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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우리는 지금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걸 보고 있다.

지난 2월 7일,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핵발전소인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 허가 처분을 취소하라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1년 반 동안의 재판 내용을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그간 한국사회에서는 3권 분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다.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기능, 민정수석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사법부가 지극히 '법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은 이와 같이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시작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비정상의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중의 하나가 탈핵(脫核)이다.

탈핵은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언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핵발전소를 줄이는 길만이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안전하게 살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자 최소한의 조치이다. 이 땅에 사는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가 최우선해야 할 목표다. 헌법 전문에도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 6년의 현실

지난 2011년 3월 지진과 쓰나미로 파괴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이 발전소의 1-4호기 모두가 폭발했다.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난 2011년 3월 지진과 쓰나미로 파괴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이 발전소의 1-4호기 모두가 폭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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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6주기였다. 사고가 일어난 지 6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녹아내린 핵연료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부지 내의 방사능 수치는 더 올라갔으며 여전히 매일 수백 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오염수는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회수한 오염수는 저장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저장탱크는 6년 사이에 1천여 개로 늘어나 약 100만 톤의 오염수를 저장하고 있다. 일본 당국과 도쿄전력은 이를 바다로 방류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후 아이들의 갑상선암 수치는 급증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질병은 소아 갑상선암 증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백내장, 협심증, 뇌출혈, 폐암, 식도암, 위암, 소장암, 대장암, 전립선암, 조산과 저체중 출산까지 거의 모든 질병이 많게는 세 배까지 늘어나고 있다. 자연사산율도 늘어나고 있으며 난치병 환자 수가 증가하고 급기야 인구까지 급감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얼마 전에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폐로와 보상, 제염 등의 비용으로 과거 계산의 2배인 21.5조 엔(약 215조 원)으로 재산정했다. 여기에는 녹아내린 핵연료의 처분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일본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상실은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핵발전소 사고는 어떤 이유로도 막아야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년이 지난 지금, 핵발전소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일본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5년 3월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월성원전1호기 수명연장 결정 취소를 촉구하며 항의 집회를 연 주민들 모습.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 허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 원전 폐쇄 촉구 나선 주민들 지난 2015년 3월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월성원전1호기 수명연장 결정 취소를 촉구하며 항의 집회를 연 주민들 모습.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 허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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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총 25기다. 서해안 영광에 6기, 동해안 울진에 6기, 경주에 6기, 울산, 부산에 7기가 가동 중이다. 울산에 3기, 울진에 2기의 핵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경주 지진을 통해서 지진위험지대임이 확인된 한반도 동남부 일대에 총 16기의 핵발전소가 건설, 가동 중이다.

일백 년 만에 가장 큰 지진이 발생한 경주지진은 핵발전소 건설 허가와 운영 허가에서 고려된 지진이 아니었다. 핵발전소 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던 활성단층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핵발전소 부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평가를 다시 해야 하고, 그에 따라 내진설계도 다시 해야 한다. 그럼에도 안전성 재평가 없이 가동과 건설이 강행되고 있다.

이렇게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단층은 알려진 것만 해도 61개가 8개의 활성 단층대에 분포하고 있다. 월성, 신월성 핵발전소 부지에서 10킬로 지점인 울산단층대에 26개의 활성단층이 집중되어 있다.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 부지에서 5킬로미터 지점에 일광단층대가 있고 신고리 부지 내에는 활성단층으로 의심되는 단층들이 발견되고 있다. 

허가 당시 고려하지 않았던 지진이 발생했다면 운영허가와 건설허가는 다시 원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 일본 규제 당국은 핵발전소 안전기준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상향시켰다. 예상치 못했던 지진과 사고가 발생했으니 그를 고려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데에만 수년이 걸린 것이다. 발전량에서 30%를 담당하던 54개의 핵발전소가 모두 멈췄다. 2년간 일본은 핵발전소 제로를 경험했고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가 급증했다. 재가동한 핵발전소는 아직 3기에 불과하다. 독일은 1980년대에 운영을 시작한 노후핵발전소 7기를 바로 폐쇄했고 2022년 원전 제로를 다시 확인했다.

핵발전소 사고를 막는 길은 위험요소를 줄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인당 전력소비가 높은 편인데도 발전소가 많아 전력설비가 남는다. 봄가을에는 핵발전소 용량으로 30~40기가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15~25기가 남는 상황이다. 한여름, 한겨울 냉난방 수요를 태양광 발전으로 바로 해결하거나 건물 단열 개선이나 수요관리 시장을 통해서 줄일 수 있다.

전력수급이 충분한 상황에서 위험한 핵발전소를 늘릴 필요는 없다. 수명이 다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노후핵발전소는 우선 폐쇄해야 한다. 지진위험지대에 내진보강이 불가능하다고 확인된 중수로 핵발전소인 월성 핵발전소 2, 3, 4호기는 조기 폐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핵발전소를 늘리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건설공정률이 낮은 신고리 5, 6호기는 더 비용을 낭비하기 전에 사업을 취소해야 하며 완공단계에 이른 핵발전소들도 우선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신규계획과 신규부지는 없던 일로 돌려야 한다. 필요하지도 않은 핵발전소와 고압 송전탑 때문에 지역주민들을 괴롭히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또 핵발전소 전기를 쓴 이상 고준위 핵폐기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핵발전소를 확대하면서 그 뒤를 처리하는 수준으로 핵폐기물을 지역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계획은 전면 철회하고 공론화부터 다시 해야 한다. 상업용 핵발전소가 가동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전 세계 33개의 핵발전소 보유 국가들 어디에서도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처분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10만 년이고, 100만 년이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찾기도 힘든 상황에서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는 재처리와 사고 위험이 더 높은 고속로를 그것도 대도심 한가운데서 추진하는 것은 원자력마피아의 안전불감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대전 유성에 위치한 원자력연구원이 그동안 핵폐기물을 무단으로 소각, 매립, 반출한 데 더해 수치 조작까지 해왔다는 것이 밝혀진 마당에 재처리와 고속로 추진은 용납될 수 없다. 사실, 1500여 명 규모, 연간 3천억 원 가량 예산이 투입되는 원자력연구원은 해체하고 기초과학과 기계 기술 등 국책연구기관으로 흡수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속가능한 경제'도 탈핵이 필수

지난 11일 탈핵경남시민행동이 주최한 '후쿠시마 핵사고 6주기, 가자 탈핵' 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11일 탈핵경남시민행동이 주최한 '후쿠시마 핵사고 6주기, 가자 탈핵' 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피켓을 들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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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가 없어도 전기수급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가 보여주고 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태양광, 바람같은 재생에너지 잠재량이 기존 발전소를 모두 대체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는 것이 정부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금은 이 땅에 발전소가 너무 많아 다른 조치 없이 노후핵발전소와 신규핵발전소를 중단해도 전력수급에 영향이 없다. 오히려 기존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 때문에 재생에너지발전소를 건설해도 전력망에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이 현재 그런 상황이다. 앞으로 전력소비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게 되면 가동 중인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해도 발전설비는 남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다. 차기 정부는 탈핵 에너지로의 전환을 선언해야 한다. 탈핵에너지전환법을 제정하고 관련 법을 정비하며 관련 예산과 제도를 마련해서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세계는 에너지산업을 통한 3차 산업혁명을 넘어서 4차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새로운 일자리, 지속가능한 경제는 탈핵을 통해서 가능하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효율 산업 확대는 탈핵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탈핵 에너지 전환은 안전한 사회의 기반을 다지며 한국사회에 새로운 경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핵발전소는 구태의 상징으로 정상적이고 안전한 한국사회에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년이 된 지금 일본과 세계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이를 망각할 때 우리에게 어떤 절망이 닥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인 2017년, 우리는 이제 탈핵원년을 선포할 때다.

덧붙이는 글 | 환경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탈핵, #신규원전, #노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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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 전'핵없는사회를위한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월성원전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검증위원. 대한민국의 원전제로 석탄제로,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기자가 됨.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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