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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켈리는 부산대 정치학 교수다. 그는 지난 10일, 한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 소식을 자택에서 BBC 앵커와의 영상 통화 인터뷰로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방송 중 그의 어린 딸이 방문을 열고 춤을 추며 당당하게 걸어들어왔고, 켈리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딸을 손으로 살짝 뒤로 밀었다. 아빠가 지금 전 세계인들이 보는 인터뷰를 진행 중이니 나가달라는 제스처였다. 그러나 이것은 켈리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곧이어 보행기를 탄 그의 두 번째 아이가 방으로 들이닥쳤다. 사태를 뒤늦게 알아차린 두 아이의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방에 들이닥쳤고 아이들을 황급히 데리고 나갔다. 영문을 모른 채 끌려나가는 딸은 "엄마, 왜 그래!"라고 소리쳤으며 문이 닫힌 뒤에도 방 밖에서는 연신 "으아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BBC 앵커 역시도 웃음을 터뜨렸다.

켈리는 거듭 "미안하다" 했고 상황이 수습되자 비로소 침착히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었다. BBC는 "생중계 중 아이들이 끼어들었다.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우리의 게스트가 능숙히 대처했다"고 밝혔다. 또한 켈리 가족이 방송 화면에 잡힌 이 영상은 SNS에서 화제가 됐다.

팔로워 1200만의 스티븐 콜베어까지 영상을 타임라인에 공유했을 정도였다. LA 타임스, 뉴욕타임스, 더 가디언, CNN 등 주요 외신들까지 소식을 전하며 누리꾼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이들을 사랑스러워하고 돌발 상황을 재밌어하는 감수성은 아시아나 서양이나 일반적인 경향인 것 같다. 그러나 희소식은 딱 여기까지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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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콜베어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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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해외 누리꾼들이 관련 영상을 보고 인종주의적, 남성우월주의적 편견을 드러내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가령 "닌자 유모가 아이들을 숨기려고 하네! 인터넷의 가호가 있기를!"(추천 3906) 따위의 비꼼이 이런 경우다. 서양인들은 종종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아시아인들이 무술에 뛰어나며 작고 날렵하다는 식의 선입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종종 아시아인들을 '닌자'라고 놀린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주 당연하게 아이들의 엄마가 '유모(nanny)'일 것이라고 가정했다는 거다. 서양인들은 종종 성공한 백인 남성은 아시아 여성과 결혼할 리 없다는 식의 편견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화가 난 한 아시아계 여성은 "댓글창의 바보들에게. 이건 인종 간 결혼이라고 불리는 상황이란다. 백인과 아시아인이 결혼해 아이를 낳았을 뿐이라고. 저 여성은 유모가 아니야. 엄마지. 저 여성이 백인이었다면 너희들은 아주 빨리 그녀가 유모라고 가정하지 않았겠지?"(추천 456)라고 항의했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버렸다.

육아, 노동자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과 존중 의식을 보여주는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가령 "(이 영상이) 놀랍다고? 정말? 유모는 아이들을 끌어당기고 아빠는 이 작은 서프라이즈의 약간의 행복함조차 보이지 않은 채 아이를 보지도 않고 미는데?"(추천 2435) "유모가 잘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너무 귀엽고 재밌군!"(추천 351) 등의 반응이 그러하다.

정말 이들은 동영상 속 여성이 아이들의 엄마일 것이라는 점을 몰랐을까? 아이는 한국어를 했고, 혼혈로 보였으며, 인터뷰 장소 역시 한국의 가정집이었음에도? 답은 그들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단면은 평범한 서양인들에게도 꽤 많이 인종주의적, 남성우월주의적(특히 인종 간의) 편견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일부 누리꾼들의 지적처럼, 두 아이의 부모가 좀 더  부드럽게 상황을 수습했다면 보다 훈훈했을지도 모른다. 가령 아빠가 능청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딸에게 인사를 하고 무릎에 앉힌 뒤 방송을 진행한다던지. 엄마 역시 당황하지 않고 별 일 아니라는 듯 아이들을 달래 데리고 나갔다면 사람들의 기분이 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과 현실이 조금 다르다는 점을 한 누리꾼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현실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댓글을 단다. "왜 그는(켈리는) 자신의 어린아이를 안아주고 키스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등등) 하지 않는 거야?"처럼. 또한 그가 "인터뷰 때려치워, 나 당장 아이들과 함께 하늘에 연이나 날릴 거야.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내 전부니까!"라고 말해야 할 것처럼. 그는 BBC 생방송 중이어서 긴장하고 당황한 거야. 그게 바로 보통 인간의 반응이야."(추천 18002)


태그:#BBC, #부산대, #로버트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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