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라이트>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건 때로 폭력으로 다가온다. ⓒ CGV아트하우스


버락 오바마, 크리스 가드너, 이재명….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일명 '개천에서 난 용'들이다. 불우한 과거사를 겪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각자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룩한 인물들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고 인종차별에 대한 고민으로 술과 마약에 탐닉했던 오바마, 고졸 학력에다 흑인 그리고 세일즈맨으로 일하다 개인 파산에까지 몰려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던 크리스 가드너,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이재명.

그러나 오바마, 가드너, 이재명은 자신들의 암울한 현실을 비관하고만 있지 않았다. 이들은 필사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성공을 쟁취했다. 오바마는 제44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됐다. 가드너는 700억대 자산을 보유한 주식 중개인이다. 그리고 이재명은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성남시장으로서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우리는 정도는 다르지만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어 보이는 현실을 이겨낸 그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현재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방송, 영화, 책 등은 그들의 삶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한가지 우를 범하고 있다. 태생적 불우함을 극복한 요인으로 개인의 노력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부득이하게 우리는 현재 암울한 환경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력을 강요하게 된다. '노오력 하란 말이야!'라는 대표적이다.

영화 <문라이트>는 이에 경종을 울린다. 자신이 처한 불우한 환경을 혼자 헤쳐 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 '호명'이 필요하다고 <문라이트>는 말한다.

리틀, 샤이론, 블랙

 영화 <문라이트>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영화 <문라이트>의 포스터. <문라이트>는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리틀', '샤이론' 그리고 '블랙'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장 제목은 영화의 주인공인 샤이론이 각각의 장에서 사람들에게 주로 불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샤이론을 향한 도움, 진정한 '호명'은 장 제목과는 다른 이름으로 행해진다.

'리틀'은 마이애미에 사는 한 흑인 아이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 그리고 조용하고 섬세한 성격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리틀'로 불리며 놀림과 따돌림을 당한다. 홀어머니 아래 외롭게 자랐으며, 어머니는 마약에 중독된 상태다. '리틀'의 환경은 말 그대로 불우하다. 하지만 우연히 마약 거래상인 후안을 만나 변화를 맞는다. '리틀'의 상처를 느낀 후안은 '리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이때 후안은 '리틀'을 '샤이론'으로 호명한다.

후안이 죽고 '샤이론'은 다시 고립된다. 소년이 된 '샤이론'은 여전히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어머니는 여전히 마약에 빠져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샤이론'의 유일한 친구인 케빈이 후안의 빈자리를 채운다. '샤이론'은 케빈의 존재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또한, 해변가에서 케빈과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을 뜬다. 이때 케빈은 '샤이론'을 '블랙'으로 호명한다.

하지만 운동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샤이론'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뀐다. 그렇게 '샤이론'은 '블랙'이 된다. 청년이 된 '블랙'의 모습은 후안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마약 중개상인 '블랙'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강해 보인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내면은 공허하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케빈'의 전화를 받고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블랙'이 케빈의 어깨에 기대는 장면에서, '블랙'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인다.

흑인 빈민가정에서,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 샤이론. 샤이론이 그러한 불우한 환경을 견디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순전히 샤이론 개인의 노력 때문일까? 물론 후안의 집을 직접 찾아가거나, 고민 끝에 케빈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샤이론 개인의 노력은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후안과 케빈이 없었다면 샤이론이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을까? 암울한 현실에 처한 샤이론에 대한 후안과 케빈의 관심, 도움, 사랑 즉, 호명이 있었기에 샤이론은 아이에서 소년 그리고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블루'라고 호명할 차례

 영화 <문라이트>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파랗게 물든 샤이런. 달빛 아래에 있는 그를, 우리는 뭐라고 부를 것인가. ⓒ CGV아트하우스


한국에서 빈곤 가정에 속하거나, 남들과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일반적인 우리는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는가? 불우한 환경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우리는 몇몇 인물들의 성공 신화에 입각하여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지 않는가?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성 정체성을 드러내 싸우라고. 물론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혹은 그러한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관심, 도움 그리고 호명이 없다면, 그들이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오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때때로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건 폭력이 되기도 한다.

후안은 어린 샤이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너처럼 달이 뜨면 맨발로 뛰어다녔어. 달빛 속에선 흑인들이 파랗게 보이지. 널 '블루'로 불러야겠다."

이에 샤이런은 후안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후안을 '블루'라고 불렀는지. 하지만 후안은 고개를 저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달빛 아래 파랗게 물든 샤이런은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가 후안과 샤이런 그리고 한국의 샤이런들에게 '블루'라고 호명할 차례라고.

문라이트 노력 호명 도움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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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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