다).

'여자인' 내가 기계공학을 선택하겠다는 소문은 금세 주변에 퍼졌다. 선배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의 말을 던지며 '만류'했다. 여자에겐 힘들다, 네가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남자들에게만 익숙한 세상이다... 등등 걱정의 언어는 다양했으나, 결국 '가지 마라. 그 길은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의 변주된 표현이었다.

철없던, 게다가, '여성으로서의 금기'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는 채 스물이 된 나는, 그런 걱정의 언어가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자인 것'을 의식하며 살아오지 않았는데, 유별나게 '어른이 된 지금' 그걸 인식해야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나는 충분히 자랐고, 그동안의 교육은 '공정한 기회'의 희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안나 까레니나>


아뿔싸! 미처 몰랐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그것이 '나의 것'으로 다가왔을 때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2학년 첫 학기에 그것을 깨달았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십대의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나의 노력과 자세를 탓했고 내가 좀 더 애를 쓰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차피 '여자다움'을 선택했던 적도 없으니, '주변의 친구들과 닮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도 문제는 없다고 결정했다.

나는 어느덧 '다수가 남성'인 세상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만큼 술을 마셨고, 그들만큼 밤을 새웠으며 그들만큼 일(혹은, 공부)을 했다. 혹시라도, 맘에 들지 않는 '세상의 방식'이 거슬리면 그것은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의 잘못'이라고 판단해 버렸다. 나는 점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세상이 원하는 것'과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고, 박사학위와 함께 세상으로 나왔다.

'청바지는 곤란해. 화장도 좀 하고, 백화점에서 옷도 좀 사. 월급 많이 받잖아?'

첫 회사, 첫 번째 조직의 임원이 푸르스름한 파티션에 기대어 조언을 던진다. 여전히 학생과 회사원의 어디쯤에선가 살고 있던 나에게 저 '조언'은 '회사원으로서의 첫 규칙'이 되었다. 당시의 '어리바리'했던 나는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그 주 주말에 곧바로 백화점에서 정장 몇 벌과 화장품을 사들였다(다시 생각해보아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너무도 부끄럽다). 정장 바지에 구두 차림으로 일을 하는 것이 너무도 불편했고, 땀이라도 흐르면 화장이 번져서 힘들었음에도, '첫 번째 규칙'을 어기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껏 '남성이 다수인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오지 않았던가? 나는 점점 '일을 잘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그런 칭찬은 나를 '쉴새없이 일하게' 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그들이 원하는 규칙'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했고, 가끔씩 거슬리는 순간에'만' 그들과 부딪히는 것으로도 나는 '유별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내 생각에, 자네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가끔은 조직이 원하는 것에 맞춰주는 것도 필요해.'

그동안 애를 써왔던 과제에 대해 갑작스럽게 내려진 조직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계속 '이해'를 요구하던 나에게 과제 관리팀의 팀장이 던진 말이었다. 나는 그들이 정한 규정을 받아들이며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도 애를 썼는데, '사회성'이라는 말로 가볍게 배척된 것이다.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다면, (동료로서의)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일하는 여자들은 결론없는 선택을 강요받아요. 남자들이 원하는 '여자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나의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그거 우습지 않아요? 그러면서, 정작, 남자들이 기대하는 '여자의 방식'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주변에서) 욕을 먹고, '나의 방식'을 선택하면 소외되고 배척당해요. 결국, 어떤 선택도 답이 아니예요."

그동안 나의 노력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퇴근 후, 어두운 방 안에서 한참을 울었던 그 밤이, 여전히 아프게 떠오른다.

 여성의 일, 새로고침
 여성의 일, 새로고침
ⓒ 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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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회사에 다닌다. 비혼의 40대 중반, 나름대로 '전문직 여성'이다. 결혼을 했다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세상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여전히 '껄끄러운 존재'로 살고 있다.

다만, 더 이상 사회가 만들어놓은 '그들의 방식'에 매달리지도 않고, '나의 방식'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런 선택이 나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긴 하지만, 나를 숨기고 감추는 것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조직으로부터의 '소외'는 승진이나 보상과는 반대편에 위치한다는 것이니, 선택의 '결과'마저 내가 감내해야 한다. 가끔, '능력있는 나'로 인정받았던 그때가 그리워서 계속 나의 자세에 대해 갈등하며 괴로울 때도 있지만, 계속 그렇게 살지는 못했을테니, 고민스럽지만, 인정하기로 한다.

오늘 소개하는 책들은, 나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나를 짓누르던 '어떤 날'의 처방전으로 골랐던 것이다.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아래, <여성혐오>)과 <여성의 일, 새로고침>, 이 두 권이다. <여성혐오>에선 '경계를 벗어난 어딘가를 부유하는 존재'를 '비체(abject)'라고 한다고 가르쳐 주면서, 이 사회의 여성이 무너뜨리려는 '경계'에 대한 공포가 '여성혐오 (misogyny)'로 나타난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여성과 뚜렷이 구분되는 경계를 갖는 주체, 즉 남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이 남성들은 남성 정체성의 경계를 교란하고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오염되고 불순한 것, 공포스러운 비체로 간주하여 혐오하게 된다." - p.35 <여성혐오>

"주인과 노예의 투쟁에서 투쟁에 주도권을 가진 자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자율성을 자각하게 된 노예였음을 기억하자. 여기서 노예는 착한 대상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 비체였다. 투쟁이 시작된 상태에서 자신이 주인이라고 믿는 쪽은 이미 나약하다. 비체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주인은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잃는다.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언제나 비체의 몫이었다." - p.110 <여성혐오>

결국, 세상에 남아있는 '경계' 중 하나가 '성역할의 경계'가 된 지금, '일하는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질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2016년 5월의 강남역'으로 상징되는 아픔을 치유하지 못했고, 벌어진 상처의 틈으로 새어 나오는 피를 애써 외면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포스러운 혐오를 뚫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여성'은 현실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떤 모습일까? 치열한 생존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의 일, 새로고침>을 통해 전해 듣는다.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여성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청중들의 대화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픈' 목소리 하나를 옮겨온다.

"이 자리에 와서 다양한 여성상을 보고 싶었어요. 40~50대 일하는 여성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대학 졸업하고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마트에서 일하는 나이 든 여성분들은 전부 이름 없는 '어머님'이에요. 이분들 말고 관리직들을 보면 전부 남자고요. 오늘 뵌 본부장님 (김희경 전 세이브더칠드런 본부장)이 제가 만난 가장 '높은' 여성이예요." -p.8 <여성의 일, 새로고침>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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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동료,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순간의 혼란에 대한 두려움이 '혐오'로 드러나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변화'는 갑갑하다 느낄 만큼 느릿하고, '저항'은 절대 밀려나지 않을 견고한 벽으로 느껴지더라도, '여성의 노동'이 없이는 더 이상 균형을 유지할 수 없는 세상이다. 후대에게 넘겨줄 세상에도 '내가 만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을 힘들여 찾도록 할 것인가?

'여성 한, 두 명으로는 조직의 분위기가 절대 바뀌지 않아요. 열 명의 팀이라면, 적어도 셋 이상은 여성이 포함되어야 일하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해요.'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마이클 무어, 2015)에서 성공적인 양성평등의 예로 제시된 아이슬란드의 사례에서 나온 대화이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조직에서 '여성의 이질감'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여성이 '남성의 방식'을 따라가야 했던 이유가 이해가 된다.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의 미담이 주던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떠올리면서, 더욱 더 '버텨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기게 된다. 주변에서 다양한 방식의 '일하는 여성'을 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비체로서의 이질감'으로 배척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 믿어보련다.

지금 내가 속한 일터는 '여성'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운 곳이며, 나는 여전히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성격 나쁘고 시끄러운' 여자로 '버티는' 중이다. 조직에서의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나의 방식'으로 일하며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가능하겠지?

책정보 :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들녘
<여성의 일, 새로고침> 곽정은, 김희경, 김현정, 장영화, 은수미, 닐다X롤링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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