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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병드는 감정노동자들
 웃으며 병드는 감정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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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부터 은행법·보험업법 등 5개 금융관련법에 이른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의무조항이 신설돼 시행되고 있고, 이 밖에 다른 업종의 '감정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무의 특성상 성희롱·인신공격성 언어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고객 창구나 콜센터 등의 근로자들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감정노동'은 '감정노동자'로 분류되는 이들만이 겪고 있는 고통은 아니다. 일반 근로자들 역시 직장 내 폭언으로 인한 인신공격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근로기준법으로는 이러한 인신공격성 언어폭력을 완전히 규제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8조는 사용자(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자, 즉 관리자 포함)는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대법원은 폭행을 "피해자의 신체에 공간적으로 근접하여 고성으로 폭언이나 욕설을 하여 신체의 청각기관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거나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고 던지는 행위는 직접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에 해당될 수 있다"고 하여 폭행의 범주를 어느정도 확대해서 판단하고는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직장 상사 등에 의해 행해지는 언어폭력은 형법상 모욕죄(형법 제311조),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등에 의해 보호 받을 수 밖에 없다. 법원은 같은 여성인 하급자에게 "애기 낳은적 있어? 아니 무슨 잔머리가 이렇게 많아. 애기 낳은 여자랑 똑같아", "어젯밤에 남자랑 뭐했어? 목에 이게 뭐야?" 등의 막말을 한 팀장인 여성 상급자에게 모욕죄로 벌금 70만 원의 약식명령을 한 사례가 있다.

또한 같은 사건의 피해 근로자가 막말을 한 상급자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행위가 행하여진 장소 및 상황 등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일상 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또는 호의적인 언동의 범주를 넘어 원고로 하여금 굴욕감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원고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켜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한 것이므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하여 각각 정신적위자료 5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직장내 폭언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상 규정이 없고, '말'로 이루어지는 행위의 특성으로 인해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비교적 까다롭기 때문에 사실상 직장내에서 이루어지는 언어폭력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공공기관에서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 너희 부모님만 욕먹는다"는 식의 폭언이 문제가 된 적도 있었고, 서울시의회 간부가 "인사 제대로 해라. 네 옆에 있던 6급도 그렇게 인사하다 쫓겨났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몸이 아파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을 다녀오겠다는 직원에게 "그런 식으로 회사에 나와서 병원 들락거릴 거면 아예 그만두고 집에서 쭉 쉬어라"고 비아냥댄 사례도 있다. 우리사회의 일터 곳곳에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언어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4호는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고 하고 제3호는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정신노동은 '주로 두뇌를 써서 하는 노동'을 말하는 것이지, 막말을 듣고도 모욕감을 안 느끼는 척 연기해야 하는 '감정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근로계약상 근로자는 '감정노동'을 제공할 의무도 없고, 사용자는 이를 수령할 권리도 없다. 종종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재벌가의 '갑질논란'에 분노하는 자신이 혹시 사무실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볼 때다. 


태그:#노동법, #언어폭력, #모욕죄, #감정노동, #명예훼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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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로서 '노무법인해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노무자문, 급여관리, 근로자들의 부당해고, 체당금 사건 등을 수행하면서 널리 알리면 좋을 유용한 정보를 기사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blog.naver.com/lhr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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